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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비와 러브호텔 가자고 하지 말어
2012-11-02 16:20:22최종 업데이트 : 2012-11-02 16:20:22 작성자 : 시민기자   오새리

며느리를 친딸보다 더 아껴 주시는 시부모님, 부모형제간 우애가 꽃보다 아름다운 우리 시댁이다.  그 행복한 가정에서 내가 지난주에 자그마한 사고(?)를 쳐서 온 가족이 한바탕 배꼽을 쥐고 웃은 일이 있다. 
가족 모두 강원도 설악산 자락 밑에 있는 한화콘도의 '워터피아'에 휴양을 떠나기로 했다. 매일 일만 하지 말고, 만추에 울긋불긋 물든 단풍도 봐가면서 살자시는 시아버님의 말씀에 우리 가족이 두분을 모시고 강원도 설악으로 가기로 했다.

설악 한화콘도 워터피아는 아주 오래전에도 한번 가본적이 있는데 지금은 가물가물 하다. 워낙 오래전 일이라. 
출발 당일이었던 토요일, 남편은 마침 회사에 일이 있었고, 무릎 수술후 최근에 퇴원하셔서 지금은 관리 통원 치료중이신 어머님은 마침 그날 정기검진이 잡혀 있기에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늦게 출발하기로 했다.

그 대신 나는 조금 일찍 출발하기로 했다. 아버님께서  콘도 근처에 사시는 친구분을 만나기로 하셨기에 미리 아버님을 모시고 먼저 떠나게 됐다.  
승용차 네비게이션에 '워터피아'를 입력했다. 
' 자~ 네비게이션이 안내하는대로 고~고...'

시애비와 러브호텔 가자고 하지 말어 _1
시애비와 러브호텔 가자고 하지 말어 _1

승용차가 도시를 벗어나 고속도로를 달릴때쯤에야 비로소 여행의 기분이 나기 시작했다. 절로 콧노래도 나오고 오랜만의 휴식의 기분이 느껴졌다. 맞벌이 한다며 쫓겨 다니기 몇 년째. 아이들 뒤치다꺼리 하랴, 시댁 챙기랴, 친정도 챙기랴, 회사 일하랴, 집장만 하느라 저축하고 이자내랴.... 

정말 정신이 없었는데 오랫만에 밖으로 나오니 그동안의 피로가 싹 가시는듯 했다.  
뒷좌석에 타신 아버님은 코까지 곯으시며 이미 깊은 꿈나라로 떠나셨다. 라디오를 들으며 캔커피 한모금 살짝.... 단풍을 맞이하러 동해로 가는 여행길은 환상적이었다.

차가 네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4시간정도를 달리자 목적지에 거의 다다른듯 했다. 네비게이션을 보니 도착 2분전 이었다.
"어? 그런데 차창 밖을 아무리 봐도 근처에 콘도라고 할만한 큰 건물이 안보였다. '이상하다?' 앞에 보이는 5층짜리 이상한 건물 하나 말고는...  저건 분명 콘도는 아닌데....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계속 갔더니 네비게이션 안내 멘트 왈 "목적지에 도착하였습니다. 안내를 종료합니다."라는게 아닌가. 그 순간 뒷좌석에서 낮잠을 깊게 즐기시던 아버님이 막 잠에서 깨셨다. 
"아가야, 다 왔냐? 어... 엉? 그런데 여기 맞냐? 좀 이상하다?"
 잠결에 차창 밖을 휘휘 둘러 보시며 여기가 맞냐고 하시는 아버님의 목소리와 함께 네비게이션이 안내해준 내 앞에 나타난 '목적지' 건물. 거기에 대문짝 만하게 씌여져 있는 글씨가 그제서야 보였는데...?

"워터피아....텔? 어마맛...!"
러브호텔이었다. 정문에는 "물침대 다량 구비, 특수 진동 의자 완비"라는 시뻘건 글씨까지...
'에그머니나, 시아버님이랑 러브호텔에 와버렸네'라며 갑자기 정신 없이 핸들을 돌리며 우왕좌왕 하는 순간 "무슨 콘도가 이렇게 작어?" 라는 아버님의 말씀이 들렸다. 얼굴이 홍당무가 돼 후끈후끈, 부릉~부릉... 차를 어떻게 돌려서 빠져 나왔는지 몰랐다. 

네비게이션에 '워터피아'까지 입력하자 여러 가지 메뉴가 떴는데 그중 실수로 워터피아텔을 선택해 출발한 것이다. 그것도 묘하게 이곳 강원도 근처까지는 맞아 떨어졌으니...
일단 사태를 수습하고 다시 진짜 워터피아를 찾아 들어간 후 나는 저녁식사를 준비했다. 3시간쯤 후 남편이 어머님을 모시고 도착했다. 

친구분을 만나러 가셨던 아버님은 밤 9시가 조금 넘어 돌아오셨다. 
온 식구가 모여앉은 가운데 아버님이 빙그레 웃으시며 하시는 말씀 "며느리가 애 키우랴, 직장 다니랴, 수술한 시어머니 챙기랴 정신이 없는것 같구나. 오죽하면 콘도를 못찾아서 모텔로 차를 몰고 갔겠냐"하시며 웃으셨다. 

나는 얼굴이 빨개졌고 시어머님과 남편은 아버님의 설명을 듣고 박장대소를 했다. 그리고 잠시후 아버님이 우리에게 뭔가 하나 내주셨다. 통장이었다.
"3000만원이다. 아파트 중도금 내는데 보태 쓰거라"
히익.... 3000만원이나? 눈물이 쏙 빠졌다. 직장 다닌다며 별로 해드린것도 없고 자주 찾아뵙지도 못했는데.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너무 당황스러워 감사의 인사도 못드린채 어리둥절 하고 있는데  아버님 하시는 말씀.
"이걸루 입막음 했으니까 이젠 시애비 데리고 러브호텔 가자고 하지 말어... 하하핫"
 아버님의 농담에 다같이 박수를 치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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