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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용기를 잊지 않겠습니다", 안점순 할머니 기억의 방
일본군 '위안부' 역사에 대한 기억과 공감의 공간
2022-09-29 13:10:33최종 업데이트 : 2022-09-29 13:09:16 작성자 : 시민기자   안선영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고 꼭 가볼 만한 곳 <용담 안점순 기억의 방>

지정일, 기념일이 아니더라고 꼭 가볼 만한 곳 <용담 안점순 기억의 방>


1928년 12월생 안점순 할머니는 열네 살 무렵, 강제 연행되어 일본군의 성 노예제 피해를 입게 된다. 위안부란? 일제에 강제 징용되어 일본군의 성욕 해결의 대상이 된 한국, 대만 및 일본 여성을 이르는 말이다. 그때 당시 일본군 문서에 '위안부'라고 부른 것을 알 수 있다. 

안점순 할머니는 1946년 열아홉 살에 귀국해 1992년부터 2018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수원시민으로 살았다. 1993년 8월, 예순여섯 살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신고를 하게 된다. 본인이 알고 한 일이 아니다. 조카딸이 '위안부' 문제에 대한 방송을 보고는 대신 신고했다. 

1992년부터 피해 여성으로 신고된 사람은 모두 247명이지만… 일본 정부의 사과는 여전히 받지 못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역사를 잊지 않도록 꾸준히 언급하는 게 아닐까. 2018년 3월, 아흔한 살에 별세. 수원시민 안점순 할머니를 만나기 위해 <용담 안점순 기억의 방>에 다녀왔다. 

할머니의 삶을 기억하고 평화를 염원하는 시민들의 성금으로 세워진 기림비

할머니의 삶을 기억하고 평화를 염원하는 시민들의 성금으로 세워진 기림비


팔달구 매산로 수원시 가족여성회관 문화관 1층에 자리한 <용담 안점순 기억의 방>으로 들어가는 길, 입구에 있는 안점순 할머니 기림비는 수원 시민들의 성금으로 세워졌다. 이름 앞에 붙는 '용담'은 여러해살이풀 용담의 꽃을 말하고, 시민들이 할머니에게 붙여준 꽃 이름이다. 용담의 꽃말은 '정의, 추억'이며 8월에서 10월, 딱 이맘때 꽃이 핀다. 

일본군 '위안부' 역사를 기억, 피해자에게 공감하고 위로하는 공간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당하신 분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공간


기억의 방은 그리 크지 않은 공간이다. '방'이라는 이름이 딱 알맞다. 할머니의 삶을 담기에는 작겠지만 아담한 공간이라 오히려 좋아하셨을 듯하다. 이곳의 다른 이름은 '기억과 공감', "다시 여자로 태어나서 살아보고 싶어요!"라고 말했던 그녀를 기억하고 공감하기에 알맞은 장소였다.

사실은… 담담하게 증언하는 듯한 할머니의 말씀, 안내문에 따옴표로 적혀있는 글을 읽으면서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할머니는 피해 여성이자 증인, 생생하게 증언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이곳의 이름이 '기억과 공감'인 까닭이 바로 여기 있었구나, 깨닫게 된다. 

1928년 12월부터 2018년 4월까지, 할머니의 삶에 대한 기록

1928년 12월부터 2018년 4월까지, 할머니의 삶에 대한 기록


왼쪽 벽에 걸린 할머니의 고운 사진을 시작으로 용담 안점순의 일대기를 볼 수 있다. 1928년 12월, 서울 마포구 복사골에서 태어났을 때부터 2018년 3월 별세 후, 그해 8월 수원시 명예의 전당 자리에 오르기까지다. 열아홉 살에 귀국해 고향인 서울에 살았고 스물세 살에는 한국전쟁이 일어나 대구로 피난을 갔다. 

예순여섯 살에 수원에 살면서 위안부 피해자로 신고, 2002년 일흔다섯 살에 정대협(挺對協, 1990년 11월 정신대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발족된 단체)을 만나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2017년 여성인권상 수상, 2018년 수원시 명예의 전당 헌액

2017년 여성인권상 수상, 2018년 수원시 명예의 전당 헌액


그 뒤로 할머니는 독일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에 참석, 평화인권캠프 제주평화나비를 만나게 되었다. 일본 국회 증언집회, 제14차 아시아연대회,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에도 참석하는 등 정대협과 수원평화나비에서 인권 활동가로 살았다. 2017년 아흔 살에는 정의기억재단과 수원시민이 수여하는 '여성인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방앗갈 쌀 저울에 올라간 뒤부터 시작된 고통…

방앗갈 쌀 저울에 올라간 뒤부터 시작된 고통…


방안에는 저울이 하나 놓여 있다. 당시 동네 방앗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저울로 쌀의 무게를 재던 것이다. 그러나 쓰임을 알고 나니 저울에 올라가 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때 그 여성들도 미리 알았더라면… 저울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었을까? 과연 일본 정부가 주장한 대로 자원해서 간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

"동네에서 방송을 했는데, 큰 방앗간 앞으로 모이라고 하더라고. 몇 살까지 여자들 다 여기로 나와 봐아 하는 식으로 했지. 그렇게들 나오라고 하니까 부모들이 따라 나왔었지. 왜 그러나 하고. 그래서 나갔는데, 동네 여자들을 나란히 줄을 세워놓고는 쌀가마 무게가 좀 나가는 실한 여자들은 바로 트럭에 싣더라고.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나는 덩치가 좋았지. 그래서 나도 그 길로 트럭에 실려 간 거야. 겨우 내 나이가 열네 살 때였어." (자료 출처 :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수원시민이 기증한 평화의 소녀상과 할머니의 초상화.

수원시민이 기증한 평화의 소녀상과 할머니의 초상화.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의 이름, 당시의 나이, 끌려갔던 상황이 적혀있다.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의 이름, 당시의 나이, 끌려갔던 상황이 적혀있다.


기억과 공감의 방은 크게 두 가지 테마로 나누어 조성되었다. <기억>은 "다시 여자로 태어나서 살아보고 싶어요"라는 안점순 할머니를 기억하기 위함이다. 할머니는 결혼을 하지 않은 채 혼자서 살아왔다. 

<공감>은 ▲슬픈 당신을 기억합니다(살아생전 할머니의 영상을 볼 수 있는 저울이 놓인 공간) ▲당신의 용기를 잊지 않겠습니다(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남긴 말씀을 읽어 보는 공간) ▲넘치는 마음을 가진 당신을 기억합니다(수원시민이 기증한 평화의 소녀상, 할머니의 초상이 그려진 공간) ▲슬픈 당신을 사랑합니다(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으로 신고된 247명의 명패와 이름 없는 빈 명패가 있는 공간), 총 4개의 테마로 이루어졌다. 

피해자 할머니들의 말씀이 적힌 글과 할머니께 보내는 편지함이 마련되어 있다.

피해자 할머니들의 말씀이 적힌 글과 할머니께 보내는 편지함이 마련되어 있다.


"세상에 전쟁이 없어야 나 같은 피해자가 안 생긴다" 말씀하시던 안점순 할머니의 평화가 이곳에 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전쟁 또는 전쟁 같은 상황들이 벌어지고 있다. 더 이상 반복되지 않도록 평화를 위해! 당신의 고통스러운 삶을 드러낸 할머니의 용기를 보고 있노라니 가슴이 뜨거워진다. 

기억의 방 안에서 전시상황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전쟁에 끝이란 없다. 종전 이후 외상과 심리적 후유증을 가져왔으며 피해는 끝없이 계속되고 있다. 그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안점순의 평화를 통해 느끼고 배운다. 아픈 역사일수록 끄집어내 기억하고, 자꾸만 소리 내어 말해야겠다고.
 

 <용담 안점순 기억의 방>
수원시 팔달구 매산로 119 수원시 가족여성회관 문화관 1층
화 ~ 금 10:00 ~ 13:00, 14:00 ~ 17:00
토·일 사전 예약시 10:00 ~ 14:00
☏ 이용 문의 031-259-9800
☎ 사전예약 문의 031-224-0814(수원평화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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