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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들빼기를 많이 사오신 아버지의 마음
서로 나눠 먹는 미덕 속에 피어나는 정
2012-10-22 09:04:39최종 업데이트 : 2012-10-22 09:04:39 작성자 : 시민기자   오승택

고들빼기를 많이 사오신 아버지의 마음 _1
고들빼기를 많이 사오신 아버지의 마음 _1

파란 봉지 안에 가득히 쌓인 고들빼기가 현관문 앞에 놓여 있었다. 족히 5살짜리 아이 키 만한 고들빼기를 사 오신 분은 아버지셨다. 채소 값이 금 값인 요즘에 고들빼기는 한 단에 2천원 정도라고 한다. 한 단 치고는 꽤 양이 많은 고들빼기를 10단정도 사오셨으니 언제 이 많은 것을 다 먹을까 하는 고민이 절로 생겨 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고들빼기는 봄 나물인줄로만 알고 있었다. 완연한 봄 기운이 감돌 때 들에서 삼삼 오오 모여서 캐 먹는 식물이라 생각 했는데, 4계절 아무 때나 재배가 가능한 식물이었다. 
제철 나물은 먹을 수 있는 시기가 한정 되어 있어서 안 좋은데, 계절 상관 없이 여름이나 겨울에도 먹을 수 있는 고들빼기는 식량이 부족했던 옛 시절에도 효자 노릇을 했을 식물이다. 

아주 어릴 때 아버지가 산에 가시면 고들빼기를 한 봉지 씩 캐오셨던 것이 기억 난다. 사방 천지에 널려 있는 식물들 중에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고들빼기 인 것 같다. 씨만 뿌려도 번식력이 워낙 좋아서 아무 곳에서나 잘 자라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어디서나 눈에 잘 띠는 나물인 것 같다. 

고들빼기를 선호 하시는 아버지는 옛 고향 생각이 나실 때 마다 고들빼기 먹는 것을 즐기신다. 그리고 위장이 안 좋으신 아버지가 위장개선을 위해 잘 잡수시는 것이 고들빼기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고들빼기의 효능이 위장개선인 것에 반해 맛은 속이 쓰릴 정도로 맵고 쓴 것이 이상하다. 

집에 없으면 반찬 가게에서라도 소량 사와서 따끈한 밥과 드시곤 하는데, 옆에서 종종 한 입 얻어 먹는데 맛이 없다. 달지도 않고 쓰기만 한 고들빼기에 매운 양념이 더해져서 맛이 이렇게나 없는데, 아버지가 맛있다고 하시는 감탄사를 이해 하기가 힘들다.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반찬 가게에서 사 드시더니 이번엔 왠 일로 고들빼기를 만들려고 사 오신 것인지 당췌 알 길이 없지만, 이미 사온 것을 어찌 할 방법이 없었다. 

나머지 몫은 어머니의 손 맛에 맡길 수 밖에 없었다. 고들빼기를 다듬고 흐르는 물에 씻는 일까지는 내가 했다. 잎사귀과 뿌리 끝 사이사이에 묻은 흙을 제거 하느라 힘들었다. 사온 고들빼기 양이 어마어마해서, 들어 가는 양념도 엄청 났다. 대충 간장과 고춧가루, 생강, 당근등이 들어 갔는데 만드는 과정은 봐도 모르겠다. 

도마 위에서 칼 질을 뚝딱거리며 하시더니 당근 채가 썰어지고 양념이 완성 되었다. 깨끗하게 다듬은 고들빼기를 넣어서 양념으로 무치는 것에만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다 만든 고들빼기를 그릇에 담으니 넓고 큰 플라스틱 통 5개가 꽉 찼다.
 
고들빼기를 많이 사오신 아버지의 마음 _2
고들빼기를 많이 사오신 아버지의 마음 _2

2통은 집에서 먹고, 1통은 할머니 댁 또 한통은 고모와 이모 댁에 갖다 드렸다. 고들빼기를 만들 때 좀 거든 고모에게 2통을 드리려고 했는데, 가까이 사는 이모가 서운해 할까봐 고모가 양보를 했다. 어쩜 이리도 양보와 미덕이 피어 오르는 따뜻한 집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알고 보니 아버지가 고들빼기를 많이 사 오신 이유를 늦게 나마 깨달을 수 있었다. 사촌 형제 지간이 많아도 나눠 먹는 풍습이 사라진지 오래인 시대에 나눠 먹기를 원했던 아버지의 마음이 엿 보였다. 
고들빼기를 손수 해서 나눠 준 덕 분에 얻는 것도 많았다. 고들빼기를 받은 이모댁에서 포도 한 상자가 배달 되어 왔다. 이렇게 서로 나눠 먹으니 기쁨도 두배 맛도 두배가 된다. 
어린이 키 만한 고들빼기 자루가 순식간에 줄어 들었지만 마음만은 풍성 했다. 

고들빼기를 많이 사오신 아버지의 마음 _3
이모댁에서 보내온 포도 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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