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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 북동포루 지붕 모습은?
1906년 사진에서 원형 확인
2021-06-15 07:43:50최종 업데이트 : 2021-06-15 14:13:41 작성자 : 시민기자   한정규
1906년 경 찍은 사진, 왼쪽에는 육지송과 화홍문, 오른쪽에는 방화수류정, 가운데 뒤에는 북동포루가 보인다.

1906년 경 찍은 사진, 왼쪽에는 육지송과 화홍문, 오른쪽에는 방화수류정, 가운데 뒤에는 북동포루가 보인다


화성성역의궤에는 "포루(砲樓)는 5좌가 있는데 그 형태가 모두 똑같다. 성곽에 凸자 모양을 붙여 치성과 비슷하고 3층이며 가운데를 비운 점은 공심돈과 비슷하다. 벽돌을 사용해 만들었고 화포를 많이 감추어 두고 위아래에서 한꺼번에 쏘게 되어있다"라고 설명했다.

화성성역의궤의 포루에 대한 도설과 설명은 일치하지 않는다. 포루외도를 보면 대포 혈석은 옆면에 각각 3개, 앞면에 2개, 총혈은 옆면에 각각 6개, 앞면에 3개로 총 15개이다. 총안은 옆면에 8개, 앞면에 5개로 총 21개이다. 전안은 옆면에 각각 5개, 앞면에 3개로 총 13개이다. 포루 설명은 대포 혈석과 총혈의 숫자는 같고 총안과 전안의 숫자는 다르다.

왼쪽에는 장안문, 오른쪽에는 방화수류정, 가운데 뒤로 북동포루가 보인다.

왼쪽에는 장안문, 오른쪽에는 방화수류정, 가운데 뒤로 북동포루가 보인다


5개의 포루는 북동포루(北東砲樓), 북서포루(北西砲樓), 서포루(西砲樓), 남포루(南砲樓), 동포루(東砲樓)인데 북동포루와 북서포루가 약간 규모가 크다. 5개의 포루는 기본적인 형태와 기능은 같지만 크기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대포 혈석과 총혈의 숫자는 같고 총안과 전안의 숫자와 지붕의 형태는 다르게 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포루는 모두 무너져 원래 모습을 확인하기가 힘들었다. 1970년대 복원을 했지만, 화성성역의궤 설명 및 도설과 다르게 복원해 많은 의문을 남긴 건축물이기도 하다. 화성성역의궤, 한글 정리의궤, 191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의 포루 사진을 비교 분석해 원형의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알아보자.

화성성역의궤와 한글 정리의궤의 포루 그림, 그림과 그림을 설명한 내용이 약간 다르다.

화성성역의궤와 한글 정리의궤의 포루 그림, 그림과 그림을 설명한 내용이 약간 다르다


남포루는 원형과 거의 같은 모습으로 복원한 것으로 추정된다. 복원할 당시에 비교적 원형이 많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1950년대 사진과 비교해보면 옆면의 총혈, 총안의 숫자는 같다. 앞면의 총혈, 전안의 숫자는 의궤 도설과 일치하지만, 총안의 숫자는 다르다. 지붕은 우진각 형태이다.

서포루와 동포루는 지붕만 우진각 형태일 뿐 총혈과 총안의 위치와 숫자는 원형과 전혀 다르게 복원했다. 북동포루와 북서포루는 총혈과 총안의 위치 및 숫자가 다르고 지붕의 형태도 밖은 우진각, 안쪽은 맞배지붕으로 복원했다. 수원화성 건축물 중에서 북동포루와 북서포루는 화성성역의궤의 도설과 다른 지붕 형태로 복원해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1910년대 사진, 북동포루 지붕과 벽체 구조를 자세히 비교해보면 지붕 안쪽이 무너졌음을 알 수 있다. [사진] 서울대학교 박물관

1910년대 사진, 북동포루 지붕과 벽체 구조를 자세히 비교해보면 지붕 안쪽이 무너졌음을 알 수 있다. [사진] 서울대학교 박물관


1970년대 수원화성 복원설계를 담당한 업체는 화성성역의궤 '권수'에 실린 도설과 '권6'에 실린 재용 편의 내용을 참고해서 복원설계를 했다고 밝혔고 설계를 바탕으로 북동포루와 북서포루의 지붕 형태를 현재처럼 복원했다고 한다. 화성성역의궤 재용 편에는 북동포루와 북서포루는 각각 추녀 2개, 박공 2개, 산방 4개가 소요된 것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자재로 만들 수 있는 지붕의 형태는 한쪽은 우진각, 한쪽은 맞배지붕일 수밖에 없다. 서포루, 남포루, 동포루는 각각 추녀 4개, 산방 8개가 소요된 것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은 온전한 우진각 지붕 형태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수원화성 북동포루

유네스코 세계유산 수원화성 북동포루


필자는 오랜 기간 기록과 사진을 찾으면서 지붕의 형태를 추적했다. 1950년대 서포루, 남포루, 동포루 옆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1910년대부터 1940년대의 북동포루와 북서포루 사진을 통해 대포 혈석, 총혈, 총안, 전안의 숫자를 정확히 확인할 수 있었지만, 지붕의 형태는 확인하지 못했다. 1910년대에 이미 지붕 안쪽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 북동포루의 원래 모습을 추정할 수 있는 사진을 발견했다. 2018년 발행한 '왕의정원 수원화성'이란 책에서 '육지송과 방화수류정'이란 사진 속에서 북동포루를 찾았다. 책의 저자 중 한 명인 최재군(영통구청 녹지공원과장)씨로부터 사진의 출처 정보를 받아 사진을 자세하게 분석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수원화성. 왼쪽에는 화홍문, 오른쪽에는 방화수류정 가운데 뒤로는 북동포루가 보인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수원화성. 왼쪽에는 화홍문, 오른쪽에는 방화수류정 가운데 뒤로는 북동포루가 보인다


일본의 가쿠슈인 대학이 소장한 것으로 1906년경에 찍은 사진이다. 북암문 위에서 찍은 사진인데 왼쪽에는 육지송과 그 뒤로 화홍문이 보이고 오른쪽에는 방화수류정이 보인다. 사진 중앙 뒤로 북동포루 모습이 보이는데 사진을 확대해 보면 밖은 우진각, 안쪽은 맞배지붕 형태의 지붕 윤곽선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역사학의 진가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수원화성은 1970년대에 정확하게 복원하지 못한 곳이 여러 군데 있다. 화성성역의궤, 조선고적도보 등 기록을 검토했더라도 전체적인 이해가 부족했거나 사진 기록이 많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다. 그래서 문화재 복원은 신중히 해야 한다. 수원화성 성곽 건축물의 원형은 대부분 알 수 있게 되었다. 차후에 수리하거나 해체 복원할 때 반영되어야 한다.

수원화성, 북동포루, 우진각 맞배, 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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