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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무공훈장 받고도 '쉬쉬'…형제, 좌익활동하다 월북
할머니는 가슴으로 울었다…이념으로 자식들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눠
2019-06-26 14:12:37최종 업데이트 : 2019-06-26 14:06:21 작성자 : 시민기자   김연수

6.25한국 전쟁이 발발한지 69주년이 되는 25일 아침 광교동에 살고 있는 이용수 씨를 만나 할머니와 아버지를 둘러싼 비극적인 실화를 들었다. 이용수 씨 가족은 6.25와 얽힌 말못할 사연이 있다. 용수씨 가족은 호주로 이민을 가서 살고 있다. 용수씨는 고국의 향수를 떨치지 못하여 아내와 함께  3년 전에 역 이민을 선택했다. 

백마고지 충혼탑 오르는 언덕길 흰색 자작나무와 태극기가 펄럭인다.

백마고지 충혼탑 오르는 언덕길. 흰색 자작나무와 태극기가 펄럭인다.

아버지는 6.25전투에 참전해 을지무공 훈장을 받았는데 당시 계급은 중사였다. 삼촌은 전쟁에 참여해 전투 중에 전사했다. 큰 아버지 두 분은 해방이후 좌익 운동을 하다 전쟁이 발발하자 북쪽으로 월북해 지금까지 소식이 없다.

 

이야기는 을지무공 훈장을 받고도 내놓고 기뻐하지 못하고 가슴에 상처를 안고 살다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서로 다른 이념으로 총부리를 겨누었을 자식들 때문에 밤잠을 못자고 괴로워하며 모진 고문까지 견뎌내야 했던 할머니의 사연이다.

백마고지 전시관 앞 백마부대 백마동상

백마고지 전시관 앞 백마부대 백마동상

 

아버지 형제간에는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할머니는 아들 여섯과 딸 넷 모두 9남매를 두었다. 위로 아들 둘, 아래로 딸 셋과 여섯 번째부터 아들을 낳았다. 아버지는 여덟 번째로 위로 형님 두 분과 아래 동생(작은 아버지) 한 분이 계셨다. 아버지는 1930년생으로 6. 25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1년 전 1949년 19살에 국방경비대에 하사관으로 지원 입대하였고, 위로 두 형님은 해방의 소용돌이 속에서 좌익 활동을 했다.

 

1950년 전쟁이 발발하자 아버지는 전투에 참가한다. 작은 형님 두 분은 인민군에 협조 하다가 결국 북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우리 집안은 대대로 인천에서 살았는데 할아버지는 피난을 떠났고, 막내인 작은 아버지까지 국군에 입대해서 인민군을 앞에 두고 총을 맞대는 상황이 벌어졌다.

 

큰 아버지 두 분은 월북했고, 막내 삼촌은 6.25전쟁 중에 전사했다. 아버지는 동료와 적 고지 벙커에 수류탄을 투척하여 전공을 세웠고, 그 공로로 을지무공 훈장을 받았다. 수류탄 투척이후 또 다른 전투에서 총탄이 목을 스치는 부상을 입고 국군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의가사 제대했다.

월정역사 뒤로 멈춰선 기차가 녹슬어 있다.

월정역사 뒤로 멈춰선 기차가 녹슬어 있다.

 

남북이 분단되는 과정에서 우리 집안은 풍비박산이 되었다. 6.25 전쟁을 4형제가 치렀다. 2명은 좌익 활동을 하다 월북했으니 북한군으로 총을 들었을 것이고, 아버지와 막내 삼촌은 국군으로 참가했으니 한국군으로 참전했다. 만약 한 전투에서 총질을 했다면 형님이 아우에게 아우가 형님에게 총을 겨누어 죽고 죽이는 게임이 아닌 실전이 벌어졌을 것이다.

 

전쟁은 휴전으로 중단 되었고, 다섯 번째 큰 아버지는 월북전에 결혼을 하여 아들(사촌형) 하나를 두었으나 아내와 자식을 두고 홀로 월북을 했고, 일곱 번째 큰 아버지도 월북했다. 전쟁이 끝나자 흔적을 감춘 큰 아버지 두분을 찾기 위한 수색으로 할아버지 집은 혼란 속으로 빠져 들었다. 그 와중에서 할머니는 어린 손자(사촌형)가 있는 며느리를 보호하기 위해 피신 시켰고, 스스로 포박을 당해 경찰서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지만 당당하게 손자를 훌륭하게 성장시켰다.

 

할머니는 고문으로 온몸이 부서지는 고통도 참아내며 혹시라도 돌아올 자식을 위해 참았다고 한다. 큰 아버지 두분은 지금까지 소식을 모르고 있다. 할머니는 살아생전 자식들에게 공산주의니 민주주의니 하는 말을 입 밖에 꺼내지 못하게 했다. 할머니는 아버지가 받은 훈장에 대하여 한 번도 말씀을 하시지 않았다고 한다.

철마가 멈춘 월정리역(평화열차 여행에서 기념촬영 기사와 관계없음)

철마가 멈춘 월정리역(평화열차 여행중 기념촬영. 사진은 기사내용과 관계없음)

 

사촌 형님은 첫째 큰아버지 집에서 할머니와 성장하여 지금은 사업가로 활동중이다. 사촌형님은 좌익 활동을 한 아버지에 대한 평가는 하지 않는다. 할머니의 사랑을 받고 성장한 형님이 할머니의 유지를 철저히 지키고 있지만, 강대국의 이해와 정치적 이념으로 민족이 분단 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을 가슴에 담고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짐작이 간다.

철원 북한 노동당 당사

철원 북한 노동당 당사

 

할머니의 마음을 알고 있는 아버지도 훈장에 대한 이야기는 가족에게는 하지 않았는데 술을 드시며 전투에 참가한 이야기와 훈장을 받게 된 이야기를 해 주셨다. 아버지의 훈장에 대한 이야기는 어머니가 많이 해 주셨다. 아버지는 을지무공 훈장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는 자랑하지 않았지만, 아내인 어머니에게는 자랑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6.25 전쟁 이전에 세워진 북으로 가는 안내석이 강화산 168km 길을 안내하고 있다.

6.25 전쟁 이전에 세워진 북으로 가는 안내석이 강화산 168km 길을 안내하고 있다.

 

민족분단으로 만들어진 연좌제 법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모를 것이다. 아버지가 6. 25전쟁에서 목숨을 걸고 싸워 국가가 주는 을지무공 훈장을 받았지만 아버지 형제가 좌익 활동을 했다고 하여 우리 가족은 많은 불이익을 당하고 살아야만 했다. 내가 군대에 입대하여 통신병으로 보직을 받았는데 큰아버지 두분이 월북했다는 이유로 공병대로 배속되어 삽질을 했다. 그때는 당연하게 받아들였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국가가 국민을 얼마나 옥죄는 행위를 했는지 알 것 같다.

 

호주에 이민을 가서 살고 있는 고모를 따라 우리 형제들은 호주로 이민을 떠났고, 아버지가 정년퇴직하고 호주로 이민을가 어머니는 생존해 계시고 아버지는 호주에서 잠들어 계신다. 국립현충원에 모실 수도 있지만 가족이 전부 호주에 있기 때문에 현재는 호주에 모시고 있다.

북으로 달리던 철교가 6.25전쟁으로 끊어져 녹슬어 있다.

북으로 달리던 철교가 6.25전쟁으로 끊어져 녹슬어 있다.

 

중사였던 아버지는 특수 임무를 띠고 동료와 함께 전장에 투입됐다. 수류탄을 잔득 넣은 배낭을 짊어지고 고지벙커에 접근하여 수류탄을 투척하는 임무를 맡아 성공리에 적군 벙커 파괴하는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후 수류탄 투척작전 성공을 인정받아 국가가 주는 을지무공 훈장을 받았다.

 

고지는 야간은 적군이 점령하고 주간에는 아군이 탈환하는 과정이 반복 되었다. 야간에 고지를 점령한 적군은 벙커에서 포를 쏘기 때문에 아군이 접근할 수 가 없었다. 한 낮에는 공격이 쉽지 않아 주로 새벽에 전투가 벌어졌다. 새벽 작전임무를 띤 아버지와 동료는 야음을 틈타 산을 올랐고 새벽 동이 트기 시작 할 무렵에 수류탄을 던지는 임무를 수행했다.

 

새벽어둠에 벙커에서 '뻥'하고 불빛이 솟구치면 그쪽 벙커에 집중적으로 포를 쏘는 지원사격을 하여 아군의 포탄에 벙커가 파괴 된 것처럼 위장 전술을 사용하여 벙커 몇 개를 파괴하는 전과를 거두었다.

 

남과 북을 자유롭게 오고 가는 고니가 한가롭게 떨어진 벼이삭으로 식사를 하고 있다.

남과 북을 자유롭게 오고 가는 고니가 한가롭게 떨어진 벼이삭을 먹고 있다.

 

아버지 형제는 이념의 소용돌이 속에서 서로 갈라져 총부리를 맞대고 싸울 수밖에 없었지만 사회주의를 선택한 큰 아버지의 아들인 사촌 간에는 우애가 깊어 자주 만난다. 언젠가 사촌형님에게 북쪽에 있을 큰 아버지를 한 번 찾아보지 않겠냐고 이야기를 꺼냈더니 "다시는 그런 말하지 마라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려고 괜히 마음만 아프다"는 말에서 형님이 당하고 느꼈을 수모를 생각하며 마음이 아팠다.

 

너무나 오랜 세월 분단되어 살아와서 통일이 하루 빨리 이뤄지기는 쉽지 않겠지만 분단의 아픔을 아직도 겪고 있는 이산가족과 우리 모두의 여망인 평화가 이뤄지기를 기대하면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명복을 빌고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린다.

6.25전쟁, 이념, 총부리, 을지무공 훈장,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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