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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달산 위에 수원화성은 어떤 모습일까
수원화성 남포루, 용도, 화양루, 표석, 화성장대 모니터링
2024-05-02 16:04:51최종 업데이트 : 2024-05-02 15:55:45 작성자 : 시민기자   한정규
수원화성 남쪽 성벽, 안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다.

수원화성 남쪽 성벽, 안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다.


신록의 계절, 계절의 여왕이라 불리는 5월이 되자 팔달산에 아카시아꽃이 피었다. 옛 고향 산하에 아카시아꽃이 활짝 필 때면 골짜기가 향기로 가득 차 즐거웠던 기억이 난다. 지난 1일 (사)화성연구회 모니터링위원회에서 아카시아꽃 향기를 맡으며 수원화성 모니터링을 실시했다. 

이번 모니터링은 팔달문 관광안내소에서 시작해 팔달산으로 이어진 성벽을 따라 성벽 상태를 확인했다. 팔달산 입구의 성벽은 안으로 약간 기울어진 상태로 몇 년째 관찰 중이다. 성벽은 돌로 쌓은 아랫부분과 미석 위의 여장이 일체형으로 된 것이 아니다. 성벽은 돌과 돌이 맞물려 구조적으로 안정적이지만 미석 위의 여장은 성벽과 분리된 상태에서 쌓은 것이라 구조적으로 약하기 때문에 기울어질 수 있다. 특히 봄철에 낙석이나 붕괴 위험이 있어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수원화성 남치를 모니터링하는 회원들

수원화성 남치를 모니터링하는 회원들


남치에 들어갔다. 치(雉)란 성벽을 밖으로 돌출시켜서 성벽에 접근하는 적을 전면과 좌우 양 측면, 즉 3면에서 적을 공격할 수 있게 만든 시설물이다. 수원화성에는 10개의 치를 만들었다. 그런데 이곳부터 성벽에 휘날리는 깃발의 색이 붉은색에서 흰색으로 바뀌었다. 몇 년 전에 바꾼 것인데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원래 수원화성 성벽에는 깃발을 꽂았다는 기록은 없지만, 정조대왕 시대부터 장용영 군사들이 수원화성을 지키는 구역이 정해져 있었다. 그 구역을 따라 동쪽은 푸른색, 남쪽은 붉은색, 서쪽은 흰색, 북쪽은 검은색 깃발의 색을 맞춰 꽂아놓았다.
수원화성 용도

수원화성 용도


장안문 주변에는 장안위, 창룡문 주변에는 창룡위, 팔달문 주변에는 팔달위, 화서문 주변에는 화서위, 화성행궁은 신풍위가 담당했다. 또한, 화성성역의궤에는 지키는 구역을 전부, 좌부, 중부, 우부, 후부 순으로 정확하게 기록해 놓았다. 팔달위의 경우 팔달위장은 팔달문에 있고 맨 앞인 전부는 봉돈의 북쪽 제5첩에서 시작해 맨 뒤인 후부는 서남암문의 서쪽 제2첩까지이다. 깃발의 색이 병사들의 수비 위치와 일치해야 하는데 현재 상태는 정체성을 잃은 것으로 많은 관광객이 헷갈리고 있다. 정체성에 맞게 고쳐야 할 것이다.
수원화성 서남암문

수원화성 서남암문


남치를 경유해 팔달산 둘레길 옆에 있는 홍난파 노래비 주변의 '수원화성 돌 뜨던 터'를 둘러봤다. 돌을 뜨기 위해 쐐기를 박았던 흔적이 뚜렷하다. 흔히 돌을 뜰 때 바위에 일(一)자로 홈을 판 뒤 나무를 꽂고 물을 부어 나무가 팽창하는 압력으로 돌을 뜬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 석공들이 실험을 해보면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바위의 결을 따라 일렬로 쇠로 된 정을 박아놓고 순서대로 망치로 내려치면 어느 순간에 바위가 쪼개진다. 필자도 얼마 전 석공들이 정을 이용해 바위를 쪼개는 현장을 봤었다.

모니터링 위원들에게 어떻게 돌을 뜨는지 설명한 후 남포루 앞에서 포루(砲樓)의 역할에 대해 설명했다. 포루는 성벽 밖으로 돌출시킨 성벽의 내부에서 적을 공격하도록 한 강력한 시설물로, 수원화성의 포루는 대포로 공격하기 좋은 곳에 북동포루, 북서포루, 동포루, 남포루, 서포루 등 5개를 만들었다. 성벽 아래부터 3층 구조로 되어 있어 적을 3개 층과 3방향에서 공격할 수 있는 수원화성에서 가장 강력한 공격 시설이다. 
세계유산 표석

세계유산 표석


남포루를 지나 서남암문에 도착했다. 성곽을 수리하기 위한 시설물이 설치되어 있다. 서남암문 옆에 장용영 경계 표석이 있다. 화성성역의궤에 따르면 이 표석은 장용영 병사들이 수원화성을 지키는 구역을 표시한 것이다. 양쪽의 글귀가 다른데 이곳은 팔달위의 후부와 화서위의 전부가 만나는 곳이라 그렇다. 전면은 '팔달위후부미국', 후면은 '화서위전부두국'이며 금석학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18세기 글씨가 맞다. 수원화성에는 이와 같은 표석이 16개 있는데 현재는 7개가 남아 있다. 시급히 문화유산으로 지정해 보호할 필요가 있다. 동시대에 제작된 정조대왕 능행길과 축만제, 남창교에 세워진 표석은 수원시 향토유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수원화성 화성장대

수원화성 화성장대


용도를 걸어 화양루에 올라 잠시 쉬면서 모니터링에 참고할 수 있게 화양루와 용도에 대해 설명했다. 병자호란 당시에 남한산성 남쪽의 성 밖에 있는 높은 고지를 적에게 점령 당했었다. 청나라는 그곳에서 남한산성을 내려다 보며 대포를 발사해 크게 곤란했고 결국 치욕적으로 항복하는 아픈 역사의 현장이 되었다. 전쟁 후에 남한산성에는 5개의 옹성을 세웠다. 성 밖으로 수원화성의 용도처럼 길게 돌출시켜 끝에 대포를 설치해 성 밖의 높은 고지를 적이 차지할 수 없게 했다. 남한산성의 옹성을 본받은 것이 수원화성의 용도이다. 화성장대에서 남쪽으로 쌓은 성벽은 서남암문에서 곧바로 동쪽으로 꺾어 팔달문으로 이어져 있다. 그런데 서남암문 밖 화양루가 있는 곳을 적이 차지한다면 수원화성을 내려다보면서 공격할 수 있는 요충지였기 때문에 그곳에 용도와 화양루를 세운 것이다. 

화성장대에서 정조대왕이 쓴 현판 글씨와 정조대왕의 시를 감상하고 모니터링을 마쳤다. 수원화성에는 성벽, 건축물, 글씨, 비석 등 다양한 측면에서 바라봐야 할 것들이 많다. 화성성역의궤 기록 등을 검토하고 현장의 상황을 비교하면서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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