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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보훈의 달 특집】 국가를 위한 희생, 국가가 책임져야
. “어제는 당신이 우리를 지켜주셨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당신을 지켜드리겠습니다”
2019-06-07 14:09:56최종 업데이트 : 2019-06-19 10:59:19 작성자 : 시민기자   한정규
국립서울현충원 위패봉안관

국립서울현충원 위패봉안관


대학시절에 할머니와 한방을 썼다. 그 방 사진액자에는 할머니 사진과 함께 그 옆에 한 번도 본적이 없는 분의 사진이 한 장 들어가 있었다. 바로 기자의 삼촌 사진이었는데 6.25 한국전쟁 때 꽃다운 나이로 전사한 분이었다. 할머니는 평생 아들을 가슴에 묻고 사셨는데 전사한 사실만 알았을 뿐 그 외의 행적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그런데 몇 년 전 사촌형이 국립서울현충원 위패봉안관에 삼촌의 이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3년 전 어느 날 국립서울현충원을 방문했다. 현충문 안에는 현충탑, 학도의용군 무명용사탑, 대한독립군 무명용사탑, 재일학도의용군 전몰용사위령비, 충열대, 경찰충혼탑, 육탄10용사 현충비, 유격부대 전적위령비, 충혼당, 위패봉안관, 봉안식장, 현충관, 호국전시관, 유품전시관 등의 시설과 국가원수묘소, 임시정부요인묘역, 애국지사묘역, 무후선열제단, 국가유공자묘역, 장군묘역, 장병묘역, 경찰관묘역, 외국인묘소 등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길가의 묘역에는 계급과 이름, 사망일 등이 명시된 비석이 줄지어 있다. 잠시 묵념을 하고 현충탑 내부에 있는 위패봉안관으로 들어갔다. 삼촌의 이름을 쉽게 찾으려니 했는데 원형으로 돌면서 4.1m 높이의 양쪽 벽면에 16줄로 이름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무려 10만 2000여 위패가 봉안된 것이다. 위패의 순서도 없어 찾을 일이 난감해 관리소에 가서 컴퓨터 조회를 할까 사촌형한테 물어볼까 망설이고 있는데 갑자기 쉽게 찾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잠시 후 15번째 줄에서 '상병 한석한'이란 이름이 큼지막하게 눈에 들어왔다. 세상에나 소름이 돋았다. 위패봉안관에 들어가 5분도 안 돼 삼촌을 찾을 줄이야. 혹시나 해서 사촌형한테 전화를 해서 확인해보니 맞다고 했다. 피가 물보다 진해서일까 조상의 보살핌이 있어서일까. 이후 가끔 성묘를 간다.

국립서울현충원 위패봉안관

국립서울현충원 위패봉안관


국립서울현충원 위패봉안관 위패 벽에는 6.25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등에서 전사, 순직사실이 확인되었으나 유골 또는 시신을 찾지 못한 분과 사망당시 안장대상이 아니었는데 법령개정으로 안장대상자로 되었으나 시신이 없는 분의 이름을 새겼는데 2018년 11월 말 현재 10만2196위의 이름이 새겨져있다.

국립서울현충원은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숨결과 정신이 생생히 살아있는 민족의 역사이며 우리 겨레의 과거이며 민족의 미래이기도 하다. 국립서울현충원은 6.25 한국전쟁으로 발생한 많은 전사 장병 처리를 위해 1950년대 중반에 국군묘지로 출발했지만 1960년대에 애국지사, 경찰관, 향토예비군까지 대상이 확대됨으로써 국가와 민족을 위해 고귀한 목숨을 희생하고 국가발전을 위해 헌신한 분들을 국민의 이름으로 모시기 위해 국립묘지로 위상을 갖추었으며 이후 소방공무원, 의사상자도 안장대상에 포함되었다.

삼국지를 보면 위나라 조조는 병사들이 전쟁에서 죽거나 부상당하면 당사자는 물론 그 가족들도 돌봤다는 기록이 있다. 위나라가 강성했던 것은 뛰어난 전략과 전술이 바탕에 있었겠지만 병사들이 용맹하게 싸울 수 있도록 국가가 병사들을 끝까지 돌봤기 때문일 것이다.

국립서울현충원 위패봉안관

국립서울현충원 위패봉안관


우리나라는 광복 이후에도 일제강점기에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독립투사들과 그분들의 후손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했다. 친일파는 부와 권세를 대물림해 그 자손들이 오늘날도 떵떵거리면서 잘살고 있지만 전 재산을 털어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분들은 그로 인해 자손들에게 가난과 고통을 대물림했다. 국가가 이들을 보살피지 못해 오늘날도 그 불평등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국가는 무한한 책임감을 가지고 이들을 보살펴야 한다.

국방부는 6.25 한국전쟁 당시 나라를 위해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바쳤으나 미처 수습하지 못한 채 아직도 이름 모를 산야에 홀로 남겨진 12만 4000여 위 호국용사들의 유해를 찾아 조국의 품으로 모시는 '국가적 숭고한 호국보훈사업'을 하고 있다. 지속적인 유해발굴을 통해 2000년부터 2018년까지 국군 1만237위 UN군 13위 등 1만250위, 북한군 725위, 중국군 604위 등 1329위를 발굴했다.

발굴된 유해의 신원확인을 위해 유가족들의 참여가 필요하다. 유전자 검사를 통해 유해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전자 검사절차는 간단하다. 시료채취 대상은 전사자의 친가, 외가 8촌까지 가능하며 전국 보건소, 군병원 등에서 할 수 있다.

국립서울현충원 위패봉안관

국립서울현충원 위패봉안관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은 당선이 되거나 새해 첫 공식 일정으로 현충탑을 찾아 참배한다. 묵념을 하면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넋을 기리며 다시는 이 땅에서 전쟁과 같은 불행한 일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외국을 방문하거나 외국의 국빈이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도 첫 공식일정은 현충탑에 분향하는 것이 관례다.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선조들의 고귀한 희생을 국가가 잊어서는 절대 안 되기 때문이다.

수원시에는 1963년부터 국립보훈원이 위치해 있다. 국가유공자 및 유족의 양로 보호, 국가유공자의 미성년 자녀 양육 보호, 보훈복지타운 관리운영 등의 업무를 하고 있다. "어제는 당신이 우리를 지켜주셨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당신을 지켜드리겠습니다." 국가보훈원의 다짐이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공헌한 무의탁 국가유공자 및 그 유족들의 의식주 일체를 보호하면서 양로, 양육을 담당하는 것은 국가가 당연히 할 일이다.

수원시에는 지지대고개에 프랑스군 참전기념비가 있다. 프랑스군이 한국전쟁에 파병한 후 첫 숙영지를 건설한 곳이 수원이었기 때문에 프랑스군을 기념하기 위해 1974년 수원에 참전기념비가 세워진 것이다. 프랑스는 한국전쟁에 3400여명이 참전해 사망 270여명 등 1100여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머나먼 이국땅에서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젊은이들이 희생당한 것이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이들의 고귀한 희생을 기억하고 넋을 기리며 세계평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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