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시골에서 만난 어느 영웅
2012-11-02 09:23:43최종 업데이트 : 2012-11-02 09:23:43 작성자 : 시민기자   권정예

'테레사 효과'라는 말이 있다. 평생 봉사활동에 헌신한 마더 테레사를 머릿속에 떠올리기만 해도 기쁨의 엔돌핀이 증가한다는 미국의 모 대학 연구기관의 조사 결과다. 

날씨가 갑자기 엄청나게 추워졌다. 지난주에 우리는 회사 여직원들끼리 함께 화성시 남양의 농촌 마을에 홀로 사시는 할머니를 찾아 뵈러 갔다가 한 전파사 아저씨 덕분에 테레사 효과를 실컷 맛보고 왔다. 
여자 직원들끼리 승용차 두 대로 나눠 타고 휭하니 달려간 조그만 마을. 

"할머니 저희들 왔어요" 
우리가 정기적으로 찾아 뵙는 할머니 댁에 도착해 여늬때 처럼 대문 앞에서 소리쳤다. 
어? 그런데 당장 문을 열고 달려 나오실줄 알았던 할머니가 기척이 없었다. 우리가 재차 "할머니 안계세요?"라며 안쪽의 기척을 살피자 그제서야 방문이 삐꺽 열렸다. 
"콜록 콜록... 어여덜 들어와. 방이 좀 추운디... 콜록 콜록..."
할머니셨다. 하지만 방문을 열고 우리를 반기시는 할머니는 안색도 안좋고 얼굴이 핼쓱해 보이신데다 기침마저 하셨다. 혹시나 싶어 서둘러 방에 들어가 봤더니... 

시골에서 만난 어느 영웅_1
시골에서 만난 어느 영웅_1

세상에! 방은 냉골이었다. 형광등은 불도 들어오지 않았다. 전기장판을 만져보니 너무 차가웠다. 어찌된건지 여쭸더니 전기에 문제가 있는지 불도 안켜지고 전기장판도 먹통이라신다. 전기가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할머니는 기술자를 부르자니 시골까지 찾아오면 출장비에 수리비까지 달라고 할듯 해서 그냥 참고 지내고 있다는게 아닌가. 그것도 3일째란다.

순간 노인들이 한겨울에 아무 인기척이 없는채 사망한지 며칠만에 발견되었다는 언론보도가 사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놀랐다. 
안되겠다 싶어 얼른 114로 연락해 시내 전파사를 찾아 연락을 했더니 마침 토요일 오후라 문을 닫고 퇴근하려고 한다며 월요일날 다시 전화를 달라는게 아닌가. 

하지만 추운 날씨에 할머니가 이틀이나 더 냉골에서 지내시다가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어쩌나 싶어 전파사 아저씨한테 사정 얘기를 하며 출장비는 충분히 드리겠다고 했다. 그러자 전파사 아저씨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원래는 지금 당장 모임에 갈 약속이 있었는데 그걸 조금 늦추겠다며 우리의 위치를 물었다.

우리는 할머니의 건강이 걱정이 돼서 차 안으로 모신뒤 차의 히터를 켜고 기다렸다.  그리고 전파사 아저씨가 할머니 집에 달려온건 거의 1시간30분쯤 지나서였다. 

그 분은 이곳저곳 살피다가 누전 차단기쪽에 퓨즈가 나갔고 형광등은 안정기가 망가져서 그렇다며 통째로 갈아 줬다. 아저씨가 미리 준비해 온 장비로 이것저것 교체하고 손을 본지 30여분만에 전기도 들어오고 전기장판이 따뜻이 데워지자 할머니 얼굴에 환한 웃음이 번졌다. 암흑같던 집에 광명이 찾아온 것이다. 우리도 안도감이 들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갈 채비를 하던 전파사 아저씨에게 출장비와 수리비를 물었더니 오히려 우리더러 "좋은 일 하시는것 같은데, 그것도 모른채 월요일날 오겠다고 해서 미안합니다"라며 돈을 안받았다.  고맙기는 했지만 출장비는 그렇다 쳐도 안정기와 형광등 값은 받으라고 했으나 그는 한사코 손사래를 치며 사양했다. 
"저의 노모도 여기서 얼마 안떨어진 마을에서 농사 짓고 계시거든요. 포도 과수원 하시는데... 하여튼 좋은 일 하시니 고맙습니다"라며 되레 우리더러 인사를 하는게 아닌가.

'아하, 그랬구나.... 이 분의 어머님도 멀지 않은 농촌에서 농사를 짓고 계시니 시골의 사정을 알고는 자신의 쉬는 시간을 선뜻 쪼개 할머니의 전기를 고치러 달려와 준거로구나...'
이런 생각에 마음이 한결 행복해옴을 느꼈다.
전파사 아저씨는 할머니와 우리에게 자신의 전파사 명함을 건네며 "여기는 시골이라 전파사도 없으니까 전기에 문제가 생기면 대책이 없을겁니다. 혹시 다른 노인 댁에 가셔서 이런 일이 생기면 전화 주세요, 언제라도 연락 주시면 무료로 도와드릴께요"라며 총총히 떠나셨다. 

쉬는 날, 그 먼데를 자동차 기름 소모하면서 한걸음에 달려와 짜증도 안내고 수리를 해준 뒤 비용은  받지도 않고 돌아간 그분.  나중에 문제 생기면 또 도와 드리겠다며 연락처까지 두고 떠난 그 아저씨가 그날 할머니를 찾아간 우리보다 몇곱절 아름다운 진정한 사랑의 실천자였다. 우리같은 가람들이야 그런거 만질줄 아는 재주도 없는데 시골에 찾아다니며 이런 기술과 장비를 갖은 전문가를 사귀었으니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정말  생각잖은 소득이었다.

그동안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암흑과 열이 끊어진 차가운 방에서 홀로 지내시던 할머니 역시, 어둠을 밝히는 전깃불과 방을 따스히 데울 전기장판의 열기보다 훨씬 더 환하고 뜨거운 사람의 냄새를 맡으셨다.  할머니를 돕고자 갔다가 오히려 더 행복한 경험을 한 우리는 그날, 우리 주변의 소중하지만 잘 보이지 않는 영웅을 만나고 돌아왔다.

 

연관 뉴스


추천 0
프린트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icon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