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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대왕 때 심은 뽕나무 남아있을까?
수원화성 서북각루 안 현장조사
2021-06-10 15:01:19최종 업데이트 : 2021-06-10 15:01:14 작성자 : 시민기자   한정규
수원화성 서북각루 안 뽕나무

수원화성 서북각루 안 뽕나무


"수원화성 서쪽 대문인 화서문에서 팔달산으로 오르다 보면 첫 번째 만나는 성곽건축물이 서북각루인데 그 안쪽에 오래돼 보이는 뽕나무 몇 그루가 있다. 정조대왕 때 심은 것일 수도 있는데 노송지대의 소나무처럼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있지 않을까?"

지인으로부터 제보를 받고 현장조사를 통해 확인을 해봤다. 결과는 간단했지만, 확인과정은 그리 간단하지가 않았다. 역사적 기록 검토, 뽕나무의 가슴높이 둘레를 측정해 나무의 나이를 측정하는 방법, 사진 역사학적 방법을 이용해 관련 사진을 비교 검토하는 방법을 통해 확인했다.

수원화성 서북각루 안 뽕나무

수원화성 서북각루 안 뽕나무


다산 시문집 제14권 '식목연표(植木年表)에 발함' 이라는 글에는, 7년 동안(1789-1795) 현륭원에 심은 나무의 숫자는 소나무, 노송나무, 상수리나무 등 여러 가지 나무가 모두 1천 2백만 9천 7백 12그루였다. 일성록 1796년 3월 24일 기록에는 "소나무 17만 4526그루, 밤나무가 2806그루, 버드나무가 839그루, 잡목이 1500그루, 회나무가 156그루이고, 뿌린 상수리가 404섬 5말, 소나무 씨가 6섬 14말, 잣이 1섬 3말, 단풍나무 열매가 2말, 직(稷)이 2섬이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수원화성 서북각루 안 뽕나무

수원화성 서북각루 안 뽕나무

 
일성록 1799년 3월 26일 기록에는, "금년 봄 수원부에 심은 나무는 7만 256그루였는데 뽕나무가 1만 480그루였다" 이 중에서 뽕나무 300그루는 서장대 북쪽 아래 기슭에서 수성고(修城庫) 뒤 담장 밖까지 심었고, 4210그루는 화서문 안쪽과 장안문(長安門) 안쪽부터 성의 내탁(內托) 아래까지 심었다. 1000그루는 팔달문(八達門) 안 서쪽에서 화양루 아래까지 심었고, 2538그루는 팔달문 바깥 서쪽에서 화양루 아래까지 심었고, 2432그루는 장안문 밖 원래의 뽕밭에 추가로 심었다.

1953년 팔달산 사진, 나무 한그루 없다. 사진 '이방인이 본 옛 수원화성' 도록에서

1953년 팔달산 사진, 나무 한그루 없다. 사진 '이방인이 본 옛 수원화성' 도록에서


정조시대에는 현륭원을 중심으로 수원부에 많은 나무를 심었고 기록으로 남겼다. 이 기록을 근거로 노송지대 소나무는 경기도기념물 제19호로 지정되었다. 서북각루 안쪽에 뽕나무를 심은 기록이 있으니 뽕나무의 나이만 정조시대로 추정된다면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1967년 수원화성 서북각루 안 모습, 사진 '이방인이 본 옛 수원화성' 도록에서

1967년 수원화성 서북각루 안 모습, 사진 '이방인이 본 옛 수원화성' 도록에서


나무의 나이를 측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무가 자라고 있는 지리적, 기상학적 영향을 받는다. 같은 시기에 같은 지역에 심은 나무라 하더라도 개별적인 생장은 다를 수 있다. 국립산림과학원 자료에 의하면, '나이테 측정에 의한 방법', '기록에 의한 방법', '목측에 의한 방법', '나무의 가지 마디에 의한 방법', '직경 측정에 의한 방법' 등으로 나무의 나이를 측정한다고 소개했다.
노송지대 소나무

노송지대 소나무


직경에 의한 수령측정 방법으로 소나무의 '임분수확표'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식재 이후 10년부터 60년까지 5년 간격으로 임지의 양호 등급에 따라 3개의 지위지수로 나눠 평균직경, 평균수고, 흉고단면적, 재적, 생장량, 생장률을 측정한 것이다. 60년간의 실측 데이터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통계학적으로 상당히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이 표를 이용해 방정식을 만들어 서북각루 안 뽕나무, 노송지대 소나무, 축만제 소나무 수령을 추정해봤다.

노송지대 소나무, 경기도기념물 제19호

노송지대 소나무, 경기도기념물 제19호



수령 측정을 위한 기초자료로 우리나라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소나무 40그루와 뽕나무 4그루의 특성을 분석했다. 나무의 가슴 높이 둘레는 나이와 함수관계가 있는데 규칙성을 찾을 수는 없었다. 기본적인 데이터가 부족해 뽕나무 나이는 오차가 심해 추정이 힘들었다. 노송지대 소나무 34그루의 나이를 평균값으로 계산하면 241.2년, 축만제 소나무 7그루의 나이는 191.9년이란 결과가 나왔다.

축만제 소나무

축만제 소나무


2019년 수원시에서 발행한 '수원의 오래된 나무 이야기'에서는 축만제 소나무의 나이를 약 100년으로 추정했다. 관계자에게 확인하니 한국임업진흥원에서 그렇게 추정했다고 한다. 한국임업진흥원은 수목의 수령감정에 대한 공식적인 성적서를 발급할 수 있는 기관이다. 필자가 '임분수확표'를 이용해 만든 방정식으로 추정한 191.9년과 한국임업진흥원에서 추정한 100년은 상당한 오차가 존재한다.

축만제 소나무

축만제 소나무


사진 역사학은 여러 가지 난제들을 해결해 주기도 한다. 191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서북각루 안, 축만제, 노송지대 사진을 비교 분석했다. 1950년대 서북각루 안에는 나무가 한그루도 없었다. 뽕나무는 그 이후에 심은 것이다. 1920년대 전후의 축만제 사진에는 꽤 자란 소나무들이 있다. 최소한 100년은 훨씬 넘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축만제 소나무, 1915년 출간한 화영지영에 수록

축만제 소나무, 1915년 출간한 화영지영에 수록



축만제는 1799년에 축조했고 축만제 서쪽의 항미정은 1831년 수원유수 박기수에 의해 세워졌다. 축만제 표석의 글씨는 서체의 금석학적 특성으로 봤을 때 1800년 전후의 글씨로 보인다. 종합적으로 검토해보면 축만제 소나무는 축조 직후부터 항미정 건립 시기에 심었을 것으로 보인다. 축만제 소나무는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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