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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샤인 Shine'의 감동을 다시 느끼다
수원시립교향악단 제218회 정기연주회를 보고나서
2012-10-05 08:33:58최종 업데이트 : 2012-10-05 08:33:58 작성자 :   최성혁

10월 4일 퇴근길..
추석 연휴를 지나고 첫 출근인 탓인지 유난히 피곤한 하루였다.
저녁 7시쯤 사무실을 나서 집으로 걸어가는 길. 20분 남짓이면 도착하는 가까운 곳이지만 무거운 발걸음을 떼자니
집으로 가는 길이 한없이 멀게만 느껴졌다.

영화 '샤인 Shine'의 감동을 다시 느끼다_1
정기연주회포스터
집으로 가는 길 모퉁이에 붙어 있는 포스터 하나 '수원시립교향악단 제218회 정기연주회'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협연자로 나와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을 연주한단다.

손열음은 작년에 차이코프스키 콩쿨에서 2위와 피아노 협주곡 특별상을 받은 연주자가 아닌가.. 바로 그때 연주했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을 이곳에서 연주한다니.. 경기도문화의전당이면 집에 가는길에서 조금만 돌아가면 된다.

문화의전당 행복한대극장에 도착하니 공연 10분 전 공연장 안팎은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서둘러 매표소로 가니 무대 오른쪽 뒤편 1자리가 남았단다.. 누가 채갈까 서둘러 지갑을 열고 표를 받아 들었다.

무대가 환해지고 웅성웅성거리던 관중석이 조용해 질 무렵 관중의 박수를 받으며 수원시립교향악단이 먼저 입장했다. 그리고  정열적인 빨간색 드레스를 입은 협연자가 등장했다. 차이코프스키 콩쿨에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을 연주할 때와 같은 드레스가 아닌가..

1악장,
오케스트라의 반주 속에 서정적인 멜로디의 피아노 주제부가 연주된다. 15년전 데이빗 헬프갓이라는 피아니스트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샤인'에서 어린 주인공이 아버지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 악보를 보며 흉내내던 바로 그 소리, 청년기의 헬프갓이 온몸을 불살라 연주하다 미쳐버린 바로 그소리다. 이제 시작일 뿐인데 벌써 온 몸은 감동으로 떨려온다. 오케스트라가 잠시 숨을 죽이고 피아노가 휘몰아치는 카덴짜 부분.. 손열음은 마치 무대위에서 온몸으로 춤을 추듯 연주하고 청중들은 그런 연주자에 깊이 빠져들었다.

2악장,
1악장의 광풍을 잠시 가라앉히듯 조용한 분위기의 2악장이 넓은 목장에서 들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듯한 분위기로 연주된다. 연주자도 청중들도 모두 지긋이 눈을 감고 넓은 목장의 가을 바람을 느끼고 있었다.

3악장,
2악장과 연결되어 한번에 연주되는 3악장은 시작부터 아주 강렬하다. 또 한 번의 폭풍을 예감하듯 연주자는 무대위를 휘젓고 협연자의 옛 스승은 지휘자석에서 떨어질 것 처럼 춤을 추고 있다. 나의 기억은 다시 15년전 영화 '샤인'을 보았던 그때로 돌아가고 있었다. 영화를 보고 너무 감동한 나머지 서점으로 달려가서 음반과 악보를 샀었던 기억이 난다. 악보를 한장씩 넘겨보며 들어본 피아노협주곡 3번은 그야말로 엄청난 것이었다. '이걸 사람이 연주한단 말인가..'  3악장의 폭풍처럼 몰아치는 부분에서는 악보의 종이가 별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온갖 콩나물들이 빽빽히 들어 차 있는 악보는  왜 '샤인'에서 주인공이 미치지 않고는 연주할 수 없다고 했는지 알 듯 하다. 다시 연주는 마지막을 향해 달려갔다. 협연자는 이제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리듯 잠시 팔을 아래로 내리고 몸을 뒤로 젖혔다가  건반에 얼굴이 닿을 듯 온몸을 숙여 피날레 부분을 시작했다.
오케스트라의 총주가 끝나고 음악에 빠져있던 협연자의 얼굴이 현실로 돌아오자 관중은 '우레와 같은 박수'가 어떤 것인지 협연자와 수원시립교향악단에게 보여주었다. 

청중들의 엄청난 환호와 박수세례 속에 협연자는 4~5차례의 커튼콜 끝에 다시 피아노에 앉았다.
무슨곡인지는 모르겠지만 쇼팽냄새가 물씬나는 곡을 나비처럼 연주하고 또 한번의'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으며 퇴장했다.

이런 대곡을 퇴근길에 우연히 듣게 되다니 연휴 후 첫 출근의 피곤함은 이미 어디론가 가버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마치 보도블록 위에 피아노 건반이 그려져 있듯 날아갈 듯 가볍다.

아마도 당분간은 '샤인' OST 앨범을 끼고 다닐 것 같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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