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소풍의 설렘과 추억
요즘 아이들은 그런 기다림조차 없는듯
2012-10-18 15:56:14최종 업데이트 : 2012-10-18 15:56:14 작성자 : 시민기자   임윤빈
아이 방을 청소하다가 방 바닥에 떨어진 프린트물 하나를 발견했다. 다름 아닌 가을소풍 계획을 학부모들에게 알리는 안내문이었다. 
학교에서 아이에게 나눠준 것이며 아이는 응당 이 안내문을 부모에게 전해주고 그 사실을 알려주어야 하는데 이녀석은 뭐가 그리 급했는지 이걸 내게 줄 생각도 안하고 말조차도 없었다.

저녁에 돌아온 아이에게 소풍가는 것을 알고 있냐고 하자 그제서야 깜빡 했다며 그 안내문을 찾는 시늉을 했다. 
이미 방바닥에서 주워서 보았노라며 준비물이나 장소 등을 물었더니 대충 이야기를 하는 폼이 소풍에 대해서 그다지 큰 기대를 안하는 표정이었다.

"뭐, 애버랜드 가나봐요. 김밥 싸주세요"
이게 다였다.
소풍이 놀러 가는거라면 놀러 가는 것이기도 하지만 교육 목적상 소풍이라면 그냥 놀러 가는게 아닌데... 학교 교실에만 앉아 있다가 밖으로 나가서 산도 보고 들도 보며 친구와 더 많은 대화도 나누고 지연도 벗하는 시간 아닌가.

 
소풍의 설렘과 추억_1
소풍의 설렘과 추억_1

굳이 따진자면 공부에 지친 제녀석들 머리도 식혀 주는 시간인데. 우리 아이는 무척 시큰둥 하다. 다른 애들도 그럴까?  혹시 그러는 이유가 집에서 차라리 컴퓨터 게임이나 하는게 더 좋을것 같다는 생각들을 하고 있어서 그런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미치자 안타까운 마음만 들었다. 

우리가 학교 다니던 그 시절에는 어땠나. 그 시절의 봄 가을 소풍은 정말 너무나 기다리고 기다리던 이벤트였다. 기껏해야 깍두기와 김치 쪼가리만 싸 들고 가던 소풍이었어도 며칠 전부터 잠도 못 자고 기다리던 소풍이었건만,
지금 아이들이야 버스 타고 열차 타고, 그리고 비행기 타고 제주도로 중국 등지의 해외로 소풍을 간다. 그렇지만 우리 어릴때는 비행기는 책에서나 보는 '외계인의 물건'이었고 열차나 버스도 언감생심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가을, 생각만 해도 바보스럽고 죄송했던 소풍 추억이 있다. 외손녀를 끔직히도 아껴주셨던 외할머니께 너무나 잘못한 가을소풍의 기억. 지금도 가을 소풍철만 되면 웃음과 함께 나의 철없는 부끄러움에 얼굴부터 붉어진다. 
그때 소풍은 산이나 들로 물 맑고 경치 좋고 그늘이 있는 곳이라면 최고였다. 시골에 살던 초등학교 가을 소풍때, 우리는 신나는 노래를 부르며 학교 근처 산골짜기 목적지로 향했다. 

전교생이래야 150명밖에 안되는 초미니 시골학교. 우리는 먼지가 풀풀 날리는 신작로를 지나 가을 단충이 울긋불긋 물들어 가는 산 골짜기로 들어갔다. 나도 짝꿍이랑 손잡고 노래 부르며 잠시후 까 먹을 도시락을 떠올리며 기분 좋게 걸어 갔다. 하천이 넓고 깨끗한 곳이었다.

점심을 먹고 친구들이랑 이런저런 구경을 하는데, 친구 하나가 너희 외할머님 댁이 저 집이 아니냐고 했다. 얼핏 보니 저만치 외할머님이 보였다. 그 친구는 언젠가 우리 외할머니댁 근처에 살다가 이사를 온 아이였다. 
하지만 난 아니라고 우겼다. 집이 너무 초라하고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아서였다. 노래에나 나올 법한 오막살이집 그 자체였다. 부엌 한 칸에 방 한 칸, 정말로 옹색하기 짝이 없었다. 외할머님이 밖으로 나오시는 것 같아 난 얼른 숨어 버렸다. 

그런데 얼마나 지났을까. 보물찾기를 하는데 뒤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좀전에 날더러 외할머니 집이 아니냐고 물어본 친구가 가르키는 사람.... 외할머니가 나를 찾아오신게 아닌가. 손에는 웬 보자기가 들려있었다. 외손녀를 주시기 위해 홍시를 싸 들고 오신 외할머니...
그런데 나는 순간적으로 "왜 오셨어요? 나 홍시 안먹는단 말야..."라고 소리치고 말았다. 친구들한테 초라한 외할머니의 모습을 보이는게 너무나 싫어서였기 때문이었다. 너무나 놀랜 외할머니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신채, 그리고 너무 놀래셨는지 한동안 서 계시다가 홍시 보자기를 바닥에 놔두시고 돌아가셨다.

지금 생각하면 외할머님만큼 인자하시고 정이 많으신 분이 또 어디 계실까 싶다. 외할아버지께서는 긴 흰 수염에 기다란 곰방대를 항상 물고 계셨고 외할머니는 언제나 웃음이 많으신 분이셨는데... 철이 늦게 든 탓에 때늦은 후회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리고 외할머니는 내가 고등학교때 돌아가셨다.
"외할머니 정말 죄송합니다. 철없는 외손녀가 마음속 깊이 용서를 빕니다. 그때 싸가지고 오셨던 홍시, 지금은 제 마음속으로 정말 맛있게 먹고 있답니다"
뒤늦게 철이 든 나는 늘 이렇게 되뇌이며 외할머니와 가을 소풍을 추억한다.

요즘 아이들은 가난도 모르고 부족한 것도 잘 모르니 소풍때 우리가 김치 깍두기만 싸 가도 행복했던 것을 잘 모른다. 그런 아이들의 가슴이 더 삭막해지기 전에, 그래도 소중했고 소풍 몇주전부터 가슴 설레던 추억을 이야기를 더 해주어야겠다.

연관 뉴스


추천 0
프린트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icon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