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에서 받은 도움 헛되지 않도록 앞만 보고 달렸어요”
전몰군경유족 자녀 김진성 씨, <국가유공자 명패 달아드리기> 대상 선정
2021-06-29 11:38:37최종 업데이트 : 2021-06-29 14:47:03 작성자 : 시민기자 김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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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공자녀 김진성 씨 댁에 부착된 명패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경기남부보훈지청에서는 <국가유공자 명패 달아드리기> 사업 (이하 명패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올해부터는 전몰·순직군경유족, 전상군경유족(1급~6급2항), 재일학도의용군인유족, 특별공로순직유족, 특수임무유족, 4·19유족, 5·18유족 등 대상 범위가 대폭 확대됐다. 또 코로나19 상황으로 명패 사업이 지청에 직접 방문해서 수령하는 방법, 우편 발송, 직접 댁에 방문해 부착하는 방법으로 다양해졌다. 경기남부보훈지청에서 지정한 올해 명패사업 대상은 모두 7,529명이다. 24일 김남영 보훈지청장, 정헌서 경인지방병무청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은 명패를 들고 팔달구 인계동에 거주하는 김진성 씨(1949년 생) 댁을 찾았다. 김진성 씨는 6·25 전쟁 발발 시 나라를 위해 싸우다 목숨을 바친 古김철기(1928년 생) 씨의 자녀다. 관계자들은 김진성 씨 대문에 명패를 부착하고 고개를 숙여 깊은 감사를 표했다. 김남영 보훈지청장은 "이렇게나마 전몰군경유족분들에게 감사를 표할 수 있어 다행이다. 명패사업으로 국가유공자에 대한 예우를 높이고 국가유공자분들의 자긍심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가유공자 명패 달아드리기>에 참석해 관계자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얼굴 뵙지 못한 아버지, 남은 건 사진 한 장뿐 김진성 씨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없다. 그저 아주 작은 사진 한 장이 남아 있을 뿐이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커서일까. 그는 사진을 크게 확대해서 액자에 넣어 소중히 보관하고 있었다.
"아버지만 생각하면 원통할 따름이다. 아버지가 1953년도 7월 16일에 돌아가셨는데 우리나라가 휴전되기 11일 전이었다. 조금만 버티셨어도 함께 좋은 날을 볼 수 있었을 텐데...아버지 기억에 나는 여전히 5살 꼬마로 남아 있을 뿐이다" (김진성 씨) 김진성 씨 아버지인 古김철기(1928년 생) 씨 사진 청주시에서 출생한 김진성 씨는 결혼하자마자 입대한 아버지가 전사하자 외가로 갈 수도 친가로 갈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다. 결국 사촌이 7명이 있는 큰아버지 댁에서 할머니 손길에 자라게 되었다. 다행히 친할머니가 "우리 진성이 괴롭히면 가만 안 둔다"며 싸고도는 바람에 엇나가지 않고 성장할 수 있었다고 한다. 대학교를 진학하지는 못했지만 농협에 입사해 30년간 근무한 김진성 씨는 열심히 근무하는 것만이 국가유공자녀로 살아가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사실 어렸을 때는 창피할 때도 있었다. 특히 아버지 없다고 놀림을 받은 일들은 커서도 상처로 남았다. 하지만 혹시 내가 처신을 잘못하면 '국가에서 주는 혜택을 받고 사는 거지 무슨 능력 있냐'라는 말을 들을까봐 열심히 살았다"고 말한다. 결국 그는 농협에서 퇴직하고 나서도 상임이사로 4년을 더 근무하게 되었고 각종 공모패 및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 김진성 씨가 농협에서 받는 각종 상패들 흔들릴 때마다 묵묵히 함께한 아내는 '고마운 친구' 늘 반듯하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으로 쉴 틈 없이 열심히 달렸지만 가끔은 과거가 원망스러울 때도 있었다. 특히 진로나 입사에 대해 옆에서 조언을 해주는 누군가라도 있었으면 지금보다 더 달라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한다고. 또 놀림을 받았던 상처로 마음이 흔들릴 때도 있었지만 다시 다잡을 수 있었던 건 바로 아내 때문이라고 한다.
김진성 씨는 "부모님 없이 자라서 그런지 아내에게 많이 의지한다. 동갑내기 아내라 부부지만 형제이자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 27살 수원에 와서 아내를 만나 결혼했는데 그 어렵고 가난한 시절에 불평불만 하나 없이 꿋꿋하게 집안 살림하고, 아이 둘 낳아 잘 키워주고, 집도 마련하며 한평생 살았다. 죽을 때까지 노력해서 아내에게 잘해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데 사실 잘 안될 때도 있다"며 허허허 웃는다. 이제는 남은 시간을 나라로부터 받은 혜택을 조금이라도 돌려주고 싶다는 김진성 씨. 그는 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에서 회원들과 함께 현충원 주변을 환경미화봉사를 한다. 또 매년 6월이 되면 아버지 위패를 모신 서울 현충원과 수원 현충시설을 오가며 인사를 빼놓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나라에서 광복절 직후부터 지금까지 국가유공자에게 도움을 많이 주고 있다. 명패를 달아주는 일이 사소할지라도 국가유공자 입장에서는 정말 고마운 마음이다. 앞으로도 남들에게 피해 끼치지 않고 도움을 줄 있으면 적극적으로 나서서 국가에서도 지원할 때 아까운 생각이 들지 않도록 살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앞으로는 다른 유족들이 수원에서 좀 더 편하게 부모님을 찾아뵐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돕겠다고 말하는 김진성 씨는 표정이 다부지다. 경기남부보훈지청 관계자가 김진성 씨 대문 옆에 명패를 부착하고 있다 연관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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