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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응수대목장이 밝힌 수원화성의 비밀
2012-11-05 13:53:06최종 업데이트 : 2012-11-05 13:53:06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지난 3일 수원화성박물관에서 신응수대목장과 함께 수원화성 답사를 진행했다. 
이날 40여명의 탐방객은 수원화성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한중일 전통목조건축 大木匠의 세계' 전시해설을 들은 뒤 수원천변을 따라 방화수류정과 화홍문, 장안문 순서로 화성답사에 나섰다. 

신응수대목장은 우리나라 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 대목장 보유자로서 1975년 수원화성 복원 당시 처음으로 도편수를 맡았다. 
이날 답사에서 신응수대목장은 복원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수원화성의 몇 가지 비밀을 밝혔다.

신응수대목장이 밝힌 수원화성의 비밀_2
방화수류정 기둥을 설명하는 모습

방화수류정에 도착한 신응수대목장은 '방화수류정 기둥의 비례와 아름다움'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방화수류정은 초석부터 마루부분까지는 원기둥이고 마루부터 지붕아래까지는 각기둥이다. 날렵한 지붕의 선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마루부분부터 기둥의 형태에 변화를 주었다는 대목장의 설명에 모두들 감탄을 금치 못했다. 

화홍문에도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화홍문은 일제강점기에 한차례 수리복원이 이루어진바 있었는데, 1977년 석축과 문루 해체복원 당시 수문의 위치를 앞쪽으로 조정하고 기둥목을 교체하여 문루를 높였다고 한다. 

장안문에 이르러 신응수대목장은 복원당시에는 밝히지 못한 비밀을 이제야 털어놓았다. 
팔달문을 토대로 한 설계안대로 장안문 문루공사를 다 마친 후의 일이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발간된 '조선고적도보'라는 책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팔달문과 장안문의 창방머리의 형태가 달랐다. 
팔달문의 창방머리는 조각이 된 형태인 반면 조선고적도보에 실린 장안문의 창방머리는 조각이 되지 않은 통머리 형태였다. 

신응수대목장이 밝힌 수원화성의 비밀_1
장안문 창방머리를 설명하는 모습

설계안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신응수대목장은 부랴부랴 창방을 교체하기 위해 우리 소나무를 구하러 다녔지만 나무를 구하지 못해 반은 창방을 교체하고, 나머지 반은 창방머리만 잘라 교체했다. 
그리고 창방 사괘에 창방머리가 달리 연결된 사연을 먹칼로 기록해두었다고 한다. 신응수대목장은 생전에 다시한번 기회가 온다면 장안문을 온전하게 복원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하였다.

11월 17일 신응수대목장과 수원화성을 답사할 수 있는 또한번의 기회가 있다. 자세한 내용은 수원화성박물관(228-4216, 4217)으로 문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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