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공소시효가 지난 '절도범'들이었다
2012-11-03 00:24:27최종 업데이트 : 2012-11-03 00:24:27 작성자 : 시민기자 유병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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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예나 지금이나 늘 통용되는 말이 있다면 '등 따습고 배 부르면 그게 최고'라는 말 아닐까. 우리는 공소시효가 지난 '절도범'들이었다_1 우리 셋은 마치 약속이나 한듯이 그 연탄이 우리것인양 몇장을 들어 날랐다. 당시 골목에 가로등도 없었고, 인기척도 뜸한 늦은 시각이라 '연탄 도둑질'은 생각보다 쉬웠다. 우리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골목 일대를 돌기 시작했다. 대문 옆이나 담장 근처에 쌓아놓은 연탄이 꽤 있어서 집집마다 다니며 서너장씩 '자리 바꿈'을 실시한 것이다. 난생 처음 해보는 도둑질(?)이었지만 순식간에 익숙해졌다. 들킬까 두렵기는 했지만 친구가 얼어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우리는 잠시 양심을 천지신명께 맡기고 부지런히 밤 골목길을 누볐다. 도둑질 한다는 긴장감 때문에 온몸이 땀에 젖는것도 모른채였다. 입고 있던 옷가지가 시커먼 연탄가루로 채색이 됐다는것을 느꼈을때쯤 한놈이 "야, 됐다. 이정도면 보름은 땔수있을거다"라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손을 가로저을 때에서야 비로소 멈췄다. 그때 연탄 서리로 훔친게 아마도 20장은 됐을 것이다. "얌마, 너 바보 아냐? 얼어 죽을라고 환장했냐!" 약국에서 사온 감기약을 먹이며 이구동성으로 현수에게 면박을 주자 녀석은 그냥 피식 웃기만 했다. "생일선물로 케잌 사왔다. 근데 부엌에 있는 연탄은 가난한 유학생 촌놈을 위해서 동네 아줌마들이 너도나도 서너장씩 기증하신거다. 나중에 갚어라"라며 명철이가 너스레를 떨었다. 그후 우리 넷중 두녀석이 대학에 진학을 못했다. 나중에 재수해서 모두 대학에 가긴 했지만 대학가요제 출전 꿈은 이루질 못해 결국 그때 일은 아스라한 추억이 되고 말았다. 어렵고 가난하게 살던 시절, 연탄 한 장도 꽤나 소중했던 그때에 우리 때문에 연탄 서너장씩 도둑맞은 주인분들께 정중하게 사죄드리고 싶다. 이미 공소시효(?)가 지난 일이긴 하지만. 변명하자면 그때의 절도범(?)들은 '개과천선'을 해서 지금 가정을 꾸리고 국가와 사회를 위해 열심히 사는 중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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