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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 돈대와 강화도 돈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돈대의 척후 기능과 공격 기능
2021-03-14 20:11:42최종 업데이트 : 2021-03-16 15:16:36 작성자 : 시민기자   한정규
강화도 광성보에는 광성돈대, 손돌목돈대, 용두돈대가 있다.

강화도 광성보에는 광성돈대, 손돌목돈대, 용두돈대가 있다.


몇 년 전 강화도에 갔을 때 광성보에서 광성돈대, 손돌목돈대, 용두돈대를 인상 깊게 보았었다. 이들 시설물은 수원화성보다 앞선 시기인 1679년에 축조되었고 1866년의 병인양요, 1871년의 신미양요 때 외국 함대들과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현장이라 돈대의 위치, 형태와 구조를 자세히 관찰하기 위해 강화도에 다녀왔다. 제일 먼저 광성보에 갔더니 임시휴장 안내문이 붙었다.

'코로나 19 확산방지를 위해 전적지 5개소 임시휴장을 실시합니다. 고려궁지, 갑곶돈대, 광성보, 덕진진, 초지진, 휴장 기간은 3월 7일부터 해제 시까지'로 되어있다. 두 번째 방문 예정지인 마니산으로 갔더니 이곳도 입산을 통제하고 있었다. 코로나 19 확산방지를 위한 안전조치로 이해할 수는 있지만 지나친 처사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웠다.

발길을 돌려 어디를 답사할까 인터넷으로 검색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고인돌과 해안도로를 가면서 볼 수 있는 돈대를 보기로 했다. 강화도 부근리 고인돌은 규모 자체가 엄청나게 컸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탁자식 고인돌로 덮개돌 무게가 약 53톤이라고 한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강화도 고인돌, 강력한 고대국가가 있었다는 증거.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강화도 고인돌, 강력한 고대국가가 있었다는 증거

 
청동기 시대의 유적인 고인돌은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 가장 많이 남아있다. 우리나라 전역에 약 3만여 기가 분포되어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전 세계에 분포한 고인돌의 절반에 해당하는 것이고, 우리나라의 옛 강역이었던 요동지역에 분포한 것까지 합치면 약 70%가 우리나라에 있는 것이다. 이미 청동기 시대에 강력한 국가가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수원에도 여러 곳에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다.

고조선의 실체를 강력하게 입증해주는 명백한 증거가 바로 고인돌이다. 그런데 왜 우리 역사는 이런 사실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인지 안타까울 뿐이다. 강화도 고인돌은 동북아시아 고인돌의 흐름과 변화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유적이다. 강화도 부근리 고인돌은 고창, 화순 지역 고인돌과 함께 2000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강화도 오두돈대는 지름이 32m, 둘레는 100m이다.

강화도 오두돈대는 지름이 32m, 둘레는 100m이다


해안도로를 달리는데 야트막한 야산에 용진진(龍津鎭)이 보였다. 용진진은 군대가 주둔하던 군사 시설로 1656년에 쌓았다. 100여 명의 군사가 주둔했으며 가리산, 좌강, 용당 등 3개의 돈대를 관리했다. 포를 놓는 자리인 포좌 4문, 총을 놓는 자리인 총좌 26개소의 시설물이 있었지만, 석축 대부분은 남아있지 않고 출입구였던 홍예문 두 곳만 남아있었다. 1999년에 홍예문 위 누각과 용진진과 성벽으로 연결되었던 좌강돈대를 복원했다.


강화도 오두돈대, 포를 놓는 자리의 포구를 통해 밖을 내다보니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강화도 오두돈대, 포를 놓는 자리의 포구를 통해 밖을 내다보니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도로를 따라 조금 더 남쪽으로 가니 오두돈대가 나온다. 돈대의 원래 모습이 잘 나타나 있고 원형으로 지름이 32m, 둘레는 100m에 이른다. 포를 놓는 자리의 포구를 통해 밖을 내다보니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적이 침입해도 쉽게 볼 수 있고 공격할 수 있는 위치, 바로 요새인 것이다.

문화재 답사를 할 때는 단순히 보는데 그치지 않고 비교하면서 보면 안 보이던 것도 볼 수 있다. 수원화성의 용도, 공심돈, 치 등과 화성성역의궤 기록의 돈(墩), 19세기에 그려진 화성도 그림 속 시설물을 강화도에 있는 돈대와 입체적으로 비교하면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문화재를 상대주의적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비교해야 만이 구조적 특성과 장단점을 냉정하게 볼 수 있다.

수원화성 서북공심돈, 공심돈은 척후와 공격 기능을 가지고 있다.

수원화성 서북공심돈, 공심돈은 척후와 공격 기능을 가지고 있다.



화성성역의궤에는 '담장 안이나 성 위에 포사(鋪舍)를 설치한다는 것은 오로지 행궁을 호위하기 위한 것이다. 산 위나 평야에 돈대(墩臺)를 나누어 설치한 것은 급한 일이 닥쳤을 때 경보에 관한 일을 전담하기 위한 것이다. 비록 평상시라 하더라도 내포사와 외포사의 6군데에 근일에 마련한 정식에 의하여 각각 2명의 군졸을 두어 나누어 지키게 한다. 돈대는 용연, 문암, 쑥고개, 거북산, 숙지산, 고양 등의 6곳에 각각 장교 1명 군졸 2명을 배치하여 늘 경계하고 지키게 해야 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화성전도 12폭 병풍 속 숙지산에 있는 외포사는 숙지산돈.

화성전도 12폭 병풍 속 숙지산에 있는 외포사는 숙지산돈


외포사 6곳의 돈대는 모두 성 밖 중요한 곳에 위치하면서 척후의 역할을 하고 있다. 화성도 12폭 병풍 그림에는 숙지산 위에 외포사(外鋪舍)로 표기한 그림이 있는데, 바로 외포사 6돈 중 하나인 숙지산돈이라 여겨진다. 강화도 돈대는 척후와 함께 막강한 공격 기능이 있었지만, 수원화성 돈대는 공격보다는 척후 기능에 주안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

수원화성 돈대, 강화도 돈대, 공심돈, 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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