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친구 딸의 첫월급과 나의 오래전 기억
2012-10-20 00:28:38최종 업데이트 : 2012-10-20 00:28:38 작성자 : 시민기자   정순예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아주 반가워 하면서 흥분된 목소리였다.
"얘, 너네 아이들 지금 몇학년이지"
"몇학년? 큰애가 이제 대학 1학년인데 뭐. 그건 새삼스레 왜?"
"응, 그렇구나. 우리 애 금년에 졸업했잖아. 큰딸 말야. 걔가 지난번에 취직했는데 오늘 첫월급 받았다며 월급이 들어온 통장을 도장하고 턱 내놓는거 있지? 앞으로도 월급은 죄다 엄마가 알아서 관리해 주고 자기는 용돈만 달라잖아.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몰라."
"아... 그렇구나. 지난번에 취직했다고 좋아하더니. 그러네, 한달 됐네. 월급 받을 때가 됐구나. 축하한다 얘. 그런데 요즘은 내의 안 사다 주고 통장으로 통째 주는구나. 우린 옛날에 내의 사들고 갔잖아. 하여튼 좋겠다. 네가 친구들에게 한턱 쏴야겠네"
"그래 호호호..."

친구 딸의 첫월급과 나의 오래전 기억_1
친구 딸의 첫월급과 나의 오래전 기억_1

다른 친구들보다 조금 일찍 결혼한 이 친구. 덕분에 아이가 빨리 졸업해서 취직을 했고 첫 월급을 받아서 통째 내 놓았다며 기쁜 마음에 내게 전화를 한 것이다. 내가 그 입장이라도 기분이 좋을듯 하다. 잘 키워 놓은 마음에 얼마나 보람스러울까. 진심으로 축하해 주고 싶다.

첫 월급. 남자든 여자든 사회에 첫발을 내딛고 받은 척 월급의 기억은 누구나 생생하고 감격스러움 그 자체일듯 하다. 
나는 첫 우러급을 어떻게 했지? 생각해 보니 내가 월급을 받던 처녀시절에는 할머니가 시골에 계셨기에 우리 집의 가장 큰 어르신은 할머니였다. 

그런데 죄송스럽게도 우리는 연세가 많이 드신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들은 많지 않다. 그저 매일 밥해주시는 엄마, 공부하라시며 근엄하신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대부분이지, 계신듯 안계신듯 항상 조용히 경로당에만 오가시는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한 애틋함이나 큰 추억거리가 많지 않다. 죄송하지만...

나의 할머니는 아주 오래전 할아버지께서 작고하신뒤 홀로 고향에서 사셨다. 부모님은 자주 찾아 뵈었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떨어져 살았고, 학교 졸업후에는 직장에 다니느라 자주 뵙지는 못했다.
취직해서 첫월급을 받으면 부모님 내의를 사들고 간다 하는데 나는 그때가 한여름이라 내의 대신 모시메리를 샀다. 딸의 첫월급으로 산 고급 모시메리를 입고 여름을 시원하게 보내시라고 말씀 드리면 무척 대견스러워 하실걸로 생각하며 부모님께 내 드렸더니 아버지께서 표정이 약간 어두우셨다. 

뜻밖이었다. 혹시 첫월급 모두를 뭉칫돈으로 들고 오지 않아서 삐치셨나? 딸자식 헛키우셨다며 서운하신건가?
"너... 할머니 옷은 안사왔냐?"
"네~에? 할... 머니요?"
나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할머니.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나의 아버지의 어머니 아니신가. 내겐 할머니시지만 아버님께는 당신을 낳아 애지중지 기르시고 오늘의 일가를 이루도록 헌신하신 당신의 어머님이셨다. 그런데 할머니 선물을 아무것도 안사왔으니 서운하고 속상하셨던 것이다. 

뒤늦게 아버지의 말씀을 이해한 나는 "내일 한 벌 더 사다가 시골로 부쳐 드릴께요"라고 말씀드렸다. 그러나 아버지는 정색을 하셨다.
"첫 출근에 첫 월급이잖냐. 주말에 모두 시골에 다녀오자."
그렇게 해서 주말에 할머니께 찾아가 사들고 간 모시메리를 입혀드렸더니 이리 돌려 보고 저리 돌려 보시며 흐뭇해 하셨다. 그리고 할머니는 냉면을 특히 좋아하셨다. 우리 가족은 읍내로 나와 냉면집에서 수육과 함께 맛있는 식사도 했다. 물론 내가 샀다. 할머니는 당신이 드신 것 중 최고라고 하시며 기뻐 하셨고, 나 역시 모시고 나오기 잘 했다는 생각을 했다.

그 이후 할머니는 기회가 닿을 때마다 그날의 이야기를 가족과 친척들에게 하시며 은근히 손녀딸 자랑도 섞여 넣으셨다.  그럴 때마다 나는 진작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며 다음에는 더 좋은 데로 모시고 가야 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하지만 그 다짐은 끝내 지켜지지 못했고, 이젠 지키고 싶어도 그럴 수 없게 되어 버렸다.

할머니는 손녀딸이 사 드린 냉면 한 그릇을 그토록 오랫동안 이야기 하면서 손녀에 대한 정을 키워 오셨는데 나는 그날 이후로 바쁘다는 핑계로 할머니께 자주 가지 못했다. 그리고 그 다음해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한여름에 이승을 떠나신 것이다.
장례를 치루던 날 할머니 묘지 앞에서 얼마나 서럽게 울고, 후회를 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할머니께 못해드린 효도는 부모님께 몇곱절 더 하는게 그나마 죄송한 마음을 갚는거라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연관 뉴스


추천 0
프린트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icon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