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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의 정체성 담긴 ‘한글 정리의궤‘를 아시나요?
수원화성박물관에서 볼 수 있어
2024-01-25 10:32:30최종 업데이트 : 2024-01-25 10:32:27 작성자 : 시민기자   한정규
한글 정리의궤 권39에 있는 '화성전도' 그림

한글 정리의궤 권39에 있는 '화성전도' 그림


한글로 써진 '정리의궤'에 대한 최초 기록은 1901년 출간된 모리스 꾸랑(1865-1935)의 '한국서지(韓國書誌) 보유판(補遺版)'이다. 1887년 우리나라의 첫 번째 프랑스 외교관이었던 쁠랑시(1853-1922)가 이 책을 소장했었다. 13권 중 12권은 프랑스 국립 동양어학교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었고 1권의 행방은 묘연했다. 

우리나라에 12권의 존재가 알려진 것은 현대에 와서다. 1981년에 프랑스 국립 동양어학교 도서관이 소장한 한국학 관련 고문헌 목록 및 서지를 조사, 작성한 기록에 '한글본 정리의궤' 12권이 보고되었다.

이후 국립중앙도서관이 추진한 '해외전적 조사사업'의 도움으로 '한글본 정리의궤'는 2002년 마이크로필름으로 복제되었다. 이는 2008년 한국학 중앙연구원 옥영정 교수의 '새자료 한글본 정리의궤의 서지학적 분석과 역주'란 연구 보고서를 통해서 학계에 알려졌다.

수원화성 축성에 관련된 종합보고서인 화성성역의궤, 10권 9책이다.

수원화성 축성에 관련된 종합보고서인 화성성역의궤 10권 9책이다.


2016년 여름 채색본 한글 정리의궤가 세상에 알려졌다. 이는 '정리의궤(整理儀軌) 39 성역도(城役圖)'란 표지로 되어있고 책 내부에 '뎡니의궤 권지 삼십구 화성성역도본'이라고 되어있다. 바로 프랑스 국립 도서관이 한국서지에 언급되었던 1권을 소장하고 있었다. 

한글 정리의궤는 전체 48권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전체 48권 중 1권-28권, 37권-38권, 41권-45권 등 35권이 결본인 상태이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쁠랑시가 소장할 당시부터 35권은 결본인 상태였으며, 13권만 프랑스로 가져간 것이다.

수원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책 중에서 '원행을묘정리의궤(1798년)', '화성성역의궤(1801년)', '한글 정리의궤'는 보물 같은 책이다. '원행을묘정리의궤'는 1795년 윤2월 8일간의 수원 행차를 기록한 책이고, '화성성역의궤'는 수원화성 축성에 대한 기록이다. '한글 정리의궤'는 1권부터 38권까지는 '화성원행', '혜경궁홍씨 탄신경하'에 관련된 내용이고, 39권부터 48권까지는 '화성성역'에 관련된 내용을 한글로 기록한 책이다.

한글 정리의궤 권39, 수원화성과 화성행궁 건축물을 채색으로 그렸다.

한글 정리의궤 권39, 수원화성과 화성행궁 건축물을 채색으로 그렸다.


한글 정리의궤는 편찬연대가 정확하지 않은데, 몇몇 연구자들이 승정원일기의 기록을 근거로 무리하게 편찬연대를 1797년 9월에서 10월로 단정하지만, 의궤의 편찬체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오류이다.

1827년에 간행된 활자본 의궤인 '자경전진작정례의궤'의 한글본인 '자경뎐진쟉졍례의궤'를 비슷한 작성 배경을 가진 예로 들지만, 활자본 의궤를 한글본 의궤로 번역하면서 편찬체계도 똑같이 했다.

'화성성역의궤'의 편찬체계는 권수에 시일(時日), 좌목(座目), 도설(圖說), 권1에 어제성화주략, 전교, 윤음, 유지, 전령, 연설, 계사 등 행사 관련 문서 등을 항목별로 분류하여 기록하고 있다. '원행을묘정리의궤'의 편찬체계는 권수에 택일, 좌목, 도식, 권1에 전교, 연설, 악장, 치사, 어제, 어사, 전령, 군령 등 행사 관련 문서 등을 주제별로 분류하여 기록되었다.

'한글본 정리의궤'는 '현륭원 원행'과 '화성성역'만을 구분했을 뿐 내용과는 관계없이 날짜순으로 기록하고 있다. 주제별 기록과 날짜순 기록은 편찬체계가 완전히 다른 것이다.

원행을묘정리의궤

원행을묘정리의궤


1797년 9월 24일 승정원일기에 '소일하기 심란해하시는 어머니 혜경궁홍씨를 위하여 언문으로 의궤등록을 번역해서 들이라'는 정조의 지시가 기록되었다. 10월 26일 '의궤언문책자가 합쳐져 하나의 문자로 되었다'는 기록을 근거로 이것이 '한글 정리의궤'라고 하는 것이다. 승정원일기 원문 어디에도 '정리의궤'라는 기록은 없다. '의궤등록', '의궤언문책자'를 '한글 정리의궤'로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것이다.

원행을묘정리의궤는 10권 8책이고 화성성역의궤는 10권 9책으로 방대한 분량을 1달 만에 한문을 한글로 번역해서 편찬 체계도 다른 날짜순으로 48권의 방대한 분량으로 기록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납득이 안간다. 한글 정리의궤 자체도 어람용이라고 보기 어렵다. 더군다나 이 당시에는 원행을묘정리의궤와 화성성역의궤가 한창 편집 및 편찬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프랑스어판 화성성역의궤, 1898년 프랑스에서 번역한 것이다.

프랑스어판 화성성역의궤, 1898년 프랑스에서 번역한 것이다.


'원행을묘정리의궤', '화성성역의궤'와는 별도로 1789년부터의 현륭원 원행 기록과 화성성역을 기록한 한문이나 한글로 된 '한글 정리의궤'의 저본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한글 정리의궤'에는 '화성성역의궤' 기록 대부분이 포함되어 있지만, '원행을묘정리의궤' 기록은 일부분만 포함되어 있고, 주로 현륭원 원행에 대한 기록이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기록이 발굴되기 전까지 의도되거나, 불확실하고 무리한 주장은 곤란하다. 화성성역의궤, 한글 정리의궤는 수원화성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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