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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곳 앉아 뜨개질 하는 여성이 되다
2012-10-30 10:02:36최종 업데이트 : 2012-10-30 10:02:36 작성자 : 시민기자   최희연

이제 가디건 하나 걸치고서는 추위를 견디기 힘든 날씨가 되었다. 매년 마다 하는 행동은 아니지만, 겨울이 되기 전에 하는 것이 있다. 실 판매점에 가서 색깔별로 무수히 많은 실 중에 2개를 고른다. 색이 워낙 다양해서, 수 백가지 되는 색 중에 단 2개만 고르는 것은 머리가 아픈 일이다. 

한참을 서성이다가 2개를 골라서 계산대에 계산을 하러 가니, 아주머니께서 날 알아 보신다. 반갑게 맞이 해 주시니 이 곳 말고는 다른 곳을 갈 수가 없다. 
기분 좋게 실을 사와서 뜨개질을 시작 했다. 아직 겨울에 오려면 멀었는데 왜 벌써부터 준비를 하는가에 대해 의문이 드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다소곳 앉아 뜨개질 하는 여성이 되다_1
다소곳 앉아 뜨개질 하는 여성이 되다_1

맘만 먹고 모든 일을 제쳐 둔 채 뜨개질에만 시간을 쏟으면 이틀에 하나 씩은 만들 수 있겠지만, 나는 그럴 형편이 되지 못한다. 시간이 날 때 마다 아주 잠깐 씩 뜨개질을 하기 때문에 지금부터 뜨개질을 시작 하지 않으면 올 겨울이 시작 되기 전까지 하나도 완성 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루에 뜨개질을 하는 것에 할당 되는 시간이 짧게는 30분 길게는 1시간이 안 될 것이다. 그렇게 한달을 하다 보면 길다란 목도리가 완성 된다. 목도리를 전문적으로 파는 곳에 가면 각양각색의 목도리들이 전시 되어 있다. 일명 꽈배기 문양, 물결 모양 등등 일반인이라면 하기 어려운 문양들이 많다. 

하지만 나는 문양을 내기에는 역 부족인 실력 때문에 가장 단순한 모양으로 뜨개질을 한다. 여고를 다녀 봤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항상 누군가에게 설레는 마음을 갖고 있는 풋풋한 여고생의 마음을 대변이라도 해 주는 물건은 뜨개질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각 반 마다 쉬는 시간이면, 다소곳하게 앉아서 뜨개질을 하는 학우들이 반 마다 있었을 것이다. 

난 이와 같은 다소곳한 여 학우들 무리에 속하진 않았지만 남 모를 로망이 있었다. 몸은 천방지축으로 온 교실을 날 뛰었지만, 한편으로는 다소곳하게 뜨개질을 하는 친구들이 예뻐 보이기도 했다. 
그런 갈망의 대상들을 눈으로 보기만 했는데, 이제는 내가 뜨개질을 하는 다소곳한 여성이 되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2개의 실 뭉치를 사왔지만 이 2개가 누구에게 갈지는 미지수이다. 원래는 뜨개질을 할 때, 완성 된 목도리를 줄 주인공을 생각 하며 한 땀씩 뜨는 것이 정석이지만 내 머릿 속 에는 아무도 없다. 그저 두 손만 바삐 움직이면서 완성된 목도리는 나중에 고를 것이다. 

선물이 줄 대상이 부모님, 남자친구, 동생, 친구 중에 한명이 될 테지만 이 사람들을 제외 하고 엉뚱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다만 바라는 것은 겨울이 되기 전 나의 노고가 깃든 이 목도리를 겨울 내내 열심히 사용 해 주기만을 바랄뿐 대상은 정해지지 않았다. 

시중에 파는 목도리를 쉽게 사면 되지만, 만들어 놓은 것을 사서 주는 것과, 직접 만든 목도리는 의미 차이가 분명히 있다. 그런데 요즘에는 뭐든지 편한 것을 추구하는 세상이라서 튼튼하게 잘 만들어 놓은 목도리를 사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그래도 현실과 소망은 종이 한 장 차이임을 알게 해 주는 설문 조사도 있었다. 

한 사이트에서 여자 친구에게 올 겨울 받고 싶은 물건 설문 조사를 했는데, 1위는 아니었지만 상위권내에 있던 것이 '직접 여자 친구가 뜨개질로 만든 따뜻한 커플 목도리'였다. 그냥 시중에 판매 하는 목도리를 선물 받는 것 보다 직접 뜨개질 한 것을 받고 싶은 것이 인간의 마음이었다. 

여자라면 목도리 하나 쯤은 뚝딱 만들 줄 아는 그런 손재주가 필요한 세상인 것 같다. 
이미 나는 남자 친구에게 두 번이나 목도리를 만들어 줬기 때문에, 올 해에 만드는 목도리의 주인공에서 남자 친구는 제외 될 전망이다. 뭐...대상이 누구가 됐던 간에, 아직 한 뼘 밖에 뜨지 못한 목도리를 빨리 떠야 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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