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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자로 따라가는 수원 역사와 문화 이야기
옛이야기도 기억하고 기록해야 할 문화유산
2021-03-01 10:27:46최종 업데이트 : 2021-03-02 16:12:32 작성자 : 시민기자   윤재열
화성의 남문인 팔달문. 경부선이 지나는 수원의 교통 상황을 볼 때, 모든 곳을 통한다는 사통팔달 의미와 통하는 수원의 상징이다.

화성의 남문인 팔달문. 경부선이 지나는 수원의 교통 상황을 볼 때, 모든 곳을 통한다는 사통팔달 의미와 통하는 수원의 상징이다.


숫자 8은 좋은 느낌이 있다. 여러 방면에 능통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팔방미인이라고 한다. 팔등신 미인이라는 말도 있다. 주변에 자연 경치와 어울려 멋들어지게 있는 정자도 팔각정이 많다. 궁궐의 법전이나 절의 금당 등도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이 지붕 중에서 최고의 구조다.

 뛰어난 문장가를 함께 이를 때도 8명을 묶는 습관이 있다. 당나라와 송나라 때의 여덟 명의 뛰어난 문장가를 당송 팔대가라고 한다. 정조는 1781년 당송 팔대가의 여러 문장 중에서 100편을 손수 가려 모아 편찬해 '팔자백선'이라는 문집을 간행했다. 시집 '팔가정화'도 있다. 조선 헌종 때부터 고종 때까지 한시로 이름을 떨친 8명의 작품을 한데 모아 엮은 시집이다. 

 수원도 숫자 8과 연관된 곳이 많다. 수원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팔달산이 있다. 팔달산은 원래 탑산이었다. 이태조가 탑산을 본 뒤 "아름답고 사통팔달한 산"이라고 하며 팔달산이라 명명했다. 이 산 이름에서 따온 것이 화성의 남문인 팔달문이다. 경부선이 지나는 수원의 교통 상황을 볼 때, 모든 곳을 통한다는 사통팔달 의미와 통하는 수원의 상징이다. 

팔달문 옆에는 팔달시장이 있다. 수원 중심에 있는 시장으로 화성이 축성되기 전부터 형성됐다. 성을 쌓는 과정에 물자가 필요했고, 노동력도 필요했을 것이다. 이 과정에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시장이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화성 축성이 끝나고, 정조대왕은 직접 내탕금 6만 냥이라는 돈을 줘 시장을 활성화했다. 정조는 이 시장으로 경제를 살리고 더욱 강한 왕권을 형성할 수 있도록 노력을 했다.

 팔 부자 거리도 수원의 역사와 문화 읽을 수 있다. 수원 종로 교회에서 장안문 쪽으로 걸어 올라가면 북수동 성당이 나온다. 이 뒷길에 골목길이 팔 부자 거리다. 정조대왕이 수원화성을 축조 후 집마다 부자가 되게 하고 사람마다 즐겁게 하려고 했다. 해서 이 거리에 전국 8도의 부자들 8명을 같은 방향으로 집을 지었다. 거기서 팔 부잣집이라는 말이 나왔다. 현재는 지붕이 낮은 집들이 모여있고, 골목도 좁다. 간혹 문구점들이 많이 보이는데, 과거에는 부자들이 살던 곳이다. 팔 부자 거리는 정조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팔 부자 거리. 정조대왕이 수원화성을 축조 후 집마다 부자가 되게 하고 사람마다 즐겁게 하려고 조성했던 거리.

팔 부자 거리. 정조대왕이 수원화성을 축조 후 집마다 부자가 되게 하고 사람마다 즐겁게 하려고 조성했던 거리



 팔색길은 수원을 돌아보는 둘레길 이름이다. 수원 산과 물 따라 역사와 문화, 자연을 체험할 수 있는 여덟 개의 거리다. 화성 성곽길을 도는 것부터 광교산 등을 멀리 도는 길까지 있다. 팔색길은 수원의 역사를 돌아보고 때 묻지 않은 자연을 즐길 수 있다. 거닐면 운동도 되고 마음을 쉴 수 있다.

지역의 아름다움을 홍보할 때 여덟 개의 자연경관을 골라 홍보한다. 수원에도 수원 팔경이 있다. 흔히 화산 숲속 두견화 위에서 우는 두견새 소리, 동북공심돈 위에 뜬 밝은 달, 화홍문 수문에 쏟아지는 물보라, 수원천 긴 제방에 늘어진 수양버들, 만석거에 핀 아름다운 연꽃, 광교산에 쌓인 눈, 서호의 저녁노을, 팔달산 솔숲 사이로 불어오는 맑고 시원한 바람이 든다. 팔경에 대해 역사성을 탐색하는 세미나도 열기도 하고, 관광 명소를 시민의 투표로 선정하기도 했다. 

 우연이겠지만, 정조대왕이 을묘년(1795년, 정조 19)에 아버지 묘소인 현륭원에 전배하고,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 잔치를 화성에서 하고 창덕궁으로 돌아간 날이 8일간이었다. 음력 윤2월 9일에서 16일로 양력으로는 3월 29일에서 4월 5일로 조선 최대 규모의 행차이며 축제였다. 그때 가장 중요한 행사를 그림으로 나누어 그렸는데, 그것도 수원능행 팔폭 병풍이다.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있다가 죽었다. 그때도 8일간 갇혀 있었다. 1762년 윤 5월 21일 뙤약볕 아래에 갇혀 있던 세자는 8일 만에 세상을 등진다. 나이 28세였다. 그러고 보니 8이라는 숫자에 묘한 인연이 있다.

칠보산 정상. 팔보산을 칠보산으로 부르게 된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칠보산 정상. 팔보산을 칠보산으로 부르게 된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칠보산도 원래는 팔보산이었다. 여덟 가지 보물(산삼, 맷돌, 잣나무, 황금 수탉, 호랑이, 절, 장사, 금)이 있다 하여 팔보산이라 불렀다. 장사꾼이 혼자 산을 넘다가 닭을 구해주었는데 이 닭이 여덟 가지 보물 중 하나인 황금 수탉이었다. 소문을 듣고 도적 떼들이 와서 수탉을 잡으려고 하자 천둥과 번개가 내치는 바람에 놀라 달아났고, 황금 수탉도 보통 닭으로 변한 채 죽었다. 인간의 욕심으로 하늘이 분노를 일으켜 황금 수탉이 사라졌다. 이때부터 팔보산은 칠보산으로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지역 역사와 문화를 알아가는 것은 우리의 뿌리와 근원을 어루만지는 시간이다. 시간의 흐름은 공간의 상실을 가져오지만, 추억과 기억의 이야기는 남아 있다. 역사와 문화는 이야기를 통해서도 흐른다. 이 이야기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잇는 문화유산이다.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이 문화가 된다. 그래야 그것이 전통이 되고 미래로 연결될 수 있다. 미래에도 수원에 얽힌 옛이야기는 계속돼야 하고 소중한 가치로 남아야 한다.  

팔달산, 팔달문, 화성, 팔색길, 수원팔경, 칠보산, 윤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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