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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잔불 켜고 기다리시는 할머니 품 같은 고향
추석 명절 3주가 지난 지금, 다시 생각해 보는 고향
2012-10-18 12:11:00최종 업데이트 : 2012-10-18 12:11:00 작성자 : 시민기자   장영환

추석을 쇠고 온지 3주일이 다 돼 간다. 들뜬 마음으로 고향에 찾아가 부모님을 뵙고 온 많은 도시인들. 그리고 명절이기에 도회지에 나가서 사는 자식들이 고향에 돌아오는 것을 기쁜 마음으로 반기셨던 부모님들. 
모두 다 3일간의 흥분된 마음 가라앉히고 이제는 각자 자기의 자리로 돌아가 일상을 살면서 다시 생업의 현장에서 뛰고 있을 것이다.

현제명의 가곡'고향생각'의 2절 가사 내용을 기억하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2절은 1절보다 훨씬 시적이고 고향을 생각하는 마음이 더 절절하게 전달되기에 나는 그것을 항상 와우고 다닌다.
"고향하늘 쳐다보니 / 별떨기만 반짝거려 / 마음 없는 별을 보고 / 말 전해 무엇 하랴 / 저 달도 서 쪽산을 / 다 넘어 가건만 / 단 잠 못 이뤄 애를 쓰니 / 이 밤을 어찌해."

 

등잔불 켜고 기다리시는 할머니 품 같은 고향_1
등잔불 켜고 기다리시는 할머니 품 같은 고향_1

지난 추석,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어김없이 고향집을 다녀왔다. 고향이라 해도 명절이 아닌 때에도 늘 다녀오는 곳이고, 추석 전에도 벌초를 하러 다녀왔기에 더 특별할것도 없는 일이겠거니 하지만, 그래도 명절날 고향에 내려가는 기분은 다른 때와는 영 다르다. 그 설레임과 기쁨의 느낌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마도 명절을 맞춰 친지와 어릴 적 친구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으리라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명절에는 그리운 친구들을 한 사람도 만날 수 없었다. 친척들도 마찬가지였다. 제각각의 일에 쫓겨 한 자리에 앉아 명절 소담을 나눌 여유가 없었던가 보다. 개인적인 이유가 되겠지만 유년의 기억이 묻힌 고향마을이 농공단지가 들어서면서 개발로 철거가 되고 이웃이 모두 뿔뿔이 흩어지다 보니 골목길에서 고향 찾은 친구들을 만날 수 없었던 것에도 이유가 있다.

고향 마을 회관에 그나마 우리 나이 또래의 몇몇이 둘러 앉아 누군가가 주전자에 담아 온 고향의 동동주를 나누며 화포를 풀던 추석 전날.
그때 불쑥 고향에서 농사 지으며 발 붙이고 사는 마을 형님이 한마디 하셨다.
 "추석이나 설날 같은 명절에는 고향 사람들이 너도나도 내려 오는걸 보면 가분이 참 좋른데... 요즘 명절때 사람들이 내려 오는게 어째 예전같지 않어. 자꾸만 줄어드니까. 이러다가 추석하고 설 명절이 우리 아이들 세대에까지 이어질까? 그런 걱정이 드네"

아, 이게 고향 형님만의 생각일까? 
의례적 차례와 고향방문, 차례상 음복이 끝나면 주섬주섬 솔가해서 떠나는 가족들을 보면서 고향의 어르신들, 고향을 지키며 사는 많은 분들의 한결같은 걱정거라였던 것이다.
그래, 우리야 나중에 늙어서 죽고 사라졌다 하자. 그런 다음에 정말 우리 아이들 세대때는 당연히 부모가 묻혀 있는 고향에 그래도 어쩌다 한번씩 가겠지만, 그 다음 세대 아이들은 할아버지에게 얼마나 찾아갈까. 

또한 그 다음 세대의 아이들은 얼굴도 모르는 증조부를 위해 그 먼 시골에 내려갈까? 결국 그러다가 우리의 고향은 잊혀지고, 설과 추석 역시 고향에서 보내던 풍류는 사러진채 그저 떡집에더 맡긴 송편 몇 개 갖다 놓은 도시의 아파트에서 비디오 영화나 보면서 3일 쉬는게 전부인 명절로 바뀌지나 않을런지.

걱정으로만 그칠 것이 아니라 21세기 안에 이 미풍양속은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결국 사이버 차례나 성묘가 성행하고 고향의 의미는 퇴색될 것이다. 모든 이의 고향은 '○○산부인과'가 될 것이며 현재의 주소지가 고향이 될 것이다.
깊은 밤 고향쪽 하늘을 바라보며 별들을 헤아리는 정서를 후세는 이해할까. 고향의 당산나무와 연날리기 하는 언덕배기를 경험할 수 있을까. 오두막이 사라지고 다세대 주택이나 빌딩이 섰고 고삿길이 지워진 채 넓은 아스팔트가 깔린 부모의 고향을 두고 과연 고향이라고 여길까.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누구에게나 고향은 있는 법이다. 더구나 타관객지를 떠돌며 뿌리를 내린 사람에게 자신의 살을 키우고 뼈를 자라게 한 원형질인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떨치기 힘든 감정이다.
'고향 까마귀만 만나도 반갑다'는 말이 어찌 세월의 흐름에 희석될 수 있을까. 대처에서 저자를 떠돌다가 고향사람을 만나면 덮어놓고 선술집으로 손목을 끌고 가는 정서를 부인하자고 들자면 정겨운 한민족의 피가 몸속에 흐르고 있음을 부인하는 것과도 같을 것이다.

고향은 늘 마음속에서 존재하지만 문득 다가가면 내 손에 잡히는 정겨운 친구이고 아늑한 어머니의 품이다. 
흔적이 지워지고 일그러졌다 하더라도 그곳에는 늘 등잔불 켜고 손자를 기다리는 할머니와 같은 고향이 있다. 
추석 연휴를 끝내고 생업에 복귀하여 3주가 지난 지금. 나는 고향의 냄새를 몸에 묻혀 삶의 현장에 돌아왔지만 그 형상은 말쑥하다.  마음속 가득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여전히 남아있다.  우리 아이들과 더 먼 후손들에게도 고향은 늘 같은 존재로 살아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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