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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중년세대들에게 첫사랑이란?
그 순수했던 아릿한 추억을 떠올리며...
2012-11-02 10:04:26최종 업데이트 : 2012-11-02 10:04:26 작성자 : 시민기자   남준희

흔히들 '국민여동생'이라고 칭하는 걸그룹 미스에이의 수지양이 출연한 영화 '건축학개론'이라는게 있었다. 
이 영화가 처음 나왔을때는 큰 관심이 없었는데, 최근에 우연히 아이들 영화를 빌려주기 위해 DVD 숍에 갔다가 그게 눈에 띄어 한번 볼 생각으로 대여해 왔다.

주말에 혼자 느긋하게 영화를 시청해 보니, 참 재미있고 공감 가는 부분도 많았다. 특히 영화의 설정 자체가 우리 나이 세대의 80년대 시절과 비슷해서(영화는 내 나이 또래보다 약간 더 젊은 세대들에게 맞기는 했지만) 내가 직접 당시 대학 캠퍼스에서 겪고 웃고 즐기며 고민하고 사랑했던 그 무엇같은 느낌이랄까.

그런데 다른 영화팬들이야 잘 모르겠지만, 나는 그 영화가 특별히 더 끌린 이유가 있었다. 표현하기 약간 쑥스럽지만, 그리고 이 영화의 내용 구성과는 약간 다르지만 첫사랑이라는 부분에서 너무나 큰 공감대가 있는 추억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일이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그 당시의 기억이 떠올라 혼자서 한동안 많은 생각에 잠기게 했다.

지금의 중년세대들에게 첫사랑이란?_1
지금의 중년세대들에게 첫사랑이란?_1

대학시절,  학보사 기자를 하던 2학년때 우리 대학 문학상 대상을 받은 여학생을 인터뷰 하게 되었다. 취재 노트를 들고 인터뷰를 하기 위해 그 여학생이 다니는 문과대학으로 달려갔는데... 머리 색깔만 검정인 올리비아 핫세가 거기 앉아 있었다. 지적인 외모에 온화한 이미지, 뽀얀 볼살, 말수도 적고 다소곳한 그녀. 

인터뷰 내내 뭘 묻고 무슨 대답을 들었는지 정신이 없었고 온통 혼미했다. 정말 이슬만 먹을것 같고, 화장실은 다른 사람 시켜서 보낼것만 같은 그런 분위기였다. 
'내 너와 반드시 연애하고야 말리라'
그날 이후 '작업'에 들어가 열심히 공을 들였다.  인터뷰를 빌미로 캠퍼스 벤치에서, 시내 찻집에서, 그리고 때로는 주점에서 만나는 동안 그녀도 적극적으로 대쉬하는 내게 관심을 보였다.

그렇게 석달쯤 열심히 진도를 나갔다. 사실 요즘 젊은이들이야 만난지 하룻만에, 아니 만난 당일날 키스도 한다지만 그때는 만나고 몇 달이 지나도록 손 잡는 일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만큼 순수했다.
그런데, 열심히 연애를 하던 석달만에 군 입대 영장이 나오고야 말았다. 청천벽력같은 소식에 속수무책...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들었던 우리는 서럽게 '입영전야'를 부르며 헤어져야만 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했던가. 기껏 석달 만난 나를 그녀가 기다려 주기를 바란게 무리였다. 입대후 얼마 안돼 면회 온 친구의 말은 나를 절망시켜버렸다. 그녀가 벌써 신발 갈아 신었다는...
"잊어라. 시간이 해결해 줄꺼다."
면회를 마치고 돌아가던 친구가 내게 마지막 남긴 말은 정말이지 절망 그 잧였다. 지금도 생각해 보면 당시에 탈영하고 싶은 생각을 한두번 한게 아니었다. 만약 그때 그랬다면 나는 지금쯤...

그리고, 길고 긴 군 복무생활을 마치고 제대후 복학했지만 이미 졸업한 그녀는 찾을수 없었고 캠퍼스는 쓸쓸하고 우울했다. 쓴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어느덧 졸업, 취직, 결혼, 아이 낳고 집 사고 중년이 되어.... 보통의 남성들처럼 열심히 살던 몇 년전. 
당시에 우리는 인천에 살고 있었는데, 그때 아내 대신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의 운동회에 참석해 별 생각없이 '어머니 계주'를 바라보던 나는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뽀얀 피부, 헤어만 생머리가 아닌 파마.... 앗, 그녀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맞나? 정말 그녀가 맞다.  뿔테 안경만 검정색 썬그라스로 바뀌어 있었다.  심장이 멎을것만 같았다. 순간 그녀가 나를 알아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슬그머니 몸을 숨긴채 바라봤다. 
뜀박질 같은건 사람 구해서 시킬것만 같았던 그녀가 아줌마로 변신해 야생마처럼 달렸다.  그런데 1등으로 골인한 그녀는 상품으로 걸린 식기셋트를 낚아채듯 받아들고는 응원석 쪽을 향해 의기양양하게 소리까지 질렀다. "아자!"

헉, 깼다. 괴성을 지르는 그녀는 과거의 '분위기 있는 여인'이 아니었다. 거기다가 몸매는 뱃살이 출렁이는 완전 아줌마로 변해 있었다. 개선장군처럼 들어가는 그녀를 보고 응원석에서 누군가가 "OO엄마 홧팅"을 외친다.
놀라움과 궁금증을 억누르며 집으로 돌아온 나는 우리 아이더러 OO를 아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아이의 첫 마디가 "맨날 지각하는 애?. 걔 엄마는 학교 와서 잘난체 무지하거든. 왈가닥 같애! 걔 엄마 모르면 간첩이야. 짱나!" 

잘난체? 왈가닥? 짱나? 신사임당 같이 다소곳하던 그녀가?
"임마! 어른한테 그런말 쓰면 못써" 
아이를 꾸짖으며 옛날 생각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 후 3년만에 우리는 수원으로 이사를 왔는데 당시에 그녀를 한번 직접 만나 보고도 싶었지만, 왠지 자존심도 허락하지 않았고, 괜히 옳지 않은(?) 일인듯 해서 참고 말았다.
역시 첫사랑은 첫사랑으로 끝나고 말 일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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