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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벗하는 정자 문화 1번지 함양 화림동
2016-07-13 07:30:00최종 업데이트 : 2016-07-13 07:30:00 작성자 :   연합뉴스

(함양=연합뉴스) 이창호 기자 = 경남 함양의 화림동 계곡은 조선 시대 때 백두대간 남쪽에서 제일 아름다운 명승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었다. 화림동(花林洞)은 꽃과 초목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골짜기라는 뜻이다. 자연이 빚어낸 승경에 거연정, 군자정, 동호정, 농월정 등 여러 정자가 들어서 있다. 선비들은 정자에 앉아 시를 짓고 정자 아래 계곡에서 탁족도 즐겼다.

선비들이 무릉도원처럼 이상형으로 여긴 안의삼동(安義三洞)은 조선 시대 행정구역으로 안의현(安義縣)에 속한 화림동, 심진동, 원학동 등 세 동천(洞天)을 말한다. 1914년 일제 행정 개편에 따라 화림동과 심진동은 함양군 안의면으로, 원학동은 거창군 위천면으로 속하게 된다.

'안의삼동' 중 '정자 문화의 1번지'로 손꼽히는 화림동 계곡은 함양과 장수의 경계가 되는 육십령 고개로부터 시작해 안의까지 이어진다. 남덕유산에서 발원한 금천이 흘러내리면서 기암괴석 곳곳에 담과 소를 만들어 놓았다.

자연과 벗하는 정자 문화 1번지 함양 화림동_1
사진/전수영 기자

◇ 화림동 정자의 백미 거연정

함양 화림동 계곡 초입에 위치한 거연정(居然亭, 경남 유형문화재 제433호)은 화림동 계곡 정자 중 주변 경치가 단연 으뜸으로 꼽힌다. 계곡과 바위가 그림처럼 어우러지는 금천의 암반 위에 건립돼 정자가 마치 자연의 일부인 것처럼 조화를 이루고 있다. 덕유산에서 발원한 맑은 계곡물과 크고 작은 화강암 바위, 그리고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고목들이 한데 어우러져 보는 이로 하여금 경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거연정에 닿으려면'화림교'라는 조그마한 아치형 다리를 건너야 한다. 다리 아래로는 소(沼)처럼 잔잔한 물이 흐르는데, 옛 선비들은 이 물을'방화수류천'(訪花隋柳川)이라 했다.'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간다'는 뜻이다.

거연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내부에는 벽체를 판재로 구성한 판방을 1칸 두고 있다. 추녀 네 귀에는 활주를 세워 안정감이 있도록 했다. 특히 거연정이 놓인 자리는 울퉁불퉁한 바위로 되어 있는데, 자연석의 굴곡에 맞춰 누하주(樓下柱) 밑동을 깎아 세웠다. 이를'그랭이법'이라고 하는데 우리 선조들의 뛰어난 건축술을 엿볼 수 있다. 자연 바위를 그대로 이용하고 주변 경관으로 물과 나무를 조화시킨 정자에 앉아 바위에 부딪히는 물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이곳이 무릉도원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자연과 벗하는 정자 문화 1번지 함양 화림동_1
사진/전수영 기자

정자의 위치가 절묘하다. 이춘철 함양 문화관광해설사는 "대부분의 정자가 물가에 자리 잡고 한 발 떨어져 경치를 보는 것과는 달리 거연정은 물길이 두 갈래로 나뉘면서 만들어 놓은 바위 위에 자리 잡고 있다"면서 "거연정은 정자 안에서보다는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정자를 바라보는 것이 더욱 멋지다"고 말한다.

거연정은 두문동 72현 중 한 사람인 전오륜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세웠다. 두문동 72현이란 고려가 망하자 벼슬과 명예를 버리고 숨어든 72명의 선비를 뜻한다. 전오륜의 7대손 전시서가 1640년경 서산서원을 짓고 그 옆에 억새를 이어 정자를 만들었다. 1868년 대원군이 서원 철폐령을 내려 서산서원이 완전히 없어지자 그를 추모할 길이 없어진 후손들은 1872년 억새로 된 정자를 철거하고 철폐된 서산서원의 재목으로 거연정을 재건했다.

거연정에서 500m 내려가면 시냇가에 거연정보다 70년 앞서 지은 군자정(君子亭, 경남 문화재자료 제380호)이 앉아 있다. 군자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작은 편이다. 내부에는 방을 들이지 않고 모두 터놓았다. 정자의 대들보엔 시인 묵객들의 현판이 꽤 걸렸다. 군자정은 한훤당 김굉필, 정암 조광조, 회재 이언적, 퇴계 이황 등과 함께 동방 오현으로 불리는 일두 정여창(1450∼1504)을 기리기 위하여 전시서의 후손이 지었다.

자연과 벗하는 정자 문화 1번지 함양 화림동_1
사진/전수영 기자

◇ 선계의 절경을 자랑하는 동호정

군자정에서 국도를 따라 1.4㎞쯤 내려가면 오른쪽 시냇가에 동호정(東湖亭, 경남 문화재자료 제381호)이 있다. 화림동 계곡의 정자 중 가장 크고 화려한 동호정 앞에는 해를 가리는 천막처럼 생긴 큰 바위인 차일암(遮日岩)이 있다. 술을 마시며 즐기던 차일암에는 금적암(琴笛岩), 영가대(詠歌臺) 등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 금적암은 악기를 연주하는 곳이고, 영가대는 노래 부르던 장소다. 바위 위 물살이 움푹 파 놓은 웅덩이는 술통이었고, 그 위로 송화가 날리면 송화주요, 진달래꽃이나 솔잎을 띄워 마시면 진달래주이고 솔잎주였다.

조선 선비들은 차일암에서 탁족(濯足)을 즐겼다. 탁족은 선비들에게 여름을 이기는 놀이문화로 보이지만 이면에는 자신을 반성하고 수양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탁족의 어원은"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다"는 노래에서 따온 것이다. 탁족은 탁영(濯纓, 갓끈을 씻음)과 함께 속세를 등지고 은둔하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세워진 동호정은 팔작지붕에 사뿐히 들어 올린 처마가 활달한 멋을 풍긴다. 무엇보다 동호정의 매력은 정자를 지탱하고 있는 기둥에서 찾을 수 있다. 통나무를 껍질만 벗긴 채 다듬지 않고 그대로 사용해 비틀어진 흔적과 나무 옹이가 그대로 남아 있고, 길이도 제각각이다. 2층 정자로 오르는 계단은 통나무 2개를 잇대어 비스듬히 세운 뒤 도끼로 내리쳐 홈을 파 만들었는데 그 생김새가 이채롭다. 나무의 질감이 그대로 살아 투박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동호정은 다른 정자와 달리 고운 단청으로 채색돼 있고, 대들보의 화려한 용두 조각이 돋보인다.

동호정은 동호(東湖) 장만리의 후손들이 그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1890년경에 세웠다. 장만리는 임진왜란 때 선조 임금이 의주로 몽진할 때 임금을 등에 업고 수십 리를 달렸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충신으로 추앙됐다. 그는 관직에서 물러난 뒤 이 계곡에서 낚시를 즐겼다고 한다.

자연과 벗하는 정자 문화 1번지 함양 화림동_1
사진/전수영 기자

◇ 소실된 농월정 지난해 복원

동호정에서 국도를 따라 2.8㎞쯤 내려가면 한때 화림동 계곡을 대표했던 농월정(弄月亭)이 나온다. 농월정은 조선 선조 때 관찰사와 예조참판을 지낸 지족당(知足堂) 박명부(1571∼1639)가 말년에 관직을 떠난 후 낙향해 지은 정자로 시회(詩會)를 열기도 하고 세월을 낚기도 했다는 곳이다. 몇 차례 중건을 거쳐 1899년 완성됐지만 2003년 소실됐고 지난해 9월 복원됐다.

계곡에 펼쳐진 경치만큼은 예나 지금이나 수려하다. 농월정 앞에는 크기를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월연암(月淵岩)이라 이름 붙은 너럭바위가 넓게 펼쳐져 있고 물줄기는 산자락을 S자로 휘감아 돈다. 계곡 주변의 녹색과 평평하되 둥그스름한 하얀 반석의 대비가 강렬하다.

자연과 벗하는 정자 문화 1번지 함양 화림동_1
사진/전수영 기자

박명부가 '달이 비치는 바위 못'이란 뜻의 월연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는 중국 제나라의 맹상군 식객이었던 노중련과 관련이 있다. 제나라 사람인 노중련은 진나라가 동쪽 6국을 병합하려 할 때 "진나라 임금을 섬기느니 차라리 동해에 빠져 죽겠다"고 말한 인물이다. 그의 절의와 지혜는 조나라로 하여금 진나라의 공격에 맞서게 하였다. 이춘철 문화관광해설사는 "농월이라는 말도 음풍농월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노중련의 정신으로 암흑세상을 비추는 명월을 벗하며 대의를 지키고자 한 고결한 선비 정신을 드러낸 것"이라고 말한다. 박명부는 병자호란 때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하자 낙향해 두문불출했다.

1792년부터 5년간 안의현감으로 봉직한 연암 박지원(1737~1805)은 "한양 사람들이 무더운 여름날 화림동 계곡에 발 담그고 탁족 한번 해보는 것이 소원이라더니 과연 화림동이구나"라고 감탄했다.

함양의 정자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평생을 올곧게 살았던 선비들이 휴식을 취하고 마음을 다스리는 공간이었다.

changho@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6/07/13 07:3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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