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사랑방 같던 추억의 이발관
2021-06-30 16:25:18최종 업데이트 : 2021-06-30 16:25:14 작성자 : 시민기자 차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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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이발하는 추억의 이발사
임종대씨의 헤어디자인 기능장
이발사가 되려면 임종대 씨처럼 열세네 살 때쯤 되었을 때 이발소에 취직을 한다. 옛날에는 무슨 일이든 기술을 배우려면 월급이란 게 없고 밥만 먹여줬다. 생계가 어려운 시절이라 그것만도 다행이다. 이발사가 되려면 몇 단계를 거쳐 배워야 이발사가 된다. 처음에는 수건도 빨고 청소 같은 자잘한 일들을 시키다가 머리 감기는 것을 가르친다.
다음에는 면도를 가리킨다. 면도가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주인이 머리를 깎고 나면 면도를 담당한다. 이때부터는 반 기술자로 인정해 쥐꼬리만큼의 월급을 받게 된다. 다음에는 어른들의 머리 깎는 것을 배운다. 처음에는 나이 지긋한 촌노(村老)들의 머리를 깎으면서 이발 기술을 배운다. 농촌에서 일하는 노인들은 머리를 잘 깎고 못 깎고를 따지지 않는다. 그저 머리가 길으니 짧게 자르기만 하면 된다.
기계로 밑을 돌리고 머리빗을 위로 올리면서 가위로 다듬어나간다. 마지막으로 '고대'를 배운다. 고대는 어른 새끼손가락 굴기의 긴 쇠젓가락을 연탄불 구멍에 꽂아 벌겋게 달궈지면 물수건에 대고 식힌다.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빗으로 요리저리 제쳐가며 고대기로 머리 모양을 잡아간다. 고대기가 덜 식어 머리를 찌직하고 태워먹기도 한다. 그 시절에는 미장원에 여성들도 연탄불에 달군 고대기로 파마를 했다.
이발사가 되기까지는 그냥 배우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 기술자들은 곤조(성깔)라는 게 있다. 잘못하면 욕도 하고 주먹으로 머리통을 줘 박기도 하고 나가라는 소리도 듣고 온갖 못 들을 소리를 다 들어가며 몇 년간 시련을 겪고서야 이발기술을 배운다. 이렇게 수년을 걸려 배운 기술로 이발사 자격시험을 본다. 자격증을 따도 바로 이발관을 차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발관 이발사로 취업해 몇 년간 기술을 좀 더 연마한 다음에 이발관을 차리기도 한다.
명맥을 이어가는 이발관 출입문 위에는 '고려 이발관' 간판이 걸려 있고 간판 옆에는 빨간색과 파란색 두줄이 그려진 1m쯤 길이의 둥근 유리통이 빙빙 돌아가고 있다. 파란색은 정맥, 빨간색은 동맥이라는 사람의 핏줄을 의미한다. 또한 면도할 때 예리한 칼을 쓰기 때문에 피를 흘릴 수 있다는 위험 표시기도 하다. 간판을 보지 않고도 멀리서도 이발관임을 금방 알 수 있다.
지금은 남성들의 '이발관'이나 여성들의 '미장원'이라는 전용 간판이 사라진 지 오래다. 다양한 외래어 명칭의 간판들을 내걸려 있다. 여성들이 운영하는 남성 전문 미용실도 있고 남성들이 운영하는 여성 전문 미용실도 있다. 불과 20여 년 사이 변화된 사회 풍조다. 20여 년 전 필자가 수원에 이사 와 이발관이 없어 난생 처음으로 여성이 운영하는 미용실에서 이발을 하기 시작했던 모습이 기억났다.
요즘에도 젊은 남성들이 이발기술을 배우러 오는지 묻자 "지금은 여성들이 남성 이발기술을 배워 남성 전문 미용실을 운영하기 때문에 일반 남성들은 직업에 대한 확신이 없어 배우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부 배우는 남성들은 여성 미용기술을 배워서 여성 미용실을 운영하는데 남성들이 이발하러 오기 때문에 이발기술을 배우러 오는 정도라고 한다.
20여 년 전만 해도 지방에는 남성들만 머리를 깎는 이발관이 있었고 여성들만 파마를 하는 미장원이 따로 있었다. 이는 공자의 유가 사상(儒伽思想) '남녀 칠 세 부동석(男女七世不同席)'이라는 전통 사회의 관행 때문에 남녀가 유별(有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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