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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회가 사라지고, 그나마 이벤트 업체에 맡기는 현실
2012-10-30 11:29:45최종 업데이트 : 2012-10-30 11:29:45 작성자 : 시민기자   이학섭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오메, 춘자 아부지 다리가 짧어. 못뛰잖여, 못뛰어. 그라다가 꼴찌 하겄어. 푸하하하"

수십년전 가을 운동회의 추억이다. 지금이야 초등학교로 바뀌었지만 필자가 어릴적에는 국민학교였다. 당시 국민학교의 가을 운동회는 만국기가 펄럭이고 리어카와 보따리 행상들이 운동장 주변과 학교 입구 길목 좌우로 좌판을 벌이고 난전을 펼쳤기에 형형색색 볼만했다.

운동회가 열리면 지서의(당시에는 면 사무소가 있는 곳에 파출소보다 약간 크고 경찰서보다는 작은 지서라는 곳이 있었음) 경찰이 나와 교통정리를 해주었다. 청군·백군 띠를 머리에 질끈 동여매 검은 팬티를 입고 하얀 난닝구(러닝 속옷)를 입은 남녀 학생들의 상기된 모습에서 축제의 날임을 알 수 있다.

청군과 백군은 상대편의 기를 죽이고, 이기려고 응원대장의 지휘아래 '청군 이겨라, 백군이 겨라, 우우우, 빅토리'등의 요란한 응원도 볼만 했다.
그때 또 유명했던 응원문구는 빅토리의 영문 알파벳을 풀어 우리말로 "브이 아이 씨 티 오 알 와이!"라고 외쳐댔다. 그때는 그게 뭔지도 모르면서.

초등학교의 운동회는 한 달 전부터 오전 수업 후 오후는 치열하고 치밀하게 준비를 했다. 시골의 면단위는 운동회 날이면 학부모는 물론이고 학교 인근 마을주민들까지 성황을 이뤘다.
그때 운동회는 봄, 가을로 나뉘어 봄 운동회는 소운동회, 가을운동회는 대운동회로 불렸다. 운동회 날은 새 쌀로 밥을 짓고 계란반찬 등 푸짐하게 차려서 누나·엄마들이 머리에 이고 온 음식을 펼쳐놓고 가족과 일가친척들까지 운동장가에 앉아 구경을 했다.

지역의 대동제나 다름없는 운동회 날짜도 추석 다음날로 잡는 등 명절 분위기를 이어갔다. 종목도 학생들 뿐 만 아니라 선생님, 학부모, 지역주민들이 고루 참가할 수 있도록 배려해 모두가 함께 신나는 축제의 장을 연출했다. 예전 초등학교 운동회는 1년 중 지역의 큰 축제로 달리기, 청·백 계주, 학부모 달리기, 선생님 달리기, 장애물 달리기 등의 경기를 가졌다.

그렇게 신나던 추억의 운동회였건만 얼마전에는 두가지 우울한 소식을 들었다.
하나는 이 운동회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소식과, 그나마 남아있는 학교조차도 그걸 이벤트 업체에 맡겨서 치른다는 것이다.

얼마전 끝난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의 운동회도 오전에 운동회를 하고 평일과 같이 학교에서 제공하는 점심을 먹은 뒤 귀가했다.
그나마 운동회를 아예 하지 않은 학교도 있다고 한다 운동회가 사라지는 것은 운동장 사정, 거기에 들어가는 각종 경비, 운동회 중에 다치는 것 등에 대한 문제라 한다.

운동회가 사라지고, 그나마 이벤트 업체에 맡기는 현실_1
운동회가 사라지고, 그나마 이벤트 업체에 맡기는 현실_1

또 하나 며칠 전 깜짝 놀랄만한 뉴스를 접했다. 
행사를 교직원들이 준비하지 않고 이벤트 업체 등에 맡기는 학교도 상당수라는 것이다. 운동회 위탁 업체와 계약해서 치른다니. 내가 어릴적에 선생님과 함께 응원계획을 짜고, 선생님 손 잡고 함께 달리던 추억은 영영 사라지고 마는 것인가.

오늘날 체육의 문제는 초등학교만의 일이 아니다. 상급 학교로 갈수록 이는 더 심각해지고 세월이 흐를수록 심화되고 있다. '공부하는 운동선수, 운동하는 학생'은 미국 같은 나라에서만 가능한 일일까. 
체육은 엄연히 중요한 교육의 한 분야다. '지덕체'라 하여 지육과 덕육 다음으로 부를 정도다. 체육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들은 '체덕지'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중장년 이상의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청, 백군으로 나뉘어 하루를 신나게 놀던  그 운동회에 대한 추억이 있을 것이다. 

다시 필자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초등학교 4학년 때 종이에 적힌 사람을 찾아 그 사람과 함께 뛰는 종목이 있었는데 집어든 종이에는 '담임선생님'이 적혀 있었다. 
냅다 본부석으로 달려가 선생님 손을 잡고 뛰는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선생님은 초등학교 4학년인 제자의 손에 끌려 절룩거리며 뛰고 있었다. 그때 나는 알았다. 선생님이 상이용사이셨다는 사실을.

선생님은 생전에 일상생활에는 큰 불편이 없었지만 제대로 뛰지 못했다. 어린 마음에 선생님에 대한 존경과 감동의 마음이 솟구쳐 올랐던 기억.
이런 소중한 추억을 주는 운동회가 사라지고, 그나마 이벤트 업체에 맡기기도 한다니.

아이들이 공부에만 몰두하는 까닭에 점점 덩치만 큰 약골로 변해 가는 요즘. 그나마 어릴적 소중한 추억을 주던 그 운동회를 제대로 치르기는 어려운걸까. 학부모로써 또 하나의 숙제를 안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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