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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가 내린다는 상강이 내일인데
이제 서서히 겨울맞이 채비를 하며
2012-10-22 11:50:31최종 업데이트 : 2012-10-22 11:50:31 작성자 : 시민기자   권순도

"애기덜 감기 안걸리게 내복은 준비했냐? 늬덜도 회사 다닌다고 몸 축나지 않게 잘 먹고 댕겨라. 요새는 건강이 최고라더라. 들너머 정춘이네 할망구는 감기가 걸렸는디 나흘째 꼼짝도 못허구 있다 안허냐. 요세 감기 무섭다고 허지?"
어머님의 전화셨다. 여기서 말하는 애기덜이란 대학생과 고등학생 손주들인데 어머님께는 여전히 다 큰 그 아이들조차도 애기덜 축에 드는 것이다.

말씀 속에는 오로지 자식들 걱정이 깊이 박혀있다. 한겨울에 기름 보일러에 들어있는 석유 아끼신다며 주방, 뒷방, 안방중에 주방에만 보일러 틀어놓고 거기서 숙식을 죄다 해결하시며 나머지 방 2개는 냉골을 만들어 놓고 사시는 시부모님 두분.
그 나머지 두 방에는 1년에 딱 한번 보일러가 돌아간다. 설 명절때다. 자식들이 와서 잠을 자야 하니 그때만 그 방에 보일러를 가동하실 정도로 단 한푼이라도 자식들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지 않으려 하신다.

어머님 전화를 받고 나서 사무실 책상에 놓여져 있는 탁상용 달력을 보니 내일이 상강이다. 
한로(寒露)와 입동(立冬) 사이에 들며,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다는 상강, 바로 그날이다. 그러고 보니 추석 이후로 시간이 어찌 흐르는지 몰랐는데 어머님의 자식들 건강걱정, 추위걱정 전화를 받고 정신처려 보니 벌써 상강이었다.
이내 기온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할 것이다. TV에서는 김장용 배추를 볏짚으로 묶어두는 모습이 보이고, 고랭지에서는 김장용 배추와 무를 마지막으로 점검하는 농부들의 바쁜 손놀림이 방송된다.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이 내일인데_1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이 내일인데_1

아, 이제 겨울이 다가오는구나!
어린시절, 추위가 다가오면 월동준비를 하던 생각이 났다. 제일 중요한 것이 땔감이었다. 연탄을 사서 광에 쌓아두어 적당히 습기가 건조되어야 아궁이에서 가스가 많이 나오지 않았다. 겨울이면 연탄가스 중독 사고가 심심치 않게 일어났고, 그로 인한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었다.

다음이 방문에 창호지를 갈아붙이는 일이었다. 방문을 떼어내 문살에 엷은 풀을 칠한 다음 창호지에 물을 뿜어가면서 팽팽하게 붙이고, 그 한 귀퉁이에 봄, 여름에 말려놓은 예쁜 꽃잎들을 붙인 다음 창호지 한 겹을 더 붙여 한 겨울에도 꽃잎을 바라볼 수 있게 한 후 문 가장자리에 들어오는 바람을 막기 위해 문풍지를 붙였다.
그리고, 먹거리 준비가 되면 월동준비가 끝이었다. 추수한 벼를 사두기도 하고, 고구마 가마니를 창고에 사들이기도 하였다.

그런 준비 가운데 가장 절정이 김장이었을 것이다. 한 쪽에서는 큰 솥을 걸어놓고 불을 때면서 언 손을 녹여가며 배추를 절이고, 씻고, 양념을 버무려 집안 여자 어른들이 모여 앉아 백포기가 넘는 김치를 담그고, 남자 어른들은 땅을 파 겨우내 김치를 보관하여 둘 독을 묻던 일이 어린 시절 기억에는 그야말로 잔칫날 풍경으로 남아있다.

이제는 난방이야 관리비를 조금 더 내면 되고, 여름이나 겨울이나 방문이 닫혀 있기는 마찬가지이니 계절이 바뀐다고 따로 창호지를 갈아붙이는 일이 있을 턱이 없다. 김장이라고 해 봤자 따뜻한 현대식 건물 안에서 김치냉장고에 십여 포기의 김치를 담는 일이 고작이다. 

그나마 상당수는 입맛에 맞는 김치를 주문하기도 하였는데, 요즘은 정말 김장 담그는 주부들이 줄어들고 있다고 하니 그것 또한 격세지감이 아닐런가 싶다.
창호지를 바르고 겨울 맞을 채비를 하면서 이웃과 친척들이 모여서 나누던 담소, 그 사이를 뛰어다니며 야단을 맞기도 하고, 사고를 저지르기도 하였지만, 벌써부터 겨울방학과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던 설레임은 잊을수 없다.

그러고 보면 추위를 녹이는 것은 난방기구나 철저히 바람을 차단하는 육중한 문들만은 아닌 모양이다. 
벌써부터 추운 겨울을 맞이하는 일종의 설레임과 거기에 섞인 여러 방식의 준비들, 사람과 사람이 모여서 서로 부딪히면서 나누는 정감들이 닥쳐올 긴 겨울을 더욱 짧게 하고, 매서운 추위에도 웃음으로 맞서게 하는 온기를 발생하였던 것이 아니었던가 싶다.

이제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는 상강이라는 절기 앞애서 겨울을 춥지 않게 보낼 우리 가족간의 사랑과 이웃과의 따뜻한 만남을 생각해 본다. 이제 한달 후부터는 길에 구세군 자선냄비가 등장할 것이고, 산타를 맞이할 준비를 시작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라도 이웃들이 겨우살이 준비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미리밀 점검해 두는 지혜도 필요할듯 하다. 그리고 우연히 여유 있게 준비된 무언가를 어려운 이웃들에게도 조금씩 나눌 수 있으면 더욱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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