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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년 남자, 멋있었다
3만원이 내게 가르쳐준 것
2012-11-01 15:22:24최종 업데이트 : 2012-11-01 15:22:24 작성자 : 시민기자   이선화

해마다 종친회를 하는데 그때마다 일가친척들의 입에서 돌아가며 순번을 정해서 행사를 치렀다. 작년에는 5촌 당숙네 집에서 했고, 종친회가 끝날 무렵 올해 모임을 가질 집을 제비뽑기를 했는데 우리집이 걸렸다. 

얼마 전 금요일, 퇴근길이 바빠졌다. 토요일 오전부터 손님들이 들어오셔서 점식식사를 마친 후 돌아들 가시기 때문에 금요일부터 미리미리 음식준비니 뭐니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오후 6시가 되자마자 부리나케 회사에서 뛰쳐나왔다.  칼 퇴근! 바쁜데 어쩌란 말인가. 뒤에서 "저 아줌마 또 칼 퇴근이네"라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뒤통수가 약간 간지럽기는 했지만 별수 없었다. 평소에 매번 그러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바쁜 날 하는 수없이 일찍 나온 것이니……. 그리고 '다음번에 밤 10시까지 야근해주지 뭐'라는 배짱도 생겼다.

그 중년 남자, 멋있었다_1
그 중년 남자, 멋있었다_1

전철을 타고 수원으로 돌아오기 위해 금정역으로 바쁜 걸음을 재촉하는데 역으로 가는 육교 앞 입구 쪽에서 남루한 옷차림의 할머니 한분이 쭈그려 앉아 울고 계시는 게 보였다.
'노숙자 할머니 아니면 치매인가 보다', 생각하며 그냥 지나치려 했다. 전철을 타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할머니가 계신 곳에 사람들이 적잖게 서있었다.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말소리를 들어보니 할머니는 그 근처에서 노점상을 하시는 분인데  한시간전쯤 가지고 있던 보자기를 잃어버리셨다고 한다.

보자기 안에는 그날 온종일 길거리 노점에서 상치와 야채를 팔아서 모은 돈 몇 만원이 들어있었는데 화장실에서 잠깐 한눈을 판 사이 누군가 집어 가버렸던 모양이다. 지갑을 도둑맞은 할머니는 자포자기 상태로 지하철 역 구내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쭈그려 앉아서 우셨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할머니의 그런 사정을 이해할려고도, 믿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솔직히 그 광경을 구경하던 나도 그랬다.

어찌 할 도리가 없는 일이라 다들 우시는 할머니를 구경만 했고, 나도 그저 안타까운 마음만 가지고 택시를 타려고 돌아서는데 할머니를 보고 있던 사람 중 웬 중년의 남자 한분이 할머니께 뭔가를 쥐어 드리며 말했다.

"이거 가지고 가셔서 장사 하는데 보태세요"
중년의 남자가 할머니께 드리는 돈은 3만 원쯤 돼 보였다.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돈이지만 그렇게 지갑에서 선뜻 꺼내 드리기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잠시 동안 그 할머니를 치매 걸리신 집 나온 노인으로 치부했던 내가 무척 부끄러워졌다.  또한 나는 치매 할머니가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 그런 피해를 당해 자포자기 상태가 되어 울고 계신 것을 믿지 않으려고도 했다. 

전철을 타고 수원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왜 그 할머니가 우시고 있었는지 굳이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곰곰이 해 보았다. 아마도 도시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다 나처럼 그랬겠지' 하면서, 그리고 '나도 바빠서 그런 건데 뭐' 하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위안 삼고 합리화 시켜 보려고도 했지만 부끄러운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귀찮아서 그랬을 것이며 굳이 나의 일도 아닌데 뭐 하러 끼어들까 싶은 이기주의 때문이었을 것이다.

많은 반성과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만든 그분이었다. 그 사람이 갑부이든, 혹은 평범한 직장인이든, 또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일용직 노동자든 그건 중요치 않다. 할머니가 울고 있었던 모습이 설사 연기였다 할지라도 분명한 것은 그 분은 다른 사람의 아픔을 함께 나눠 가지려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자꾸 고맙다고 하시는 할머니의 손을 놓으며 "빨리 가서 쉬셔야 내일 또 장사하죠"라고 웃으며 헤어진 금정역에서 본 이 중년 남자, 멋졌다. 

사람은 평생 배운다고 한다. 이미 대학까지 나와서 아이를 둘이나 둔 주부인 나도 인격 수양에는 아직도 멀었다. 한참을 더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바라볼수록, 그리고 서로를 이해하고 남을 배려할수록 더 아름다워진다는데 나부터 노력하고 내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가르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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