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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초월, 정조대왕의 효심과 함께한 3박4일 체험순례
정조대왕 능행차길 체험순례
2007-08-29 11:23:07최종 업데이트 : 2007-08-29 11:23:07 작성자 :   e수원뉴스

수원시는 정조대왕의 효심을 체험하고 능행차길의 문화유산들을 통해 우리 문화의 소중함을 재인식하고자 제4회 정조대왕 능행차길 체험 순례를 가진바 있습니다. 

서울 창덕궁에서 7월 29일 오전 9시에 출발, 8월1일까지 3박4일 동안 정조대왕의 능행차 코스를 도보로 답사한 순례단은 8월 1일 오후 4시30분 연무대에서 해단식을 갖고 대장정을 마무리 했습니다.  

이번 순례단에는 전국의 초·중·고생 350명이 신청,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발된 250명이 참가했습니다.

순례 코스는 창덕궁~한강 배다리터~노량행궁지~시흥행궁지~만안교~안양행궁지~사근행궁지~효행기념관~수원'화성~연무대~용주사~융릉까지 총 62.2km로써 학예연구사와 문화유산 해설사들이 전 구간을 동행하면서 역사의 현장에 대한 생생한 역사적 사실을 설명함으로써 참가 청소년들의 이해를 높였습니다.

'해피수원뉴스'는 '정조대왕 능행차길 체험순례' 홈페이지에 올려진 글을 관계자의 양해를 얻어 게재합니다. 
<편집자 주>
 
■첫째날■ 

장대비 맞으며 행진...꾸러기들 "말 안 들으면 저녁밥 쬐끔 준다" 협박에도 '킥킥...'  

7시 반까지 집결이지만, 새벽밥 먹고 일찌감치 창덕궁 앞에 도착한 참가자와 부모님들이 벌써 꽤 여럿 보입니다. 행여 늦을 새라 서둘러 온 길, 참 부지런하기도 합니다. 

비록 3박4일간의 짧은 헤어짐이지만, 창덕궁까지 오는 시간은 얼마나 애틋한 마음으로 가득했을까요. 부모 자식간의 속 깊은 정을 도란도란 많이들 나누었을 듯합니다. 부모님은 괜히 자식 생고생시키는 거 아닌가, 미안했을 것이고, 아들딸들은 그간 부모님께 심술 부렸던 일들이 괜스레 마음에 걸리기도 했을 테지요.

이윽고 7시 반이 되기 전에 모두들 약속 시간에 맞춰 제 때 행사장에 도착했습니다. 참가자 가족들도 상당히 많이 오셨습니다. 참가자 정렬이 시작되고, 가족들은 창덕궁 앞 광장 좌우측에 마련된 의자에 앉았습니다. 더러는 서 계시고 또 몇몇 분들은 맨 돌에 앉으셨네요.

시간 초월, 정조대왕의 효심과 함께한 3박4일 체험순례_1
창덕궁 앞에 모인 순례 참가 청소년들, 순례단이 국보 1호 숭례문을 돌아보고 있다.

 
날씨가 꽤 흐립니다. 순례 시작도 하기 전에 비가 내리면 어쩌나, 출정식 중에 비가 오지나 않을까 이런저런 걱정이 앞섭니다. 그냥 흐리기만 하고 비는 참아 주시면 참 좋을 텐데... 사실 쨍쨍한 날씨보다 약간 흐린 날씨가 순례하기엔 더 좋습니다. 쉬 지치지 않기 때문이죠. 직사광을 받으며 순례하기란 참 고역입니다. 여름이 이름값을 못 하면 여름이라 할 수 없긴 하겠지만...

우선, 창덕궁 관람부터 시작합니다.
관람 시작 전에 간단하게 창덕궁에 대해서 관광해설사님께서 설명을 해 주셨는데 어찌나 귀에 쏙쏙 들어오게 설명을 잘 해 주시는지... 사흘만 들으면 역사에 대해 척척박사가 될 것만 같습니다.

창덕궁 서문으로 들어가 금천교 앞에서 다리의 유래와 의미를 전해 듣습니다. 아항~ 거기에 그런 깊은 뜻이... 건성건성 듣는 듯해도 다들 한 귀는 열어두고 마음에 잘 새겨 두었을 걸로 믿습니다. 

인정전에 이르러 정조대왕에 얽힌 역사적 사실들을 듣고 있노라니 정조 임금님을 눈앞에 마주한 듯 생생하게 그 모습이 그려집니다. 창덕궁이 한일합방의 치욕을 당한 장소이기도 하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울분이 새삼 솟구칩니다. 저마다 눈빛이 초롱초롱해 집니다. 역사를 바로 알아야 치욕을 되풀이하지 않게 되겠지요. 

아름다운 희정당을 가볍게 둘러보고 고종황제 어차 보관소를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구경합니다. 다른 관람객들이 예약되어서인지 시간에 꽤 쫓기네요. 창덕궁 구경했다는 정도로 만족해야 했던 점이 무척 아쉽습니다. 창덕궁 후원 쪽으로 가면 그야말로 세계 최고의 왕궁 정원이라 할 만한 비경이 기다리고 있는데 매번 순례 행사 때마다 시간에 쫓겨 이 비경을 구경하지 못 하고 돌아 나와야 하는 아쉬움이 참 큽니다. 나중에 시간 내서 찬찬히 둘러볼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창덕궁 관람을 마치고 출정식 예행연습이 간단히 있었습니다. 말 안 들으면 저녁밥 쬐끔만 준다는 수원문화원 국장님 말씀에 좌중이 킥킥거리고 웃습니다. 

마침내 출정식이 시작되었습니다.
생각처럼 손발이 딱딱 맞아 주질 않네요. 헐~ 그래도 우린 어설프기 그지없는 초짜들의 한계를 사랑하며 무한한 긍지와 자부심으로 여깁니다. 그 이유는 나중에 해단식 때 보면 압니다. 진짜 제대로 달라져 있을 테니까요. 그게 순례의 맛이죠. 

경과보고에 이어 수원문화원장님의 격려 말씀을 듣고 드디어 출발!
아, 이제 고생문 시작입니다. 부모님들의 걱정과 격려를 뒤로 하고 힘차게 첫발을 내딛습니다.

창덕궁 정면으로 난 길을 따라 단성사 앞으로 해서 종각, 명동, 숭례문까지 거침없이 나아갑니다. 경찰관 아저씨들께서 마치 자기 가족들이기나 한 것처럼 순례단을 일일이 보살피며 교통 통제를 똑소리 나게 해 주십니다. 정말 고마우신 분들이죠. 로또 복권 한 장씩 사 드리고 싶었습니다.

숭례문 잔디광장에 이르러 잠시 휴식을 갖기로 합니다. 휴식은 언제나 달콤합니다. 그런데 날씨를 보니 울고 싶어지네요. 우중충 시꺼멓게 구름이 잔뜩 끼었습니다. 금방이라도 비를 쏟아 부을 것만 같습니다. 나눠 준 일회용 비옷을 다들 꺼내 입습니다.

잔디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간식을 먹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양동이로 퍼붓는 정도는 아니지만, 바가지로 퍼붓는 정도는 될 듯한 굵은 장대비가 쏟아집니다. 순례 시작부터 이런 우중천국 모드로 순례를 해야 하다니 ㅠㅠㅠ 비가 들이쳐 속옷까지 다 젖을까 걱정입니다. 그래도 갈 길은 가야죠.

서둘러 짐을 챙겨 출발합니다.
눈앞이 잘 안 보일 정도로 갑자기 빗줄기가 세차졌습니다. 도로가 순식간에 질펀해져 서울역 앞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운동화가 속까지 온통 다 젖어 버렸습니다. 정조대왕의 을묘년 행차 때도 이틀째 날 비가 왔다고 하니 능행차길 체험 제대로 하려나 봅니다.

남영동에 이르렀을 때에야 빗줄기가 좀 가늘어져 걷기가 한결 수월해 졌습니다. 오십견 걸릴 거 같다며 애늙은이 같은 엄살을 떨던 팀 기수도 좀 발걸음이 가벼워 졌을 테지요.

삼각지를 지나 용산에 당도하니 점심밥이 가까이 있다고 생각돼서 그런지 한달음에 한강에 도달할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비에 씻겨 거리 풍경이 이전보다 훨씬 말끔해 졌습니다. 비가 오길 잘 했다고 해야 하려나요? 옆의 순례친구와 재잘거리며 갈 길을 재촉합니다.

오, 한강이닷!
비 때문에 폭염을 피할 수 있어서인지 오히려 상당히 걸음이 빨랐던 모양입니다. 숭례문 광장에서 꽤 오래 쉬었음에도 한강 둔치에는 제 때 잘 도착했습니다.

배식대가 순례단을 기다립니다. 얼른 밥을 주시오, 밥을~
질서 있게 밥을 타서 삼삼오오 모여 민생고를 해결합니다. 한강에서 밥을 먹으니 소풍 온 기분입니다.

점심식사 후 이십 분 정도는 쉰 것 같습니다.
수원문화원 국장님의 배다리 설명이 있었습니다. 배다리는 어떻게 만들었는지, 정양용 선생이 어떻게 대활약을 하셨는지, 주교사는 또 뭔지 이런 등등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배로 다리를 만든다니 참 신기합니다.

그 사이 비도 완전히 그치고 햇살이 나기 시작했네요. 이번엔 오히려 오후 날씨가 장난 아니게 더울 것 같은 걱정을 해야 할 판입니다. '비 오면 짚신 팔 걱정이요, 날 개면 나막신 팔 걱정'이라더니 꼭 그 짝입니다. 긍정의 힘! 아 그렇군요. 날씨가 좋을 거라 믿기로 했습니다. 

배다리 설명을 다 듣고 난 후 강 남쪽 강변에 자리한 용양봉저정으로 향했습니다. 노량행궁이라고도 하고 임금님께서 점심을 드시기 위해 잠시 머무셨다 하여 주정소라고도 하던 곳입니다. 노량행궁에는 원래 누각과 건물이 여러 채였으나 일제시대 때 대부분 파괴되어 정자 하나만 남았습니다.

용양봉저정에 대하여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설명을 하시는데 우리의 순례단원들은 영 딴 짓입니다. 머리는 자꾸 쳐지고 눈꺼풀은 자동으로 내려갑니다. 이런 걸 전자동 모드라고 하나요? 한 뼘밖에 안 되는 좁은 공간에 여섯 팀이 모두 모여 들으려니 그것도 쉽지 않긴 하네요. 노량행궁이 옛 모습 그대로 복원될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지하철 공사로 좀 어수선한 도로로 들어섭니다. 인도가 좁아 걷기가 상당히 불편합니다. 다행히 경찰관 아저씨들께서 여럿 나와 도와주셔서 안전하게 행진을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대방역을 지나 공군회관 앞에 이르렀습니다. 경험상 쉬어가겠군, 하는데 이게 웬 걸... 그냥 지나갑니다. 에구 이런이런... 말을 잘 안 들어 벌로 휴식 없이 통과라네요. 자라나는 새싹을 이렇게 핍박해도 되는 겁니까!!!!! 좀 봐 주시지 진짜 너무하시네 ㅠㅠㅠ (눈물 주룩주룩)

마음은 자꾸만 공군회관으로 뒷걸음치는데 발은 저절로 앞으로 향하네요. 가긴 가는데 그 발이 남의 발만 같습니다.

농심 사옥이 눈에 쏙 들어옵니다. 반갑다, 농심아~
화강암 판돌과 잔디, 조형물로 잘 꾸며 놓은 널찍한 사옥광장에 앉아 꿀맛 같은 휴식을 즐깁니다. 무거운 짐진 자들이 물 버리러 자리를 비운 사이 남은 사람들은 초콜릿 쟁탈전을 치릅니다.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곱다니 잘 챙겨 둡니다.

푸른 잔디를 벗 삼아 쉬다가 다시 출발~~~!
숙영지인 문성초등학교까지 휴식 없이 바로 가기로 하였습니다. 오십분이면 간다는 달콤한 말에 속아 열심히들 갑니다. 그래도 힘을 주는 거짓말이니 용서해 주기로 합니다.

구로디지털역을 지나 고개를 하나 넘자 오, 드디어 문성초등학교!
반갑다, 학교야~

전문 설치팀이 질서정연하게 미리 쳐놓은 텐트들이 우리 순례단원들을 반갑게 맞이합니다. 얼굴에 화색이 완연히 돌기 시작합니다. 줄줄이 운동장으로 들어서 정렬을 합니다. 짐을 풀고 몸 풀기 체조를 합니다. 몸을 안 풀어 주면 밤에 잠 못 잔다는 팀장님의 엄포에 다들 열심히 체조를 따라 합니다.

체조 후 저녁식사를 하고 목욕을 하러 갑니다. 하루 종일 땀에 젖고 비에 젖었으니 밥보다 목욕이 더 좋다고 말하고 싶었던 친구도 꽤 있지 않았을까 싶네요. 불가마 찜질방을 아수라장으로 만들다시피 하며 요란하게 목욕을 했습니다. 새로 생긴 곳이라 수영장을 방불케 하는 냉탕에 몸을 따끈하게 지져주는 열탕, 온탕까지 골고루 있었으니 하루 동안의 피로는 눈 녹듯이 사라졌을 겁니다. 하루 종일 땀 흘리다가 목욕하고 새옷까지 뽀송뽀송하게 갈아입는 이 기분, 이런 걸 날아갈 듯하다고 하는 거겠죠.

전쟁과도 같은 목욕을 마치고 숙영지로 다시 돌아와 짐을 정리하고 잠시 자유시간을 갖습니다. 자유는 좋은 것이여~

이제 내일을 위해 잠자리에 들 시간. 첫 날이라 힘들었지만 무사히 잘 마쳤습니다. 구름마저 싹 걷히고 달도 휘영청 밝아 우리 순례단을 축복해 주는 것만 같습니다.

모두들 부모님 생각하며 단꿈에 빠져 들었겠죠.

 ■둘째날■
 

시흥행궁에서 고천까지, 끝없는 고행길..."돈벼락보다 반가운 식사시간이여!" 

전날 고된 일정을 소화하느라 잠자리의 몸은 천근만근. 첫날 오전에 비까지 흠뻑 맞은 터라 물에 젖은 솜처럼 무겁습니다. 그래도 소화해야 할 일정이 있는지라 팀장님 조장님들의 불같은 호령에 다들 잠자리에서 일어나 부랴부랴 아침점호 준비를 합니다. 개중에는 5시 반도 안 됐는데 벌써부터 일어나 운동장과 세면장을 휘젓고 다니는 부지런한 친구들도 있더군요.

아직 잠이 덜 깬 채로 운동장에 모여 아침점호를 받습니다. 조별 인원 점검, 부상자 점검을 하고 몸풀기 체조에 들어갑니다. 말이 몸풀기 체조이지 유격훈련만큼이나 빡셉니다. 선임 팀장님 말씀이 몸을 대충대충 풀면 부상의 염려가 있고 근육이 뭉쳐 안 좋다네요. 살 빠지는 소리가 쭉쭉 들립니다.

이른 아침을 먹습니다. 하지만 집에서도 제대로 안 챙겨 먹는 아침밥이 기름칠한 밥처럼 제대로 잘 넘어갈 리가 있겠습니까. 입 안에 온통 가시가 돋은 것처럼 영 밥이 땡기질 않습니다. 먹는 둥 마는 둥 젓가락으로 밥알만 세며 휘적거리다 새눈꼽만큼 뜨는 친구들이 꽤 되는군요. 중간중간 공급하는 간식들 열량이 높긴 하지만 하루 일정을 생각하면 약간 걱정은 됩니다.

식사를 마친 후 세면하고 텐트 정리에 들어갑니다. 매트는 차곡차곡 접어서 텐트 밖에 내놓습니다. 비닐백의 짐도 다시 잘 갈무리해 매트 옆에 함께 내놓습니다. 비록 나무늘보처럼 느리디 느린 동작이지만 제법 능숙해 보이긴 합니다. 이 짐들은 나중에 순례단원들이 숙영지를 출발하면 전담 시설조가 수거해 차로 옮겨 싣게 됩니다. 저녁에나 만나보게 될 짐들입니다. 분신과의 짧은 이별이군요.

드디어 출발!
어떤 출발이든 새롭게 시작할 땐 늘 조금씩은 설렙니다. 그 신선한 느낌이 참 좋습니다. 피톨들이 활기차게 온 몸 구석구석을 톡 톡 간질이며 지나가는 것만 같습니다.

오늘도 우리 순례단을 지켜 주기 위해 어김없이 경찰관 아저씨들께서 이른 아침부터 나와 주셨습니다. 마치 자기 일처럼 우리 순례단을 돌봐 주시고 챙겨 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사실상 이 분들은 우리 순례단과 함께 순례를 하시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관할구역이 바뀔 때마다 다른 경찰관 아저씨들께서 순례단 선도 역할을 넘겨 받으시지만 각기 담당한 구역에서의 도보량이 상당합니다. 보통 몇 킬로미터에 이르니 그야말로 우리 순례단과 한 식구 아닌가요? 눈물나게 고맙죠.

오늘의 첫 행선지는 시흥행궁터입니다. 그곳으로 가기 전에 금빛공원에 먼저 들러 휴식 겸 설명을 듣기로 했습니다. 공원 내 야외음악당으로 줄줄이 들어서 팀별로 노천좌석에 앉습니다. 과일과 생수를 나눠받고 나서 수원문화원 국장님과 금빛공원 관광해설사 선생님의 설명을 듣습니다. 

시간 초월, 정조대왕의 효심과 함께한 3박4일 체험순례_2
시흥 금빛공원에서의 야외 강의 , 푹푹 찌는 무더위 속에서도 씩씩하게 행진하고 있는 청소년들

 
파괴되기 전의 시흥행궁은 114간이나 되는 꽤 큰 건물이었습니다. 평상시에는 관아로 쓰다가 임금께서 행차하실 때는 행궁으로 쓰였다고 합니다. 정조대왕께서 을묘년 행차 때 들르셨던 곳인데, 지금까지 보존되었다면 멋진 유적지가 되었을 텐데 너무 아쉽습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능행도의 여덟 폭 그림 가운데 '시흥환어행렬도'에 시흥행궁의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어 복원의 길을 터주고 있습니다. 이 행궁 역시 머지않아 복원되어야 할 소중한 유적입니다.

설명을 다 듣고 난 후 실제 유적지인 시흥행궁터로 가기 위해 금빛공원을 뜹니다.

금빛공원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만한 거리에 시흥행궁터가 있습니다. 글자 그대로 행궁이 있던 자리만 덩그러니 남아 있습니다. 수령 830년 된 은행나무 세 그루만이 보호수로 지정되어 그 곳이 옛 행궁 자리였음을 증언해 주고 있습니다. 주변에는 도로와 빌딩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어 순례단을 모아 놓고 설명해 줄 만한 공간조차도 남아 있질 않으니 허무하고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허전함을 뒤로 하고 시흥행궁터를 떠나 다시 고달픈 순례자의 길로 들어섭니다. 

널찍한 시흥대로로 다시 접어듭니다. 시흥대로는 정조대왕이 융릉 행차를 하시기 위해 대대적으로 확장한 길로, 말과 군사들이 가로로 늘어서 지나갈 수 있도록 도로 폭을 넓히고 하천이 있는 곳엔 튼튼하게 다리를 놓았습니다. 이 길은 이후 조선 10대로(大路)의 하나로 발전하게 되며 오늘날의 1번국도 원형이 됩니다. 길 하나에도 유래가 있고 역사가 있으니 우리 생활공간 곳곳에는 무궁무진한 이야기들이 간직되어 있는 셈입니다.

시흥유통단지를 지나 아래를 향해 죽~죽~ 내려갑니다. 한낮이 가까워 오니 날씨가 찌기 시작합니다. 누가 내 더위 좀 사 가라~ ㅠㅠ 그래도 작년보다는 더위가 덜해서 고맙다고 절해야 할 정도입니다.

지루하고 단조로운 도로 풍경 때문인지 더 힘이 든 것 같습니다. 어디 머리 디밀고 식힐 만한 그늘조차도 없으니 암담합니다. 생명이 살아 숨쉬는 공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고난의 행군 끝에 마침내 다다른 석수체육공원!

아,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돈벼락이 떨어진들 이보다 반가울까. 넓고 산뜻한 석수체육공원에는 벌써 배식 준비가 다 되어 있네요. 자장밥이 꿀맛입니다. 핫도그에 수박까지 후식으로 곁들여 나오니 눈이 뒤집힙니다. 꽤 많이 남은 핫도그를 승리의 전사처럼 양손에 들고 의기양양해 하는 친구들도 여럿이로군요.

숲길을 따라 들어가 원탁과 의자에 삼삼오오 모여앉아 배가 '빠방하게' 점심들을 먹습니다. 친구들과의 수다는 또 다른 반찬입니다. 아침에 안 먹은 밥을 점심 때 한꺼번에 다 채워 넣은 듯합니다. 간식으로 채우든 한꺼번에 두 끼를 먹어 채우든 어찌됐든 정량은 다 찾아 먹게 되나 봅니다. 먹고 사는 길은 여러 가지죠.

점심도 배불리 먹었겠다, 남은 휴식시간은 귀족처럼 보냅니다. 이 순간만큼은 세상 부러울 것 없는 호강입니다.

다시 고행길 출발!
만안교를 향해 갑니다. 

만안교는 다리 모양이 성문 출입구처럼 위가 둥근 무지개문을 일곱 개 틀어 만든 돌다리입니다. 이 다리는 수원의 화홍문 아랫부분과 기본적으로 모양이 똑같습니다. 그 만큼 아름다운 다리입니다. 

정조대왕 이전까지는 왕이 행차하는 길에 임시로 나무다리를 가설했다가 끝난 뒤 바로 철거하는 것이 상례였으나, 행차 때마다 놓았다 헐었다 하는 번거로움을 없애고 평상시에도 백성들이 편히 다리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라는 정조대왕의 명으로 영구적인 돌다리를 놓게 되었다고 합니다. 

원래는 200미터쯤 위쪽에 놓여 있었으나 도로 공사 때문에 자리를 옮겨 다시 놓아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동네 사람들도 잘 모르는 다리의 유래를 우리 순례단원들은 오늘 제대로 꿰었습니다.

만안교에서 팀별로 기념사진 한 방씩 찍고 안양행궁터 쪽으로 향합니다.

안양행궁도 시흥행궁처럼 모두 허물어져 건물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행궁 자리는 아카데미 극장 근처로 추정되고 있는데, 현재 안양의 명동 격인 최고 번화가 한가운데 상가 건물 옆구리에 붙은 표지석 만이 초라하게 옛 기억을 되살려 주고 있습니다.

안양행궁은 이런저런 풍파에 시달린 끝에 1986년 수어장이란 여관으로 개조되었다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노량행궁이나 시흥행궁처럼 그림으로나마 옛 건물의 원형이 남아 있다면 좋으련만... 어쩌면 그림이 남아 있다 하더라도 땅값이 워낙 금싸라기가 되어 행궁을 다시 복원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네요. 처음부터 잘 지키고 가꾸지 못 하면 어떤 운명에 처하게 되는지 안양행궁터는 눈물로 증언해 주고 있습니다.

행궁터를 뒤로 하고 아래로 아래로 내려갑니다.
비좁은 도로를 가래떡 모양으로 길게 늘인 행렬로 채우며 나아갑니다. 길이 안 좋아 곱절은 더 힘이 드는 것 같습니다. 초죽음 일보직전에 마침내 다음 휴식지인 평성교회에 도착했습니다. 몇몇 순례단원들은 간식도 본 채 만 채 우선 화장실로 냅다 달립니다. 꼬리에 불 붙은 준마처럼 아주 잘 달립니다.

달콤한 초콜릿만큼이나 맛있는 휴식. 더위 속에 걷느라 너무 힘이 들어 그대로 땅바닥에 드러누워 자 버리고만 싶습니다.

다음에 이어지는 행로는 끔찍할 정도로 공단 냄새가 물씬 납니다. 군포사거리까지 내내 그런 풍경들뿐입니다. 옹색하게 세워 둔 가로수의 위로마저 별 도움이 되는 것 같지가 않네요. 발은 땅바닥에 자물통으로 채워 놓은 것처럼 무겁고 더위는 고문처럼 이어지고... 이래저래 죽을 맛입니다.

의왕에 접어들자 확 트인 넓은 도로 때문에 좀 숨통이 트입니다. '얼마나 더 가야 돼요?' 하고 묻는 소리가 잦아질수록 목표 지점이 가까웠다는 뜻입니다. 보건소사거리 쪽에 이르니 이제 다 왔다는 생각 때문인지 없던 기운이 절로 납니다. 거기에서도 한참을 올라간 끝에 마침내 당도한 숙영지 고천중학교! 주변은 푸른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경치가 그만입니다. 운동장도 월드컵경기장만큼이나 크고 넓어 마음에 딱 듭니다. 다만 목욕탕이 멀어 기를 죽이는 것 빼고는...

목욕탕까지 가는 전에 저녁부터 서둘러 먹고 부모님께 편지를 썼습니다. 하루 종일 시달려 파김치가 된지라 마음은 이미 목욕탕에 가 있는데 손은 편지를 쓰고 있으니 흰 건 종이요 검은 건 글씨라. 비몽사몽간에 편지를 씁니다. 부모님을 사랑하는 바다 같이 깊은 속마음만 글 몇 줄에 줄이고 줄여 띄웠을 건 불문가지. 그래도 우리 부모님들께선 능히 다 헤아려 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목욕탕 순례가 되어 버린 머나 먼 목욕탕길. 그래도 결코 생략하고 싶지 않은 길. 저녁 해질 녘이라 행렬은 장엄하기까지 합니다. 이렇게 물 구경도 하기 전에 초죽음부터 시키는 목욕은 난생 처음이었을 겁니다. 학교 옆에 목욕탕 좀 만들어 주세요 ㅠㅠㅠ 

야, 물이다~~!
어제의 호사에 비하면 추레하기 이를 데 없지만 탕 속에 콩나물처럼 바글바글 모여 장난에 여념들이 없습니다. 휴가기간에 우리 순례단 만을 위해 특별히 문을 열어 준 터라 완전히 제 세상입니다. 샤워 정도로 서둘러 목욕을 끝냅니다. 숙영지로 돌아갈 때는 버스로 태워준다니 반갑기 그지없네요.

학교로 돌아오니 한밤중입니다. 크게 정리할 것들만 대강 정리하고 잠자리에 듭니다. 이틀째 강행군에 온 몸이 녹아드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아마 잠자리에 들자마자 세상모르고 잠에 빠져 들겠네요.

이렇게 이틀째 순례가 마무리되었습니다.
내일은 또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셋째날■
 

반가워라! 드디어 지지대를 넘어 수원 입성..."얏호, 풀장이다"

셋째날이 밝았습니다.
구름이 엷게 낀 걸 보니 순례하기엔 좋은 날씨가 될 듯합니다. 햇살이 쨍쨍 내리쬐는 날씨에 순례를 하면 더위에 지쳐 걷기가 너무 힘들어 지기 때문에 약간 구름이 낀 날씨가 순례하기엔 더 좋습니다.

아침점호 후 몸풀기 체조, 식사, 세면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합니다.
텐트 정리는 깔끔히, 운동장 청소는 말끔히! 쓰레기 분리수거까지 능숙하게 마무리합니다.

밤사이 정들었던 고천중학교를 이제 떠나야 할 시간입니다.
경찰관 아저씨들께서 우리 순례단에 합류하자 순례단은 파도치듯 대열을 이루며 줄줄이 학교 정문을 벗어납니다.

어제 목욕탕 가던 그 길을 따라 행진 앞으로~!
시원하게 뻗은 대로에는 출근하는 차량들로 가득합니다. 출근길을 지각길로 만드는 민폐를 막기 위해 인도 위로 걷습니다.

지지대 고개는 제법 녹음이 우거져 걷기에 지루하지가 않아 좋네요.
정조 임금께서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참배하고 돌아올 때 능이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됨을 애통해 하며 느릿느릿 고개를 넘었다 하여 '지지대'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지지대를 표시한 비석이 고개 꼭대기 지점에 현재까지 남아 있습니다.

고개를 넘어서자 바로 효행기념관 진입로가 보입니다. 길 양편에 도열해 있는 푸른 소나무들이 문무백관처럼 보입니다. 

마침내 효행기념관에 도착!
수원 입성을 자축하며 저마다 기분 좋게 함성을 지릅니다.
효행기념관 앞 광장에서 잠시 설명을 들은 후 기념관 안을 둘러봅니다. 기념관으로는 작은 규모이지만 수원화성 축성 장면을 담은 모형들과 역사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어 한 눈에 수원화성의 전체 역사를 이해하기엔 참 좋은 곳입니다.

효행기념관 앞에서 단체로 기념사진을 찍고 다음 행선지로 이동!
노송길을 따라 걷습니다. 노송길은 정조대왕 당시 조성한 소나무숲길로, 크고 우람한 소나무들이 많았으나 일제시대 때 목재로 쓴다고 다 베어가 버려 현재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손에 꼽을 정도의 소나무들만 남아 있습니다. 하루 빨리 소나무 숲이 다시 조성되어 상처 입은 자존심이 회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한 시간쯤 걸어가니 만석공원이 나타납니다.
공원 한가운데는 커다란 일왕저수지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이 저수지는 '만석거'라고도 불리는데 정조대왕께서 수원화성을 축성하면서 농업을 진흥시키기 위해 이 저수지를 만든 이후 쌀이 일만 석이나 더 생산되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정조대왕 당시에는 현재보다 훨씬 규모가 컸지만 도시 발전과 더불어 많이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저수지 주변에는 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시민들에게 편안하고 쾌적한 생활공간을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주변의 집들은 공짜로 큰 정원을 앞마당에 두고 있는 셈이니 참 부럽습니다.

시간 초월, 정조대왕의 효심과 함께한 3박4일 체험순례_3
드디어 수원, 장안문을 통해 입성!, 인솔 선생님과의 즐거운 물놀이. 그야말로 물 만난 고기들.

 
만석공원에서 간단히 간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한 후 장안문으로 향합니다.

연도의 시민들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우리 순례단을 바라봅니다.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의기양양해 집니다.

멀리 장안문이 보입니다. 수원화성의 북문입니다. 성문은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을 이룹니다. 홍예 위에는 불이 나거나 적이 불을 질렀을 때 얼른 끌 수 있도록 물을 준비해 두는 물탱크가 있는데 구멍이 5개 뚫려 있다 하여 오성지라고 합니다. 2층에는 멀리 적의 동태를 조망할 수 있는 누각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성문 밖으로는 반원형의 옹성을 둘렀습니다. 옹성은 항아리를 반으로 쪼갠 모양과 같다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적대와 함께 성문을 향해 다가오는 적을 측면에서 공격하기 위한 장소입니다. 

최근에 장안문 서쪽의 구름다리를 헐어내고 축성 당시의 모습대로 성벽을 완전히 이어 붙여 복원하였습니다. 원래 모습으로 되살아나니 정말 근사합니다. 장안문의 동쪽 구름다리는 차량들이 드나들어야 하기 때문에 그대로 둔 채 손질만 하였습니다. 

열려 있는 장안문 안을 통과하여 아래로 아래로 내려갑니다.
성문과 순례단이 멋지게 잘 어울립니다.

종로사거리에 이르니 서쪽 편 팔달산 아래에 화성행궁이 보입니다. 화성행궁은 정조 임금과 혜경궁 홍씨께서 수원 능행차 때 머무르셨던 곳입니다. 현재 행궁 앞은 광장 조성공사가 진행 중입니다.

그 위쪽 팔달산 꼭대기 서장대에는 커다란 깃발이 펄럭입니다. 황색기는 장수기로 군의 지휘관이 이곳에 있다는 표시이며 흰색기는 병권을 상징하는 깃발로 병조판서 등이 이곳에 있을 때 게양하게 된다고 합니다. 임금님이 오셨을 때에는 용기를 달게 됩니다. 

아래로 더 내려가자 팔달문이 나옵니다. 팔달문은 기본적으로 북문인 장안문과 모양이 같습니다. 2층 누상에는 경기유형문화재 제69호인 동종이 걸려 있습니다.

수원 화성을 빠져나와 수원향교로 갑니다.
수원향교 잔디밭에 앉아 전교 선생님의 설명을 듣습니다. 향교의 책임자를 전교라 합니다. 수원향교는 원래 고려 원종 22년에 화성군 봉담면 와우리에 세워졌던 것을 조선 정조 때 수원성곽을 축성하면서 현재 이곳으로 옮겨 다시 지은 것입니다. 대성전도 특별히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좀처럼 개방하지 않는 대성전을 돌아볼 수 있었던 건 네 번의 순례 중 이번이 유일합니다. 행운이라고 할 만큼 특별대우를 받은 셈이지요.

자, 이로써 몸으로 때우는 오늘의 도보 순례는 끝났습니다. 다음 코스는 버스로 이동하며 순례를 하기 때문입니다. 지옥에서 천당으로!

배가 불러야 임금을 안다고 했던가요. 허기져 눈에 뵈는 게 없는 우리 순례단. 수원향교 옆의 매산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점심을 먹습니다. 디저트로 나온 아이스바를 하나라도 더 얻어먹으려고 눈들이 호시탐탐 초롱초롱합니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버스에 올라 용주사로 향합니다.
용주사는 융릉을 지키는 원찰로, 능을 잘 지키라고 정조께서 각별히 애정을 쏟아 세운 절입니다. 원래는 갈양사라는 절이었는데 융릉이 조성되면서 지위가 최상급으로 격상되었습니다. 이 절은 궁궐 양식을 사용해 지었을 정도로 각별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용주사 효성전에는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 정조대왕과 효의왕후의 위패를 모셨으며 매월 음력 18일에는 재를 올린다고 합니다. 오늘이 바로 그 날이라 오전에 재를 올렸다고 하네요. 

용주사를 나와 능행차의 목적지인 융릉으로 갑니다.
융릉은 정조대왕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입니다. 원래는 양주 배봉산(지금의 전농동 서울시립대학 자리)에 있었으나 정조대왕 때 화성 땅으로 천장을 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곳은 세종대왕의 영릉과 함께 조선 최고의 명당으로 꼽힙니다. 

이 능자리는 풍수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던 정조께서 직접 고른 땅이라고 하는데 정조대왕의 아버지에 대한 효심이 어떠했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조선 시대에 풍수에 대해 가장 뛰어났던 임금이 두 분 계시는데 세조와 정조라고 합니다.

이로써 오늘의 역사 유적지 순례는 모두 끝나고 신나게 노는 일만 남았네요. 수영장과 캠프파이어가 기다리고 있거든요.

버스를 타고 수영장으로 직행! 벌써부터 마음은 물 속에 들어가 있습니다.

원천수영장에 당도하자 모두들 물 만난 고기가 됩니다. 마음은 급한데 주의사항 일장 연설을 듣고 준비운동까지 하고 나서야 물에 들어갑니다. 팀장 선생님과 조장 선생님 물 먹이느라 여념들이 없네요. 아주 신났습니다. 언제 힘들었냐 싶게 표정들이 생기로 가득합니다. 찜질방에서 못 다 이룬 한을 오늘 다 풀고 갑니다.

수영을 마치고 숙영지인 산의초등학교로 입성!
벌써 텐트가 가지런히 설치되어 있네요. 짐을 풀고 저녁을 먹습니다. 바비큐가 쫀득쫀득 입에 착착 달라붙습니다.

잠시 운동장을 정돈한 후 본격적인 캠프파이어에 들어갑니다.
레크레이션이 시작되기 전 비보이 댄스 그룹인 '엠비크루'의 축하공연이 펼쳐집니다. 세계대회에서 우승 경력을 자랑하는 최고의 스타들입니다. 신도 놀라게 할 만한 갖가지 묘기에 입들이 쩍쩍 벌어집니다. 다들 까무러칩니다. 괴성인지 함성인지 아우성인지 아무튼 열기가 엄청납니다. 혼이 쏙 빠져 달아난 것 같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레크리에이션이 이어집니다. 먼저, 장작 점화! 점화봉을 갖다 대자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맹렬한 불길이 천 길 만 길 하늘로 순식간에 치솟습니다. 폭죽이 연달아 터지며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습니다. 모두들 신나게 망가지고 한 마음으로 어우러집니다. 그야말로 후끈 달아오릅니다. 가장 잘 한 팀(실은 가장 적나라하게 망가진 팀)에게는 멋진 선물이 돌아갔습니다. 상을 못 탄 팀들은 침만 질질... 그래도 축하는 아낌없이 해 줍니다.

맨 마지막 촛불의식 때는 차분히 마음을 가다듬고 부모님과 가족과 소중한 친구들을 생각해 봅니다. 아름다운 밤입니다. 이대로 이 밤이 계속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로써 오늘 프로그램은 모두 끝났습니다. 선물로 모두에게 과자와 음료가 한 보따리씩 안겨졌습니다.

잊지 못 할 석별전야.
보석 같은 추억을 간직한 채 마지막 밤이 기울어 갑니다.

 ■마지막 날■
 

고행을 통해 배운 정조대왕님의 효심..."이젠 부모님께 실천할 거예요"

운동장 한가운데 장작더미는 다 타버려 고스란히 재가 되었지만 어제 밤의 뜨거운 열기가 아직도 살아 있는 듯 기억이 생생하게 묻어납니다. 

간밤에 늦게 잠을 잔 터라 오늘 기상시간은 30분 늦춰 6시 반. 다들 부스스한 눈을 비비고 일어나 하루 일과를 시작합니다. 다만 아침부터 구름이 잔뜩 끼어 걱정입니다.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듯합니다. 

버스를 타고 화성행궁으로 향합니다.
행궁 옆 주차장에 도착하니 비가 내립니다. 비옷을 입기엔 좀 약한 것 같고 그렇다고 안 입고 버티자니 옷이 다 젖을 것 같습니다. 일단 비옷을 나눠 받아 입었습니다. 비옷이 살갗에 닿았을 때의 그 칙칙한 느낌, 정말 싫은데...

우선, 화성행궁 옆의 수원화성홍보관에 먼저 들릅니다. 이곳에는 수원화성의 모든 역사자료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화성 건설과 관련된 각종 기록물, 화성의 변천사를 보여 주는 역사 사진, 파괴된 행궁지에서 발굴 작업을 할 때 나온 유물, 세계문화유산 등록 작업과 관련된 문서 등이 체계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어 한 눈에 화성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순례단원들의 눈빛이 제법 초롱초롱합니다. 

홍보관을 나오니 어느 새 비가 그쳤습니다. 하늘은 여전히 잔뜩 찌푸려 있지만...

다음엔 화성행궁으로 갑니다.
행궁 정문인 신풍루 앞에는 잎이 무성한 커다란 느티나무 세 그루가 우람한 자태를 뽐내며 서 있습니다. 이 나무들은 행궁 건설 당시부터 서 있던 나무로, 일제의 혹독한 만행에도 꿋꿋하게 살아남아 지난 200년 동안의 일들을 말없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시간 초월, 정조대왕의 효심과 함께한 3박4일 체험순례_4
화성 행궁 앞에서 단체로 한컷, 순례의 마지막 코스, 세계문화유산 화성한바퀴

 
느티나무는 궁궐에 심는 대표적인 나무로, 궁궐 정?앞에 심은 세 그루의 나무는 '삼공의 그늘'이라는 근사한 이름으로도 불립니다. 느티나무 밑에 삼공(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이 나란히 마주 보고 앉아, 오는 이를 맞이하였다고 하여 그런 별칭이 붙었다고 합니다. 

신풍루를 지나니 바로 왼쪽에 거중기가 보입니다. 잘 알려져 있듯이 거중기는 조선의 천재 정약용이 서양과 중국 서적을 참고하여 발명한 건설장비입니다. 화성 축성 때 처음 사용되었습니다. 실물로 보고 나니 정말 큽니다. 우리 순례대장님, 팀장님도 거중기로 들 수 있으려나 ㅎㅎ 

좌익문, 중양문을 지나 봉수당 앞에 당도합니다. 봉수당은 정조 임금님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 회갑연을 열었던 곳입니다. 봉수당 안에는 실물 크기의 인형과 기물들이 전시되어 있어 마치 정조대왕과 혜경궁 홍씨를 실제로 대하는 듯 실감납니다.

집사청, 북군영, 경룡관, 장락당, 낙남헌, 득중정, 복내당, 유여택, 비장청, 서리청, 남군영 등 행궁 내 여러 건물들을 차례로 둘러봅니다. 이 중 복내당은 정조대왕이 능행차 때 머물렀던 곳이고 득중정은 활쏘기를 했던 곳입니다.

또 낙남헌은 일제 시대에 화성행궁이 철거될 당시 훼손당하지 않고 남은 유일한 건축물입니다. 을묘년 당시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기념하여 군사들에게 회식을 베풀고 양로연을 열었던 곳이며 과거시험을 치렀던 유서 깊은 이곳 낙남헌이 살아남은 이유가 참 기가 막힙니다. 바로 옆의 신풍초등학교가 교무실로 쓰고 있었기 때문이라네요.

행궁 감상을 마치고 바로 옆의 화령전으로 향합니다.
화령전은 순조가 아버지 정조의 위업을 기리고 지극한 효성과 유덕을 길이 받들기 위해 세운 건물입니다. 정전인 '운한각(雲漢閣)'에 정조대왕의 진영을 봉안하고 해마다 제향을 드렸습니다. 순조 임금은 마음이 어지러울 때면 이곳 화령전을 찾아 아버지를 그리며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이어서 화성행궁 앞 무예이십사기(武藝二十四技) 관람.
'삼공의 그늘'인 느티나무 아래 옹기종기 모여 앉아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멋진 무예를 감상합니다. 무예이십사기는 사도세자가 확립한 열여덟 가지 기술에 여섯 가지를 더하여 정조 임금 때 완성한 우리 전통 무예입니다. '무예도보통지'에 실려 전하던 것을 복원하여 화성행궁에서 날마다 상설로 공연하고 있습니다. 

짚단과 대나무가 단칼에 썩둑 잘려 나갑니다. 불꽃 튀기는 대련 장면에선 손에 땀이 날 만큼 흥미진진합니다. 너무 멋지당. 무예이십사기 배우고프다... 공연이 끝나고 우리 순례단원 모두는 무예이십사기 장수들과 함께 기념사진 한 컷 찰칵!

자, 이제 슬슬 배가 고파 옵니다. 먹으러 가야죠.
바로 옆의 신풍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점심을 먹습니다. 마지막 밥이라 생각하면 아쉬움에 아껴 먹어야 할 것 같고, 곧 엄마 아빠 만날 건데 하고 생각하면 먹고 싶지 않기도 합니다.

오후에는 성곽 순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고생문이 활짝 열렸다~

화성행궁 옆 주차장 위로 난 오솔길을 따라 팔달산을 오릅니다. 다리야 날 살려라~ 천신만고 끝에 간신히 팔달산 정상의 서장대에 다다릅니다. 서장대는 최고 지휘관이 군사들을 지휘하던 곳으로 수원 전체가 한 눈에 다 들어올 만큼 전망이 뛰어납니다. 

정조 임금께서도 을묘년에 이곳 서장대에서 군사훈련을 직접 주관하셨답니다. 정조대왕은 아버지 사도세자를 닮아 무예에도 매우 능하셨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활을 쏘면 백발백중이었다고 합니다. 마지막 한 발은 늘 놓쳐 주셨는데 신하들의 체면을 봐 주느라 그러셨다고 하네요.

이제 하산~~~
신난다.

발걸음도 가볍게 내려갑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산 중턱에 이르자 행렬이 거꾸로 산을 향해 다시 거슬러 올라갑니다. 에구, 이게 웬 날벼락이냐. 말을 안 들어서 그 벌로 도로 올라 간다네요. 순례단이 무슨 연어냐, 거슬러 올라가게. 이런 푸념들이 입에 잔뜩 물렸습니다.

다시 산 아래로 내려와 화서문 근처에 이르니 사진기자 분들이 기다리고 있네요. 순례단원들은 저마다 손도 흔들어 주고 파이팅도 외쳐 주고. 

장안문을 지나 아름다운 화홍문을 거쳐 마침내 순례의 끝 연무대에 이르렀습니다. 내가 진정 내 힘으로 순례를 마쳤단 말이냐~ 기특한 놈, 장한 놈~ 이런 뿌듯한 자부심이 가슴 가득 힘차게 솟아납니다. 연무대 옆 잔디광장에 일찌감치 와 계신 부모님들께서 우리 순례단원들을 반갑게 맞아 줍니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이보다 더 기쁠 수 있을까. 몰라보게 늠름해 진 아들딸들을 보시는 부모님들 입가에 흐뭇한 웃음이 떠나질 않습니다.

이윽고 해단식. 순례 마무리의 시간.
질서정연하게 줄지어 선 우리 순례단원들 정말 멋집니다. 줄과 각이 딱딱 잡힌 걸 보니 대견스럽기 그지없습니다. 나흘 만에 이렇게 달라진 아이들... 참으로 신기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합니다.

이제 해단식도 끝나고 인증서도 받았습니다.
순례의 모든 과정이 끝났습니다.
나흘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함께 도와주고 격려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큰 버팀목이 되어 주었던 멋진 친구들과도 이제는 헤어져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순례단원 모두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순례와 함께 한 친구들은 어디에 있든 늘 마음속에 가까이 있다는 것을. 자신을 이겨낸 자신을 가장 자랑스러워하게 되리라는 것을. 무엇보다 사랑하는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달은 순례였습니다. 

우리 순례단원들은 순례로부터 얻은 자신감과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하여 이 나라의 보배로 자라나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슬기롭고 씩씩하게 잘 헤쳐 나가게 되겠지요. 

여러 가지 미흡한 점에도 불구하고 순례를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격려하고 힘을 주시고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더 나은 행사가 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순례단원 여러분, 늘 건강하세요~

체험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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