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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내가 좀 더 잘 할께
아내에 대한 남편의 다짐
2012-10-23 14:42:18최종 업데이트 : 2012-10-23 14:42:18 작성자 : 시민기자   이학섭

"갔다 올께"
서류 가방을 들고 출근을 하면서 아내에게 인사를 했다. 그런데 평소처럼"네, 조심해서 다녀 오세요"라는 인사가 나올줄 알고 기대했던 내 생각과는 딴판으로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구두를 신으려다 말고 다시금 "여보, 다녀 온다니까"하면서 좀 큰 소리로 말하자 그제서야 아내가 "네"하면서 약간 시큰둥하게 말하는게 아닌가.

기분이 이상했다. 아내에게 무슨 일이 있나?
"여보... 남편이 출근하는데 무슨 대답이 그렇게 시큰둥해? 서운하게스리"라면서 약간 감정이 상한걸 억눌러 참으면서 완곡하게 항의(?)했다.
그러자 마치 아내는 나의 말을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여보, 음식쓰레기좀 어제 비워달라고 부탁했는데 그냥 놔둬서 냄새가 심하게 났잖아요."

아, 그랬다. 맞벌이 하는 아내가 요즘 요즘 회사일로 너무나 바쁘다. 그래서 내가 아내 가사를 좀 도와주고 있는데 그나마 내가 해주는 일이라고 해봤자 다 돌아간 세탁기의 빨래를 걷어 널어 주는 것, 음식 쓰레기 비워 주는 것, 재활용 쓰레기 분리수거 해주는 정도였다.
그래도 그것만이라도 잘 했어야 하는데 어제 딴 일을 하다가 깜빡 한 것이다. 아내는 어제도 회사에서 돌아와 쌓인 회사 업무를 하느라 컴퓨터를 켜 놓고 새벽 2시까지 씨름을 하다가 잠을 청했다. 피곤함이 얼굴에 묻어났다.

그렇게 한 뒤 새벽에 일어나 아이들 밥 챙겨주고 보니 음식 쓰레기가 그냥 남아서 냄새를 풍기고 있었으니 남편인 나에게 서운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출근하려고 현관을 막 나서려는 내게 아내가 불만 섞인 목소리로 말한 것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아침부터 꼭 이렇게 남편 기분을 상하게 해야 하나, 나름대로 집안 일을 많이 거들고 있는데… 이런 저런 생각에 화가 났지만 꾹 참고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집을 나섰다.
아내는 이제 설거지를 마치고 부랴부랴 출근을 할것이며, 앞으로 서너차례 지방 출장까지 다녀와야 하는 일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졌나 보다. 

제법 쌀쌀한 바깥 바람에 몸마저 움츠혀 들게 했다.
버스에 올라 맨 뒷자리에 앉아 낯 익은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겼다. 그러고 보니 참으로 다정한 풍경들이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나는 조금씩 늙어가고 있지만 이 모든 풍경은 앞으로도 자리를 지키고 있겠지.

몇 정거장을 지나치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버스에 올라탔다.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내 바로 앞 좌석에 앉히고는 자신은 좌석 손잡이를 잡은 채 서 있었다. 두 분은 여느 노인 분들과는 달랐다. 할아버지가 할머니 쪽으로 약간 몸을 숙이더니 조용히 말을 주고 받았다.
할아버지의 입가에는 가벼운 미소가 번졌고 할머니도 행복한 표정이었다. 할아버지가 귓속말을 하면 할머니는 손을 절레절레 흔들면서 수줍은 표정을 짓기도 했다. 가만히 들어보니 아들의 주선으로 다녀온 단풍열차 여행에 대한 이야기였다. 두 분의 모습에는 행복감이 넘쳤다. 

여보 내가 좀 더 잘 할께_1
여보 내가 좀 더 잘 할께_1

지금 이 순간이 두 분에게는 더 없이 소중한 시간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나는 어떤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동안 나는 정말 아내에게 잘해주고 있다고 여기고 있었지만 그것은 나만의 생각이었던 것 같다.
평상시 아내가 했던 말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내는 큰 것보다는 사소한 것들에 좀더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이만큼 해주었으니 그저 고맙게 여길 것이라는 생각만 했으니 아내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것이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해 준 두 분에 대한 기억은 오래 남을 것이다. 

아침 출근길에 뵌 어느 할머니 할아버지 두분의 다정스런 모습에서 다시금 내가 아내에게 더 잘해야겠다는 다짐과 반성을 하게 되었다.
"여보, 더 잘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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