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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원으로 보여준 순수한 인정
2012-10-22 10:41:13최종 업데이트 : 2012-10-22 10:41:13 작성자 : 시민기자   이영희
직장인들의 하루 일과중 가장 기쁜 시간은 톼근때 아닐까. 온종일 회사 일에 파묻혀 정신 없이 일하다가, 자신의 맡은바 업무를 차질없이 말끔하게 끝낸후 일종의 성취감을 맛보며 퇴근시간을 챙기는 기분. 이것은 샐러리맨들의 공통적인 심리일것이다.
그래서 퇴근시간에 임박해서 걸려오는 전화에는 대개 "내일 처리하자"거나, 혹은 아주 중요한 사항이 아니면 퇴근의 기분을 망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얼른 집에 돌아가 아이들 얼굴 보고 싶어 하는 것이다.

며칠전이었다.
회사에서 막 퇴근하려던 찰나, 연세 지긋한 할머니 한분이 찾아오셨다. 하지만 행색이 남루하고 약간의 냄새도 풍겼다. 퇴근준비를 위해 부산하게 움직이던 직원들의 시선이 일시에 쏠렸다가 모두 다 약속이나 한듯이 고개를 숙이며 서로들 그 할머니를 외면했다.

퇴근의 기분을 할머니에게 뺏기고 싶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나도 물론 그중 하나였다.
"내가... 손주를 키우는디.... 요새 고물장사가 않되서... 돈좀 천원만..." 이라며 어렵사리 말을 꺼낸 할머니.
"할머니. 여기는 할머니가 함부로 들어오시는곳이 아니에요. 빨리 나가세요"
할머니의 얘기가 끝나기 무섭게 한 남자 직원이 매몰차게 할머니더러 나가달라고 요구했다. 할머니는 쭈뼛하는 몸짓으로 엉거주춤 서 있다가 뒤로 돌아 나갔다. 

그 축 처진 어깨. 그리고 할머니는 많은 돈을 달라고 한게 아니라 단돈 천원이라고 했던 말이 퍼뜩 스치고 지나갔다.  물론 천원씩 이 회사 저회사 찾아 다니며 돈을 모으면 그게 5천원도 되고 만원도 될수있겠지만 이 큰 회사에 와서 겨우 천원 달라고 했는데 우리는 그 할머니를 모두 다 외면했고(나 역시) 심지어 나가달라고 한 것이다.

그때 입사 1년차인 여직원 한명이 쏜살같이 밖으로 나갔다 돌아왔다. 화장실에 갔다 왔겠거니 생각했겠지만 내가 보기엔 화장실 다녀올 시간으로는 아주 짧은 시간.
"수현씨, 어디갔다 왔어?"
내 물음에 여직원은 피식 웃기만 했다.
"할머니한테 돈 드렸거 아냐? 그런거지?"
"네" (모기만한 소리로)
수현씨는 마치 죄를 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게 왜 죄지은 일인가.

"그~으래?"  그 말을 전해들은 직원들은 모두 놀랐다. 
"뭣하러 그런 사람들한테 돈을 줘? 얼마나 드렸는데?"
이번엔 다른 남자 직원이 핀잔처럼 거들었다. 
"오천원...요"(역시 모기만한 소리로)

오천원으로 보여준 순수한 인정_1
오천원으로 보여준 순수한 인정_1

오천원이나? 퇴근을 준비하던 직원들 모두 다 놀라서 할말을 잠시 잃었다. 그리고 천원 혹은 2, 3천원이었다면 정말 뭐하러 돈을 드렸냐, 그런 할머니 할아버지들 수두룩 하다, 지하철 가면 발에 채이는게 앵벌이 소년들이다, 그거 다 조폭들이 뒤 봐주는거다 등등 무수한 말들이 쏟아질 판이었는데 막상 오천원을 드렸다는 말에 차마 그런 말들은 하지 못했다.

"저기... 할머니가 진짜 손주를 키우시는지 모르잖아요. 저도 동생이 있어서..."라고 말하는 수현씨.  아직은 순수하고 때가 덜 묻은 입사 1년차 신입직원인 그녀의 얼굴이 참 예뻐보였다. 
사실 우리는 다들 할머니 말이 거짓말이라고 여겼는지 모른다. 또한 정말 그렇게 전문적으로 구걸을 하는 분일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그냥 돌려보내드린후 마음속으로는 서로간에 그렇게 외면한 것이 괜시리 후회스런 마음도 들었던게 사실이다. 

어쩌면 우리는 아무리 진실이라도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불신이란 습성에 익숙해져 있는지 모른다. 문득 믿음이란 것에 대해 책에서 본 이런 구절이 생각났다. 
'믿음은 속아주는 것'이라고. 

아무런 댓가 없이, 설사 할머니가 거짓말쟁이라 해도 그런 할머니를 믿어주고 싶은 심성. 우리에게 이제 그런 마음과 믿음이 사라져 가는데 우리팀 여직원 수현씨는 순수한 영혼을 가졌다. 
내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고 그의 마음이 진실이든 거짓이던간에 그 할머니의 마음을 부정한 것이 미안하게 여겨졌다. 점점 더 메말라 가는 도시인들의 가슴에 그날 수현씨는 인정이라는 따스함을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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