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내성적인 그 친구가 축구 실력자였다니...
2012-10-24 12:59:22최종 업데이트 : 2012-10-24 12:59:22 작성자 : 시민기자   최종훈
직장이든 학교든 어딜가나 처음 다른 조직에 들어가면 응당 서먹해 지고 친구도 없어서 외롭다.
하지만 직장이야 성인들이고, 그 나름대로 직급이라도 있으니 부하 직원을 관리하면서 자신의 뜻을 펼칠수 있지만, 60명의 학생이 다 똑같은 동급생인 학교에서는 오로지 자기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한다.

공부도 혼자 해야 하고, 친구도 알아서 사귀어야 하고, 주변 환경에도 적응해야 한다.
이것이 예전에는 그나마 큰 문제 없이 잘 됐지만 요즘은 아이들끼리 소위 왕따를 시키는 일이 적잖아서 전학도 꺼리는 편이라 한다.
하지만 어쩔수 없이 전학을 가야 하는 경우, 모든건 본인의 노력 여하에 달려있으나 그게 만만치 않은게 학교 생활이다. 모두 다 철이 안든 청소년들의 집단이니.

내성적인 그 친구가 축구 실력자였다니..._1
내성적인 그 친구가 축구 실력자였다니..._1

고등학교때 일이다. 다른 학교에서 전학온 친구가 있었다. 그때는 내가 2학년때였는데 이 친구는 무척 내성적이었다.
외지에서 온 아이가 말수도 없고 내성적이다 보니 자연히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혼자 놀게 됐다. 그 친구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외톨이가 돼갔다. 그는 공부도 보통이어서 선생님들로부터도 주목을 받지 못했고,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요즘처럼 아예 대놓고 아이들이 괴롭히는 일은 없었다. 다만 본인이 나서지 않으니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갖지 않게 되고 스스로 혼자 외톨이가 되어 가고 있었다. 점심때 도시락도 늘 혼자서 먹었다. 
이 친구는 이렇게 항상 소극적이고 쭈뼛쭈뼛 하면서 앞에 나서지 못했다.

그러던 그해 가을이었다. 
교내 가을 체육대회가 열렸는데 당시에 학급 대항 축구게임은 체육대회의 하이라이트였다. 총점에서 차지하는 배점 비율도 가장 높아서 체육대회중 축구 게임은 심판도 무척 엄격했고, 심판에 대한 항의도 유난히 많을 정도로 치열했다.

각 학급마다 축구 게임을 이기기 위해 방과후에 연습을 하는가 하면, 친척뻘 중에 축구 감독이나 유명한 코치가 있는 학급에서는 아예 그런분을 모셔다 특강까지 받을 정도였다. 축구가 한마디로 전쟁이었다.
우리 반도 마찬가지였다. 반장을 중심으로 베스트 일레븐을 뽑아 연습을 시작했다. 
학급마다 체육대회 준비가 한창이던 어느 날, 체육시간에 우연히 이 친구와 함께 운동장으로 걸어나가게 되었는데 그냥 혹시나 하는 마음에 "너는 축구 못하냐?"하고 물었다.

물론 큰 기대를 한건 아니었다. 나도 서먹허길래 그냥 뭔가 한마디 해야겠다고 해서 생각해낸 궁여지책의 말이었다. 
그런데 이 친구가 "조금...차"라고 하는게 아닌가.
이럴때 아예 축구가 하기 싫거나 공을 찰줄 몰라서 전혀 의지가 없으면 "응, 못차"라고 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모든 친구들과 말 한마디조차 제대로 하지 않을 정도로 혼자 놀던 친구였기에. 
그런데 이 친구는 놀랍게도 "조금 찬다"고 했다. 그 조금의 깊이를 알수는 없었으나 불현듯 정말 숨은 진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실을 반장에게 이야기하자 반장도 그냥 속는셈 치고 함께 축구를 해 보자고 제안하기에 이르렀다. 
결과는 놀라웠다. 이 친구는 공을 가지고 노는 수준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중학교때 축구선수를 하려고까지 마음먹었을 정도로 축구를 좋아하는 재능있는 친구였다.
우리 반은 정말 생각잖게 대어를 낚은 것이다.
이 친구의 축구 실력을 본 학급의 분위기가 반전되었음은 물론 이 사실은 교내에 좍 퍼져서 일대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결과는? 
체육대회때 축구 게임은 체력손실과 시간적인 제약 때문에 미리 예선전을 치러 놓고 체육대회가 열리는 당일 날에는 준결승과 결승전을 치르게 되었는데, 예선이 열리는 동안 우리팀과 붙은 다른 학급들은 정말 재수가(?) 없이 걸려든 꼴이 되었다. 이 친구가 공을 잡고 휘몰아치며 돌아다니면서 우리는 연전 연승을 하고, 결국 체육대회 축구 우승과 함께 종합우승이라는 영광을 거머쥐었다.

학급 친구들은 물론 담임선생님의 입이 귀에 걸렸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이 친구는 하루아침에 우리반의 영웅이 되었고, 그 후로부터는 친구들과 잘 어울리면서 무난한 고교시절을 마치게 되었다. 지금은 충남 천안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고등학교 동창 모임때마다 만난다.

이 친구는 그런 계기를 만들어준 나를 지금까지 고마워 한다. 그리고 그때 축구를 하던 모습을 돌이켜 보면 그렇게 펄펄 나는 아이가 과연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요즘도 중고등학교에서 학생들끼리 왕따를 하거나 문제가 발생해서 신문기사에 나는걸 보면서, 누군가가 조금만 관심을 가져주면 달라질수도 있을텐데 라는 아쉬움을 갖는다.

사람의 가슴에서 배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갖는 것, 아주 작은 관심을 갖는 것, 상대방의 가슴에 희망을 넣어주는 것, 그것은 이토록 정말 크고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마음을 살찌우도록 가정에서 부모님의 더 큰 역할을 기대해 본다.

연관 뉴스


추천 0
프린트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icon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