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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내 꿈이 뭐였더라?
2012-10-21 14:07:43최종 업데이트 : 2012-10-21 14:07:43 작성자 : 시민기자   오수금

"이모는 어릴때 꿈이 뭐였어요?"
주말에 우리 집에 놀러온 초등학교 2학년짜리 조카의 질문. 별거 아닌듯, 이미 오래전의 일이고 이미 결혼해서 아이들이 다 컸기에 중년인 내가 이제사 어릴적 꿈을 되새겨 봐야 별로 나올것도 없는 일이건만 조카의 뜻밖의 질문을 받고 나니 슬그머니 생경한 느낌이 들었다.

"글쎄, 이모의 꿈이 뭐였더라? 오래 돼서 가물가물 하네"
"그래도 꿈이 있었을거 아니에요?"
"그래. 있기는 있었지.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묻니? 너는 꿈이 한달에 한번씩 바뀐다면서..."
동생네의 이야기로는 밥 먹고 나면 바뀌는 조카의 꿈, 밖에 나갔다 돌아 오면 바뀌는 조카의 장래 희망을 빗대어 슬그머니 이유를 물었더니 엊그제 학교에서 장래 희망을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제녀석은 노벨상을 받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하여튼 우리 조카의 꿈은 헝상 거창해!' 
속으로 웃으면서 무슨 노벨상을 받겠냐고 물었더니 노벨 물리학상을 받겠노라 했다.
"그래. 그런 큰 꿈을 가지고 있어야 그 근처라도 가지. 하여튼 좋은 꿈이니 열심히 공부하거라"
"네"하고는 곧바로 컴퓨터로 달려가는 조카. 그냥 풀썩 웃고 말았다. 노벨 물리학상이 아니라도 그런 대화를 먼저 이야기 하는 조카가 대견하고 고맙다. 노벨 물리학상은 고사하고 물리학 교과서 만드는 잉크회사에 취직한다 하더라도....

그러고 보니 나도 어릴 적부터 장래 희망을 기재하는 칸 앞에서는 항상 깜깜했다. 종일 산과 하늘밖에 보이지 않는 손바닥 만한 동네에서 부모님처럼 농사를 지으며 가난에 찌들려 살고 싶지는 않았고, 가끔 흑백 텔레비전의 드라마에 등장하는 낯선 직업들은 내가 아는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그야말로 텔레비전에서만 볼 수 있는 직업에 그칠 뿐이라고 생각했다. 

글쎄 내 꿈이 뭐였더라?_1
글쎄 내 꿈이 뭐였더라?_1

그래서 비워두었거나 대부분의 조카들이 적어내었음직한 선생님이나 회사원(그때는 농촌에서 도시의 회사에 근무하는 회사원도 대단한 직업으로 알고 있었으니까)을 바꿔가며 장래희망란에 적어냈던 기억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당시 동네에서 가장 똑똑하고 학식이 있는 분은 이장 아저씨라 생각했는데 그 아저씨는 실수로 나의 동생과 생일을 바꿔치기해 놓고 1년 반이나 늦게 내 출생신고를 했다.

지금과 달리 그때는 마을 이장님이 동네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이름을 적어다가 면사무소에 가서 출생신고를 하던 때라 이장님이 게으름을 피우다가 출생신고가 늦어지거나 아예 이름이 바뀌는 일이 비일비재 했다.
그나마 아련하게 닮고 살아보고 싶은 삶은 있었다. 도시도 아니고 시골도 못 되는 반촌 즈음에 크지도 작지도 않은 하얀 집을 지어놓고 일하러 간 남편이 돌아올 때까지 밥 짓고 빨래하고, 텃밭을 일구다가 감나무 아래서 바람이 넘겨주는 책을 읽다가, 저녁때가 되면 남편의 밥상을 맛깔스럽게 차려놓고 조카를 업고 대문 앞에서 기다리고, 가끔은 낮잠도 한숨 자고, 일주일에 두어 번 문화센터에서 개설한 강좌에서 자기 개발도 하는 여인상을 머릿속에 그려보기도 했다. 
그건 아마도 중학교 3학년때 쯤에나 가졌던 꿈이었던듯 싶다.

무슨 원대한 꿈이나 큰 욕심을 부린 것 같지도 않은데 살아오면서 내가 꿈꾸었던 집, 내가 꿈꾸었던 생활은 단 한 번도 돼본적이 없었다. 가장 현실적으로 텃밭을 일굴 반촌에 사는게 아닌, 수원같은 대도시에 살다 보니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진 탓도 크다. 
그동안 살아 오면서 더러는 부딪히고 더러는 경쟁하면서 어떤 사람에게는 지식을 배우고 어떤 사람에게는 삶의 자세를 배우기도 했다. 반드시 저런 사람같은 아량을 베풀며 살아야지, 혹은 꼭 저런 사람처럼 멋진 인생을 살아야지 하는 생각을 가져 본적도 있고, 그와 반대로 절대로 저런 사람처럼은 살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가지게 한 분도 있었다.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닮고 싶고 존경하고 싶은 사람은 삶을 통해 나를 조용히 반성하게 하는 분이셨다. 가끔씩 마음이 어지러울 때마다 그분의 너그러운 인품을 통해 그을러진 마음을 닦아보기도 한다. 내 삶의 모델이 되는 분이다. 
이제는 나이가 점점 들어가는데 장래희망은 그저 하나 뿐이다. 남편과 아이들의 건강 말고는 희망이 딱히 필요치 않다.

그래도 하느님의 도움으로 우리 가족 모두 다에게 건강을 주신다면야 그 다음에 그저 소박하게 가지고 있는 진짜 희망이라면 죽을때까지 단 한 번 스쳐가는 사람에게라도 늘 미소 짓게 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내 커다란 잘못을 뉘우치고 다른 사람의 작은 실수에 너그러운 사람이었으면, 단 한 사람에게만이라도 내가 희망이 되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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