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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온라인 생활 이런 모임 어때요?
온라인 '토지' 낭독 모임
2021-01-08 14:26:27최종 업데이트 : 2021-01-08 14:26:19 작성자 : 시민기자   서지은
거실에 둔 핸드폰에서 알람소리가 울린다. 벌떡 일어나 눈곱도 떼지 않은 채로 노트북을 연다. 화면이 켜지는 사이 물을 한 컵 마시고 자리에 앉았다. 6시 52분. 온라인 화상회의 줌을 열고 사람들을 기다린다. 55분 쯤 되니 사람들이 하나 둘 들어온다. 남양주, 서울, 인천, 필리핀에서 접속한 사람들이 오전 7시 박경리의 '토지'를 들고 모였다. 올해 들어 새마음으로 시작한 온라인 모임이다. 휴일만 빼고 평일 아침이면 매일 줌을 통해 반가운 얼굴들을 만난다.

작년 12월 그림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온라인 카페에서 '토지'를 읽는 북클럽을 하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이미 카페 사람들이 북클럽을 통해 2번이나 읽은 '토지'다. 당시에 같이 읽기를 하지 못 했던 사람들 중에 '토지'를 읽고 싶은 데 혼자 읽기는 힘들 것 같고 북클럽으로 1년 4개월 동안 같이 읽어보자는 것이다.

아이가 8개월 때쯤 '토지'를 읽었다. 전권을 다 읽지 못하고 1부 끝부분 정도까지 읽었던 것 같다. 이 책이 왜 드라마로 여러 번 제작되었는지 실감했었다. 살아 있는 인물들, 토속어와 구수한 사투리로 표현된 정서들에 재미나게 읽었던 기억에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다.

2021년 1월부터 '토지'북클럽 대장정을 시작하기로 했다. 일주일 단위로 같이 읽어야할 분량을 정하고 매주 월요일 멤버들이 돌아가면서 그 주 분량에 대한 감상을 남기는 방법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지난 두 번의 같이 읽기를 했던 분들의 글을 참고해 감상을 짤막하게 남겨도 되는 장점이 있다. 세 번째 '토지' 읽기를 시작하기 전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우리 매일 정해진 시간에 모여서 같이 낭독을 하면 어떨까요?"

 입말이 살아 있는 작품이기도 하고 매일 꾸준히 일정 분량을 읽지 않으면 몰아서 읽기 힘든 전집이기 때문에 같이 모여서 낭독을 하면 조금씩이라도 빼먹지 않고 진도를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코로나 이전 같았으면 전국에 흩어져 있는 사람들이 모일 방법이 없어서 낭독을 생각하지도 못 했을텐데 코로나로 온라인 화상회의가 일반화 되고 나니 온라인 낭독 모임을 생각하게 되었다.

오전 7시 토지를 읽는 사람들

오전 7시 토지를 읽는 사람들

 
22명의 북클럽 멤버 중 낭독에 참석하고픈 사람들이 자율적으로 참석하기로 하고 시간을 정했다. 첫 날은 오전 9시에 시작하기로 했다. 아이들 온라인 학습 할 때 엄마들도 낭독을 하며 공부해 보자는 취지였는데 온라인 화상회의 접속자가 많아서 접속이 안 됐다.

다음 날부터 오전 7시로 낭독 시간을 옮겼다. 출근 전 낭독을 하고 출근 하겠다는 분, 새벽 운동 후 참석하겠다는 분, 새벽에 자고 늦게 일어나는 올빼미 생활을 청산하겠다는 분 등 다양한 의지로 오전 7시 낭독 모임이 결성됐다.

12월 28일 첫 낭독모임을 시작했다. 주말과 공휴일에는 쉬기로 한 낭독모임인데 21년 1월 1일에는 낭독을 쉬지 않았다. 새해 아침을 '토지' 낭독으로 시작하고 싶었다.

어둑어둑 해가 뜨지 않은 시간에 세수도 하지 않고 목은 잠겨 있는 상태로 처음 낭독 모임에 참석했을 때는 이런 몰골을 보이는 게 쑥쓰러웠는 데 이젠 아무렇지 않다. 경상도와 전라도 사투리의 구수한 대사를 들으며 30분 동안 한 사람이 5분씩 돌아가면서 낭독을 하고 책을 읽고 나면 정신이 맑아진다. 같이 낭독을 하면 진도 맞추는 데 좋겠다는 생각만 했는데 실제 낭독을 해보니 다른 좋은 점들이 어부지리로 따라왔다.
 
작년 한 해 동안 아이를 재우고 새벽 2시까지 책을 읽거나, 드라마를 보면서 늦게 잤다. 일찍 자야겠다고 다짐을 해도 잘 되지 않았다. 다음 날 낮잠으로 부족한 잠을 보충하면서 악순환이 계속 되었다. '토지'낭독으로 악순환의 고리가 깨졌다. 아침 낭독을 위해 저녁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이전에는 아무리 아침에 일어나는 게 좋다고 머리로 알아도 일찍 눕는 걸 실천하지 못 했는데, '토지'낭독 시간이 좋으니 그 시간을 위해 저절로 눕게 된다. 

아이를 안은 채 토지를 낭독하는 중

아이를 안은 채 토지를 낭독하는 중


  "산신을 만나믄 우짤라꼬."
  "호식으로 태어났다믄 방구석에 앉아 있다고 성하까."
  "잡히묵힐 때는 잡히묵히더라 캐도 내사 내 발로 걸어가서 잡히묵히는 건 싫구마."
 
'토지' 낭독으로 올빼미 생활을 청산하게 된 데는 낭독의 즐거움을 맛 본 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소리내어 책을 읽을 때만큼은 정신이 다른 곳에 흐르지 않고 한 곳에 몰입하게 된다. 명상을 하는 것과 같은 효과가 나타났다. 지금은 쓰지 않는 토속어와 알 수 없는 사투리를 매끄럽게 읽어내려면 온 정신을 집중해서 읽어야 한다. 또, 다른 이가 읽을 때도 넋놓고 들을 수 없다. 맥락을 쫓아가기 위해 집중해야 한다. 이렇게 하루 시작 30분을 낭독으로 하고 나면 몸과 마음이 상쾌하다.

코로나 19 감염병으로 인해 비대면이 늘어나면서 접촉에 대한 욕구를 채울 수 없어 힘든 경우가 많다. 온라인이 채워줄 수 없는 대면의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토지' 낭독 모임의 경우에는 비대면이기에 가능한 모임이다.

온라인 생활이 보편적이지 않을 때는 오프라인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하고만 낭독 모임을 해야해서 모임이 결성되기 힘들었다. 온라인에 익숙해지고 나니 공간적 한계를 넘어 모임을 할 수 있게 되어 누구하고든지 낭독 모임을 할 수 있게 됐다. 코로나 1년이 다 돼 가는 시점에서 온라인 생활이 준 가장 큰 수혜는 '토지' 낭독이다. 슬기로운 비대면 생활의 지혜는 앞으로 점점 더 늘어나리라 생각한다.

코로나로 인해 외출이 제한된 상황에서 대부분 게을러질 것으로 생각된다. 게으름은 건강한 생활의 리듬을 깨고 우울감에 젖게 한다. 코로나블루가 유행하는 이유다. 그러나 우리가 모두 극복해야만 하는 시간이라면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는 친구끼리, 이웃끼리, 가족끼리 온라인을 통해 다양한 취미를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수원시의 도서관과 문화센터에서도 온라인으로 소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더 많이 만들어지길 기대해 본다. 내가 사는 수원시민들이 마음까지 건강해지는 온라인 공감 문화를 만들어가면 좋겠다.

온라인, 토지, 코로나, 낭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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