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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래어 간판 홍수, 세종대왕의 눈물이 느껴진다
수원화성 공방거리 그나마 아름다운 한글 간판 명맥 유지해
2020-10-06 23:22:52최종 업데이트 : 2020-10-08 14:18:30 작성자 : 시민기자   김숙경

3층 건물 전체 상호가 외래어로 도배되어 있다.

3층 건물 전체 상호가 외래어로 도배돼 있다


매년 9일 한글날만 되면 한글의 과학성과 독창성을 부각시키면서 우수성을 알리지만 그 때뿐, 무분별한 외래어가 남용되면서 갈수록 한글이 설자리를 잃고 있다.

 

젊은 세대들이 많이 사용하는 SNS상의 대화에서 쓰이는 국적불명 용어 뿐 만 아니라 '웹툰', '인포그래픽', '팟캐스터' 등 신생 용어들이 새로 생겨나면서 세대 간 격차를 심화시키는데 한몫을 한다.
 

외래어 간판이 홍수를 이루는 수원역 로데오거리

외래어 간판이 홍수를 이루는 수원역 로데오거리


 

특히 거리의 간판들은 정체불명의 용어들로 가득차 읽기조차 쉽지 않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4일 수원의 대표적인 번화가인 수원역 로데오거리 간판 실태를 확인차 찾았다. 거리는 20대 젊은 남녀들과 동남아 근로자인 듯한 외국인들이 점렴해 발 디딜틈이 없었다. 이들 외국인들은 추석 연휴기간동안 회사가 쉬는 기간을 이용해 동료들과 나들이를 나온것 같았다.

 

점포 간판은 'EX-CUBE', 'GRABBY', 'innisfree', 'LENS ME', 'HOLIKA HOLIKA' 등 뜻을 알수 없는 단어로 가득 찼다. 영어발음을 한글로 표기한 간판도 부지기수라서 간판만으로는 취급 품목이 무엇인지 알수 없을 정도였다.

 

간판이 외래어로 점렴당하기 시작한 때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로, 세계화가 큰 영향을 미쳤다. 국내 대기업들이 상호를 영문으로 바꾸기 시작한 때도 이 무렵이다. 럭키금성은 LG, 쌍용정유는 S-oil, 한국통신은 KT, 포항종합제철은 POSCO로 각각 개명했다.

 

또 스타벅스와 파리바게트, 세븐일레븐 등 다국적 유명 프랜차이즈 업체가 국내에 진출하면서 외래어 간판 사용에 불을 지폈다. 유명 프랜차이즈 업체는 상표법상 등록이 돼있어 단속도 할수 없는 실정이다.

 

영국의 역사학자 존 맨이 한글을 '모든 언어가 꿈꾸는 최고의 알파벳'이라고 했지만 세계화라는 미명 아래 언제부터인지 한글은 촌스럽고 구태적인 것으로 전락해 버렸다.
 

한 건물 전체가 외래어 간판으로 얼룩져 있다.

한 건물 전체가 외래어 간판으로 얼룩져 있다



수원역 로데오거리에서 외래어 상호로 10년째 퓨전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다는 허영호(54) 씨는 "(외래어 상호는) 우선 이국적인 느낌이 들어 세련돼 보여 소비자들이 선호한다"면서 "무엇보다도 외국 음식 전문점 같은 이미지를 전달하는데 유리하다"고 말했다.

 

대학생 전유라(22) 씨는 "한글로 된 상호는 왠지 고리타분한 느낌이 들어 별로이지만 외래어 상호는 호기심이 들어 관심이 더 가게 된다"면서 외래어 상호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외래어 간판 남용 현상은 수원시청 주변 인계동도 마찬가지 였다. 이곳에서도 '신주', 'CINE PARK', 'こころ', 'La BLUE' 등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상호들이 가득했다.
 

인계동에 의미도 모르는 외래어 간판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인계동에 의미도 모르는 외래어 간판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우리 글이 훼손되고 있는 현실이 지속된다면 언젠가는 아름다운 우리 언어가 회생불능의 상태가 될수 있다. 더 늦기 전에 정부와 지자체가 독창적인 한글을 잘 지켜나가도록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할 때다.

 

얼마 전 법무부 공무원으로 퇴직한 후 수원지방법원 근처에 법무사 사무실을 개업한 정하철(61) 씨는 몇 일전 사무실 근처 식당에서 중요한 손님과 점심을 하려다가 곤경에 처했다. 그는 "상호 뿐만 아니라 메뉴까지 정체불명의 외래어로 표기되어 종업원의 도움을 받아 겨우 점심을 해결했다"고 겸연쩍어 했다.

 

회사원 이상배(55)씨는 어린 후배들과 점심식사 후 카페에서 차를 주문할 때 곤란을 느낀다고 고백한다. 그는 "카페이름을 외래어로 표기하는 게 요즘 대세니까 그 정도는 이해한다"면서도 "카라멜마끼아또, 돌체라떼, 바닐라빈라떼, 밀크카라멜라떼, 헤이즐럿라떼 등 생소한 커피 종류가 너무 많아 아메리카노만 주문한다"고 말했다.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12조에 따르면 광고물의 문자는 원칙적으로 한글맞춤법, 국어의 로마자표기법 및 외래어표기법 등에 맞추어 한글로 표시하여야 하며, 외국문자로 표시할 경우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한글과 병기하여야 한다고 전한다. 

 

관계 전문가는 "관할구청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간판을 정비할 수 있다"면서 "당국의 무관심으로 단속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외래어 간판 남용을 부채질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크고 작은 공예품과 상호가 조화를 이루는 향기도예.

크고 작은 공예품과 상호가 조화를 이루는 '향기도예'


이 같은 상황에서 수원화성 공방거리에서 카페와 공방을 중심으로 아름답고 예쁜 한글 간판을 쉽게 볼수 있어 다소 안심이 된다. 카페 '다담'은 불가(佛家)에서 손님을 대접하기 위하여 내놓는 다과 따위를 의미한다. 또 카페 '단오'는 우리나라 3대 명절로 여자는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그네를 뛰며 남자는 씨름을 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향기 도예'는 진열된 크고 작은 공예품과 조화를 이룬다.
 

한옥과 한 그루의 소나무와 잘 어울리는 장안사랑채.

한옥과 한 그루의 소나무와 잘 어울리는 상호 '장안사랑채'


수원화성을 찾는 손님을 맞이하는 장소라는 의미의 '장안 사랑채'는 한옥과 소나무와 조화를 이루면서 수원화성 한옥 보존지역의 명소가 됐다. 정미혜(29) 씨는 "처음에는 조금 촌스럽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해가 갈수록 한옥과 입주업체를 고려할때 이곳에 꼭 맞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일부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보여주기 식의 이벤트성 한글간판은 진정성이 결여되어 그리 감동을 주지 못한다. 한글을 사랑하고 보전하려는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

 

"외래어가 고급스럽고 세련된 느낌을 준다는 생각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우리 글에 대한 올바른 의식이 필요할때"라는게 관계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세계 2900여 종의 언어 가운데 유네스코에서 최고의 평가를 받은 우리나라 문화유산인 훈민정음. 백성을 사랑하여 널리 사용하고자 하기 위해 훈민정음을 만든 세종대왕이 간판에서 한글이 사라지고 있다는 현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마음이 들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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