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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바꼭질 중 장독대 깨트렸던 동무들 지금은 어디
2012-10-08 17:18:32최종 업데이트 : 2012-10-08 17:18:32 작성자 : 시민기자   이기현
지난번 추석때 고향에 갔을때 가장 먼저 반가웠던 것은 장독대였다. 도시에서는 볼래야 볼수 없는 장독대.
고향집 뒷 마당 햇살 바른 곳에는 어김없이 장독대가 있었다. 감나무 두 그루가 장독대를 지키고 있는 풍경은 지금도 명료하게 나의 기억에 남아있다. 
또 장독대를 경계 지은 호박넝쿨과 주변에서 파릇파릇 자라던 들풀들. 언제 보아도 정감이 넘치다 못해 행복한 눈물마저 흘리게 하는 사랑스런 풍경들이다.

시골의 어느 집이든 가장 볕 좋고 바람 잘 통하는 곳은 마당이 아니라 장독대였다. 도시의 집들은 어떻게 했는지 모르지만 앞뒤로 터가 넒은 시골집들은 대부분 장독대를 마당 쪽보다는 뒤켠에 두었다.
그곳이 편하기 때문이다. 밥을 짓던 중 마당에 나가 장을 퍼오는 것이 아니라 부엌 뒤문을 열고 나가 장을 퍼온다.
거기에는 집집마다 몇 개의 간장 항아리와 고추장 단지, 또 된장과 장아찌 단지가 놓여 있었다.

숨바꼭질 중 장독대 깨트렸던 동무들 지금은 어디_1
숨바꼭질 중 장독대 깨트렸던 동무들 지금은 어디_1

몸집이 가장 큰 게 간장 항아리였다. 뚜껑을 열면 까만 간장 위에 까만 숯덩이 몇 개가 떠있었다.
도 어떤 단지는 장맛 부정 타지 말라고 왼쪽으로 꼰 새끼에 솔가지를 끼운 금줄을 쳐놓기도 했다. 장독대 옆과 뒤엔 감나무든 앵두나무든 혹은 자두나무 같은게 심어져 있었다.
그리고 앞쪽엔 그 집의 어린 여자 아이가 자기 손에 물을 들이려고 심어놓은 봉숭아가 나란히 줄지어 서 있었다.

전에 언젠가 우리집 장독대 얘기를 하니까 사람들 모두 자기집 장독대가 바로 그런 모습이었다고 했다. 장독대 주변에 심은 나무와 꽃들만 조금씩 달랐다.
우리는 저마다 장소만 다르지 똑같은 장독대 뒤에 숨어 숨바꼭질을 하거나 해바라기를 하며 자랐던 것이다.

고향의 우리집 장독대에는 큰 키의 옹기 서너 개와 중간 크기의 옹기 대여섯 개, 그리고 사이사이 올망졸망한 작은 옹기 열댓 개가 놓여있었다. 그 속에는 각각의 발효식품이 담겨있었고 관리책임자는 당연히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키가 가장 큰 옹기에서 된장을 한 주걱 퍼내기도 했고, 먹빛 간장 두세 국자를 떠내기도 했다. 그 때마다 어머니의 정성은 예사롭지 않았다. 옹기의 뚜껑을 열고 닫을 때 반드시 고의춤에서 마른 행주를 꺼내 조심스럽고 꼼꼼하게 닦아냈다.

언젠가 어린 내가 키보다 큰 옹기의 속을 들여다본 적이 있었다. 깊고 우묵한 옹기 안에는 먹빛 간장이 가득 고여 있었고 그 위에 메주 한 덩어리와 숯 서너 조각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또, 된장독 안에는 풋고추가 가지런하게 박혀 있었고 그것들은 여름부터 가을까지 소박하고 가난한 밥상에 꼭 올라왔다.
'된장에 풋고추 궁합'이라는 말의 깊은 의미를 그 때는 몰랐지만 장성해서 식당의 밑반찬으로 된장에 버무려진 풋고추가 나올 때 드디어 알았고, 아울러 어머니의 깊고 융숭한 음식솜씨를 그리워하게 되었다.

나이 들어 도시 생황을 하면서 늘 헛헛한 허기를 느낀 것은 모두 어머니의 손맛을 떠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산해진미 고급 레스토랑을 찾아도 어머니의 음식맛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심지어 아내가 정성을 다해 차려낸 특식에서도 결정적인 하나가 빠졌다. 나는 여전히 그것은 어머니의 손맛이라고 확신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우리 어머니나 외할머니, 큰어머니의 음식맛이 대동소이했다. 물론 대를 이어 물려받았거나 집안의 관습에 의해 음식맛이 정해지는 것이라고 발할 수도 있지만, 조금 더 세밀하게 생각하면 된장과 간장, 고추장이라는 기본양념의 영향으로 음식맛이 결정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머니는 시집오기 전에 외할머니로부터 양념 제조법을 익혔을 것이고 시집와서는 큰어머니가 시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가풍을 학습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 내 혀에 익어있는 미각은 양념맛이다.
그것들은 모두 옹기에 담겨 곰삭았다. 햇살이 따사롭거나 비가오고, 바람이 불면 옹기는 온몸으로 숨을 쉬며 자신의 몸에 담긴 음식을 삭혔다.

그리고 가족의 밥상에 올라 건강과 구미를 책임졌다. 제조법에 따라 맛의 차이는 가가호호 달랐겠지만 근본적인 음식공학의 이치는 같았다. 우리 전통음식의 맛을 결정짓는 양념을 숙성시키고 저장하는 용기인 옹기가 사라진 것은 근대화 이후 생활의 방식이 바뀌면서다. 개선인지 개악인지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오늘날 전통 양념은 대형 할인마트에서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 팔린다. 대규모 제조공장에서 기계식으로 만든 양념은 일정한 용량으로 덜어져 전국의 가정에 배달된다. 그러니 요즘 사람들의 입맛이란 하나같이 이런 기계적인 양념에 길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그에 반해 시민기자처럼 농촌에서 자라서 항상 농촌의 옹기에서 만들어진 기본 장류인 간장 고추장 된장 맛의 풍류를 아는 사람들은 도시생활을 해도 그 맛을 잊지 못해 옹기의 중요성을 안다.
세월은 흘러도 아름다운 것은 그렇게 여전하다. 그냥 보고만 있어도 배부르던 장독대.
장독, 장독대, 오가리, 항아리, 장 단지, 도가지에 시루가 엎어져 있던 풍경. 싱건지, 나박김치, 배추지, 고등어, 갈치, 배추 실가리, 무장아찌, 오이장아찌와 된장엔 고추와 들깻잎을 박아두었다. 그게 다였다.

그리고 숨바꼭질 하다가 덮개를 깨트렸던 동무들은 지금 어디서 살고 있을까.
문득, 뜬금없이 그림자처럼 머문 자리, 마음이 짜게 절여진 지난날에 어머니의 정겨운 맛들이 아직 그대로 혀끝에 그대로 남아 나를 행복하게 해 주는데, 장독대 뒤에서 덮개를 깨고 달아난 친구도 어머니 장맛 만큼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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