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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찌개 같은 고향 사투리
2012-10-23 23:46:00최종 업데이트 : 2012-10-23 23:46:00 작성자 : 시민기자   김대환

고향에 살다가 서울로 직장을 옮긴 30대 초반쯤에 서울에서 가장 먼저 들었던 말은 "충청도 사람이죠?"였다. 나는 나름대로 표준말을 갖춰 쓴다고 한거지만 그 특유의 충청도 사투리와 억양은 숨길수 없었던 모양이다.
사투리를 쓰는게 창피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역시 토종은 토종인가 보다 싶어서 그후로부터는 애써 서울말씨를 쓰려고 노력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무래도 고향을 떠나 오랫동안 수도권에 살다보니 점차 고향 말씨를 적게 쓰고 잊어 버리는 대신 표준말을 익숙하게 사용하다 보니 그 정감 넘치는 고향말씨도 줄어드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결국 지금은 고향에 내려가 고향 사람과 마주서면 사투리가 서툴러서 어색하고, 그렇다고 표준말이라 하여 아주 세련되게 하는 것도 아니다. 어눌하여 쩔쩔맨다. 반 촌놈, 반 도시놈이 된 것이다. 아주 어정쩡하게.
시골사람도 도시 사람도 아닌 어정쩡한 나, 고향 사투리도 표준말도 아닌 어정쩡한 나의 말씨. 결국 그렇세 나는 변장한 까마귀가 되고 말았다.

된장찌개 같은 고향 사투리_1
된장찌개 같은 고향 사투리_1

군대를 제대하고 대학을 마친 후 30대 초반까지, 충청도에서 태어나 성장하면서 계속 뭉기적거리며 살아온 나다. 충청도에서 태어나 그곳 음식을 먹고 자랐고, 그 시골구석에서 살았건만 내가 벌써 사투리에 서툴다니.
어릴적엔 학교에서 사투리를 폄하하고 표준말이라는 규정을 만들어 사투리는 마치 저급한 말로 취급을 받았다. 교육적으로 참 옳지 못한 경우였다.

그러던 것이 나중에는 사투리의 중요성과 토종 방언이나 민속어의 소중함과 우수성을 인정하게 되어 지금은 표준말-사투리 이렇게 구분해서 표준말을 써야 한다고 가르치지도 않는다.
단지 서울과 수도권 사람들이 쓰는 말일 뿐인 것이다.

어쨌거나 내가 어릴적에는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표준말과 사귀게 되었다. 교과서가 표준말로 되어 있었고, 교단의 선생님 말씀 또한 표준말을 사용하셨으니까. 그러나 시골에서 자라던 나는 그렇게 쓰는 표준말과는 별개로 그냥 뒤섞어 사용했다.
학교 생활이 줄곧 그러했다. 사투리와 표준말의 세계를 오락가락하며 살아온 셈이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몰래 나의 말씨는 사투리와 표준말이 뒤섞인 어정쩡한 상태가 되고 만 것이다. 

내가 군대생활을 하던 때, 6주간의 신병 훈련을 마치고 부대 배치를 받아 가 보니 나의 동기가 두명이 더 있었다. 하나는 전라도, 하나는 강원도, 나는 충청도 이렇게 3명이었다.
그런데 이 3명중 전라도와 강원도 태생 동기 두녀석은 서울말씨를 꽤 잘 썼다. 모두 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들 틈바구니에 끼어 생활하면서 충청도 사투리가 튀어나올까 봐 무척 조심을 했다. 하지만 심심찮게 사투리가 튀어 나왔다.
"야, 오늘 반찬이 뭐여?"라든가 혹은 "내일 각개전투 훈련하러 삼봉산 800고지로 간다는디"하는 식이었다. 
그럴 때마다 동기 두놈은 배를 쥐고 웃었다.

그렇게 군대를 제대하고 고향 근처에서 직장을 다니다가 30대 초반에 서울로 올라오면서부터는 본격적으로 표준말과 사투리가 혼재된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아마도 우리나라 각 지역 시골에 살다가 서울과 수원 등 수도권으로 올라와서 사는 모든 시골 출신들이 나와 비슷한 과정을 거쳤을걸로 안다.

사실 지금도 고향 사투리를 들으면 스르르 긴장이 빗장을 풀고, 가슴이 문을 연다. 찐득찐득한 죽마고우의 정을 느끼게 되며 스스럼없는 공감대가 형성된다. 나이가 들수록 고향이 그립고, 고향사투리에 애착이 가는데 고향 사투리를 잊으려고 안달하던 젊은 시절이 후회스럽기조차 하다. 

고향에서 듣는 토박이 친구들이나 어르신들의 사투리는 고소한 숭늉 맛이고, 투박한 질그릇의 멋이다. 때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흘러 나오는 그것은 아무리 들어도 싫증을 느낄 수가 없다. 옹골지게 사투리를 간수하고 즐겨 쓰는 고향 사람들이 참 좋다. 

우리는 우리말을 잊어버린 해외동포를 비웃는다. 그러면서도 고향 사투리를 잊어버린 사람들을 세련된 것인 양 받아들인다. 이건 모순 아닌가.
고향의 사투리를 아끼고 사랑했으면 좋겠다. 도시인들이 고향이 그립거든 고향 사투리부터 아끼고 사랑할 줄 알아야 할 일이다. 된장찌개처럼 맛난 그 말씨가 푸근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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