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정선으로 다녀온 1박 2일 가족여행
억새밭 비단 천에 울긋불긋 등산객이 수를 놓고 있다.
2013-10-31 22:47:56최종 업데이트 : 2013-10-31 22:47:56 작성자 : 시민기자   홍승화

내로라하는 명산들이 화려한 원색을 뿜어내며 손짓하는 10월. 누런 억새로 색다른 가을을 담고 있어 차별화에 성공한 민둥산. 스테이크로 과식 한 후 입가심으로 찾게 되는 수정과처럼 담백한 민둥산. 그 산에 꽂혔다. 

수업 끝나고 축구 방과 후 하는 아들을 픽업해 영동고속도로에 올라탄다. 점심은 문막 휴게소에서 호두과자, 토스트, 어묵으로 간단히 때우고 다시 출발. 이 속도로 가면 정선에 3시 반경 도착할 텐데, 미리 알아둔 여행지가 없다. 여행스케줄도 짜지 않았다고 눈총을 주는 남편. 서둘러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서핑을 한다. 

다들 '레일바이크','화암동굴','아우라지','아라리 촌'을 추천한다. 레일바이크는 오늘 뿐 아니라 내일까지 매진이다. '아우라지'는 물가라 추울 것 같고, '아라리 촌'은 민속촌과 유사할 것 같다. '화암동굴'이 좋겠다. 
진부에서 고속도로를 나와 59번 국도로 빠진다. 색색으로 물들기 시작한 나뭇잎들, 주인의 취향도 묻지 않고, 울긋불긋 요란하게 옷을 갈아입고 있다. 

운전대 잡으면 말이 없어지는 남편과 잠든 아들, 채널이 잡히지 않는 라디오. 차는 묵언 수행 중이다. 그래도 창문 밖 산 구경으로 심심하지 않다. 예쁜 것들은 질리지 않는지 좌우를 번갈아 둘러보느라 목이 고생이다. 

정선으로 다녀온 1박 2일 가족여행 _1
정선으로 다녀온 1박 2일 가족여행 _1

화암동굴에 도착. 모노레일을 운행한다. 레일바이크 못 탄 아쉬움을 풀 수 있겠다 싶었는데 방금 떠났고, 20분 후에 마지막 운행이 있다고 한다. 해가 넘어가고 있어 20분 후면 어둑어둑해 질 것이다. 그냥 걷자. 투덜대는 아들 손에 감자떡 한 팩을 집어준다. 저만치에 10m는 족히 넘을 은행나무가 샛노란 잎을 빽빽하게 꽂고 서 있다. 

화암동굴은 굴진작업 중 발견한 천연동굴과 금광을 캤던 폐 갱도를 개발하여 만든 테마 동굴이다. 동굴입구에는 늦은 시간 때문인지 우리 뿐이다. 동굴길이 1,803m. 동굴 입구를 걸어갈수록 빛줄기들이 꼬리를 감춰 시야가 좁아진다. 

광산 개발의 전 과정을 알기 쉽게 시뮬레이션으로 재현한 모형물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착암기를 실제 작동해 볼 수 있는 코너도 있다. 호기심 많은 아들이 작동요령 버튼을 누른다. 드르륵~ 드르륵~ 암벽 뚫리는 소리. 갱도가 진동해 무너질 것 같다. 천장이 뻥 뚫린 동공. 두둑~ 두둑~ 지하폭포 물 떨어지는 소리. 쭈뼛쭈뼛 머리카락이 서면서 뒤통수가 서늘해진다. 확대경 속의 반짝이는 노란 빛에 위안을 삼는다. 

'역사의 장'을 지나 수직계단을 내려갈 즈음, 모노레일을 타고 온 관광객 말소리가 울린다. 사람 소리가 반가워, 공포감으로 놓치고 있던 동굴 경관이 그제야 보인다. 노다지 궁전 안 호랑이상은 호세 좋게 입을 쫙 벌리고 있다. 석주, 종유석, 석화, 석순, 곡석이 관광지에 온 기분을 살려준다. 금깨비와 은깨비를 형상화 하여 만든 '동화의 나라'코너는 아들이 좋아해 연실 사진에 담는다. 1시간 30여분의 동굴 트래킹을 무사히 마치고 출구로 나온다. 어둠이 주차장 바닥을 덮고 있다. 

저녁식사를 위해 '태평소'로 향한다. 고한시장을 지나 더 이상 이어지는 길이 없을 때 식당이 나온다. 나무계단을 올라가면 공예작업실이 있고, 바비큐 파티를 하면 좋을 널찍한 공간도 보인다. 식당 안은 아늑하다. 두 개의 벽난로, 전축과 LP레코드판, 큰 나뭇조각상이 적당한 위치에 놓여있다. 나무 타는 냄새와 7080 노랫소리가 쉬고 있던 후각과 청각을 깨운다. 

한가한 방으로 자리를 잡았다. 영양돌솥밥 2개와 인삼 대추를 싫어하는 아들용으로 돌솥밥을 주문한다. 사장님은 양이 많다며 돌솥밥을 취소하고, 공깃밥 하나를 추가하라고 조언한다. 대신 군두부와 곤드레 막걸리를 추가 주문한다. 이런 식당은 무조건 마음에 든다. 

식사 전 나온 막걸리는 달지 않으면서 맑아 술술 넘어가, 연거푸 두 잔을 마신다. 영양돌솥밥과 갖가지 나물이 푸짐하게 차려지는데, 그래도 밥이 주인공이다. 심심한 나물 반찬을 남김없이 먹고, 가지나물과 취나물을 한 번 더 리필해 먹는다. 바닥의 온기와 막걸리의 열기에 한숨 자고 싶어진다. 무거워진 엉덩이를 겨우 다독거려 밖으로 나온다. 깜깜한 밤이다. 정선의 밤.

정선으로 다녀온 1박 2일 가족여행 _2
정선으로 다녀온 1박 2일 가족여행 _2

아침으로 떡국을 끓여 든든하게 먹고, 증산초교로 향한다. 아직 등산객이 몰리지 않았는지 주차장이 여유 있다. 입구에서 올려다본 민둥산 봉우리에는 억새가 없다. 허겁지겁 붉은 옷으로 갈아입는 나무들과 꿋꿋하게 녹색 옷 입은 단벌나무들이 덮여있을 뿐.

10여분 걷는데, '완경사' '급경사'선택을 알리는 표지판이 나온다. 아들을 생각해 완경사를 오르는데 만만치 않다. 나도 힘들어 주저앉는 아들의 손을 끌어줄 수 없다. 은행잎보다 더 노랗게 물든 나뭇잎이 가로등 되어 발길을 밝혀준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즈음 쉼터가 나온다. 어묵 국물과 메밀전병으로 에너지를 보충한다. 회색 구름 떼가 햇빛을 먹어버려 기온이 오르지 않는다. 땀에 젖은 옷까지 식어버려 한기가 느껴진다. 

정상까지 1km. 길이 넓고 완만해 걷기에 순탄하다. 정상이 가까워졌는지 억새가 드문드문 눈에 띈다. 선 볼 상대를 사진으로만 보다, 첫 대면할 때의 기분이 이런 것일까. 억새밭 덮인 민둥산 정상의 모습이, 사진 속 모습보다 더 멋질지, 모자랄지 궁금하다. 

정선으로 다녀온 1박 2일 가족여행 _3
정선으로 다녀온 1박 2일 가족여행 _3

흰 잔털들이 빠진 억새밭은 은빛이 아닌 갈색 빛으로 너울댄다. 사진보다 나이들어 보이지만, 기대이상의 모습이다. 억새밭 비단 천에 한 땀 한 땀 등산객이 수를 놓고 있다. 하늘과 산과 사람이 어우러진 작품. 순서를 기다려 민둥산 표지석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가져온 간식이 없어, 옆자리에 잘 차린 상을 곁눈질한다. 족발, 김밥도 있고, 술도 있다. '남 먹는 것 쳐다보는 것처럼 추접스러운 게 없다'는 말이 생각나 서둘러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내려가는 길은 급경사를 택한다. 해가 중천인데 올라오는 등산객이 많다. 스타킹에 구두를 신은 아가씨가 있다. 민둥산이 '나를 뭐로 보냐'고 화를 낼 텐데…….
다리 힘이 빠져 헛발질이 나간다. 이럴 때 조심하지 않으면 미끄러지기 십상이다. 올라간 시간의 딱 반이 걸려 증산초교 앞에 다다른다. 깃발을 앞세워 줄지어 올라가는 등산객들. 산을 넘은 자의 뿌듯함으로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정선에 와서 '정선장'을 보지 않고 갈 순 없다. 공설운동장에 주차를 하고, 조양강 물줄기를 구경하며 시장으로 향한다. 2년 전과 그다지 변하지 않은 모습이다. 손님으로 북적대는 식당에 자리를 잡고, 콧등치기와 모듬전을 주문한다. 금방 부쳐낸 수수부꾸미와 메밀전병, 빈대떡 한 접시로도 한 끼 식사가 거뜬하다. 

말린 곤드레 나물, 야관문, 벌개나무를 사니 땅콩엿 한 봉지를 서비스로 준다. 감자떡, 메밀가루, 강냉이, 마늘도 샀다. 짐이 한 보따리다. 구경할게 지천인데 남편은 늦었다고 성화다. '아쉬울 때 떠나자'
10월의 민둥산 억새 군락지. 은빛 억새밭이 그리워 또 한 번 가슴앓이 할, 멀지 않은 그 날을 기약해본다.

 

연관 뉴스


추천 0
프린트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icon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