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상주의 곡소리와 21세기의 효도
2012-10-22 00:30:27최종 업데이트 : 2012-10-22 00:30:27 작성자 : 시민기자   이기현

친구의 부친께서 작고하셔서 주말에 상가에 다녀왔다. 상가는 경기도 남양주 마도읍 쪽이었다. 여늬 상가나 다 마찬가지겠지만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 가니 상주인 친구를 비롯해 3명이 상복을 입고 문상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고인의 영정 앞에서 가볍게 목례로 예를 갖춘후 향을 하나 집어 피우는 순간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아, 곡소리였다. 내가 어릴적에 고향 마을에서나 듣던 상가집의 곡소리. 

나이가 들어 까맣게 잊고 있었고, 결혼 후 성인의 도리를 하기 위해 이곳저것 수많은 상가를 다녀보았지만 어느샌가 사라져서 도통 듣지 못했던 상가집 상주의 곡소리를 들으니 너무나 생경했지만, 가슴 한켠으로는 뭉클함마저 들었다.
부모를 여읜 자식이 문상객 앞에서 곡을 안하는 것에 대해 이제 요즘 세대엔 그걸 일컬어 불효라고 할수는 없으나, 곡소리를 내는 상주에게는 절대적으로 효도하는 거라 말할수 있을것 같다.

상주의 곡소리와 21세기의 효도_1
상주의 곡소리와 21세기의 효도_1

나는 향을 피운 후 뒷걸음질로 물러나 절을 두 번 드리고 다시 일어나 상주와 함께 맞절을 했다.
물론 곡소리는 맞절이 끝날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친구는 상주 3명중에 막내였는데, 연세가 50대 중반인 큰 형님이 아버지를 여의였으니 당연히 곡을 해야 한다하셔서 친구와 둘째 형님 모두 처음으로 곡소리라는 것을 내게 되었다고 한다. 친구의 어머님은 아직 생존해 계셨으니 처음일수밖에...

상가집에서 곡소리를 들어본 사람이 요즘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아마도 내 나이 또래쯤의 중년층 이상이 어릴적에나 들었을 것이다.
내가 어렸을적만 해도 상가에서는 항상 곡소리가 들렸다. 상주들이 문상객이 올때마다 "어이구, 어이구"하면서 곡소리를 내었고, 그것이 부모님을 멀리 떠나 보내는 죄인인 자식의 마지막 효도였다.

그리고 그때는 고인의 직계 가족 당사자만 곡을 한게 아니었다. 이웃의 누구라도 그 지인들은 상가에 오면 상주와 함께 "애고, 애고" 하면서 같이 울었고, 만약 마을에 혼자 사는 노인이 돌아가셨을 때는 상주가 없어도 망인과의 옛정을 못잊어 찾아 온 외인들의 곡소리가 더 구슬프고 길며 소리도 컸다.

그래서인지 옛 어른들은 상주가 돼 봐야 세상사를 알게 되고 회개와 참회를 하게 된다고들 하셨다.
그러던 것이 세월이 흐르면서 슬슬 곡소리 내는 것이 번거롭다는 생각들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곡소리가 줄어들기 시작했는데 그게 완전히 사라지기 직전에 약간의 변환기가 있었다.

즉 상가에서 곡을 대신 해 주는 사람들이 등장한 것이다. 물론  상주에게서 돈을 받고 상주와 함께 서서 대신 곡소리를 내주는 역할이었다. 요즘 가을에 벌초를 대신해 주듯이.
곡을 하긴 해야겠는데 목에서 억지 울음 소리가 안 나오니 상주 입장에서 궁여지책으로 곡소리를 내는 사람을 고용한 것인데, 그런 과도기는 오래 가지 않았다.

곡소리 자체가 힘들다는 점에 공감이 확 퍼졌고, 제3자가 곡소리를 내주는것에 대한 반감과 비판이 쏟아져 그마저 결국 없어지면서 상가에서 곡소리는 완전히 사라졌다. 부모를 여읜 일에 진정으로 슬퍼하는 가족의 진짜 흐느낌 소리 빼고는...

부모를 떠나 보낸 자식이면 그 참담하고 망극한 맘이야 어찌 저버릴 수 있겠는가. 그 심정을 곡으로 표현한게 우리의 전통적 효도였다. 그게 세월이 흐르면서 완전히 사라진걸로 알았는데 이전에 단족한 상주가 "어이고, 어이고"하며 문상객을 맞는 모습을 보니 떠나가신 친구의 아버님은 참 행복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부모의 희생과 사랑에 대한 보답을 다 하지 못한채 부모님중 한분을 떠나 보내는 사람이 있다면 효도에 게으르던 지난날을 늦게라도 용서 빌고자 영전 앞에 무릎을 꿇고 곡소리를 내어 보심은 어떨런지....

 

연관 뉴스


추천 0
프린트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icon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