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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참전 노병(老兵)은 살아생전 나라걱정을 한다
전쟁을 격지않은 세대들의 안보의식이 우려스럽다.
2021-07-06 14:29:58최종 업데이트 : 2021-07-06 14:29:50 작성자 : 시민기자   차봉규

 

6,25 참전용사 한여수 노병

6.25 참전용사 한여수 노병(老兵)

 

지난 2일 오전 11시경 바람도 쏘일 겸 청개구리 공원을 한 바퀴 도는데 나무 그늘 쉼터에서 노인이 혼자서 쉬고 있다. 가까히 다가가자 입가에 웃음을 짓는다. 의자에 앉아 쉬고 가라는 의미인 것 같아 필자도 앉았다.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가 나이를 물어보니 90이 넘었다고 한다.

 

노인들은 대부분 머리가 하얀 데다 얼굴과 목에 주름살이 많아 나이를 묻기 전에는 80대인지 90대인지
비슷비슷해 구별이 안된다. 그럼 6.25 전쟁 때 참전하셨느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한다. 6월 보훈의 달에는 이리저리 알아봐도 알 길이 없더니 우연히 참전 용사 한 여수 노병을 만나게 된다. 며칠 전에만 만났어도 기획기사 인터뷰 대상으로 딱이었을텐데 아쉬운 생각이 든다.

율전동에 사는 한 여수(韓女水) 노병은 1927년생 올해 나이 94세다. 나이에 비해 80대 중후반쯤으로 보이고 건강해 보인다. 강원도 홍천군 두촌면 강남리가 고향이다. 1950년 10월 입영동지를 받고 제주도 제1훈련소에서 3주간의 사격훈련을 받고 곧바로 전선으로 배치됐다.

 

한 여수씨는 강원도 철원에 있는 백마부대 9사단 29 연대 2대대에 배속됐다. 백마고지라 부르던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대마리 서북쪽 12㎞ 지점, 해발 395m의 고지였다. 이곳은 9사단이 장악하고 있었다. 백마고지는 해발 395m의 낮은 산에 불과하지만 광활한 철원평야와 서울로 통하는 도로가 국군의 중요 보급로로 지리적으로 군사요충지였다.

 

백마고지는 중공군 3개 사단이 고지를 탈환하려고 국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인 최대의 격전지였다. 1952년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열흘 동안 중공군이 총공격을 감행했다. 미공군이 폭격을하고 여기저기에서 수류탄이 터지고 포성이 울리고 총알이 빗발치듯 쏟아지는 고지에서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수 차례의 백병전이 있었다. 중공군과 아군 모두 부상자와 전사자가 속출하고 고지를 무려 일곱차례나 빼앗기고 빼앗는 치열한 격전을 벌였다.

 

인해전술로 물밀듯 밀려오는 중공군을 저지하기 위해 미공군이 고지에 얼마나 많은 폭탄을 쏟아부었는지 고지가 민둥산이 되어버린 모습이 마치 백마가 누워있는 것처럼 보여 그 후부터 395m 고지를  '백마고지(白馬高地)'라고 부르게 됐다고 한다. 백마고지는 유엔군의 지원으로  9사단이 장악했다. 하지만 전투중에  9사단은 사상자(死傷者)가 수천 명이나고 중공군도 1만 여 명의 사상자와 포로가 되었다.

 

생사고락(生死苦樂)을 함께하는 전우들이 전투중에 적의 총을 맞고 옆에서 쓰러져 죽는 것을 보면 살아야 한다는 생각보다 눈이 뒤집히고 격정(激情)이 돼 적을 하나라도 더 죽여야겠다는 적개심이 불타 오른다고 한다. 많은 전투를 치루면서도 부상을 입지 않았다면서 부상을 당해 불구가 되었거나 전사한 전우들을 생각하면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있는 것만도 감사하다고 한다.

혹시 군번을 기억하느냐고 물었더니 제대한 지 68년이 지났는데도 0607067번이라고 또렸이 기억하고 있다. 당시 계급은 육군 하사로 휴전하던 해 10월 제대를 했다. 제대하고 고향에서 일(노동)하면서 살다가 30여 년 전 수원으로 이사와 건설현장 등 막노동을 하면서 살아왔다.

가족은 4남 1녀를 두고 부인은 오래전 사별해 지금은 혼자서 전세 3천만원짜리 집에서 살고있다. 생계는 노령연금, 기초생활수급급여 등으로 생활한단다. 참전유공자 예우는 명예수당이 나오는데 계급 따라 지급이 돼 20만 원도 안된다고 한다.

 

공산 침력으로부터 목숨 걸고 나라를 지켜낸 참전 노병으로서 정부나 국민들에게 당부하실 말씀이 있는지 물었다. 어르신은 "전쟁을 겪지 않은 일부 젊은 세대들의 안보의식이 우려스럽다"며 "지금 정치인들은 나라와 국민을 위한 정치를 안 하고 자기들을 위한 정치를 하는 것 같다"면서 아쉬움을 전했다. 사진 촬영을 부탁하자 흔쾌히 응하면서 모자도 벗고 마스크도 벗는다.


남과 북은 이념의 분단으로 적이되어 생사를 가르는 전쟁을 치렀다. 전쟁은 군인들만 싸우다 죽는게 아니다. 6,25 전쟁은 우리 국민들에게 두번 다시 있어서는 안될 역사적 교훈을 남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정치인 사회단체들은 좌우로 갈라져 이념 투쟁을 하고 있다. 참전용사들의 호국정신과 희생으로 오늘의 자유 대한민국에서 경제적 풍요와 자유와 평화를 누리며 살아가는 모든 국민들은 머리숙여 호국영령들을 추모하고 생존한 참전용사들을 따뜻이 돌봐드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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