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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든 여성에게 필요한 것
2012-10-19 13:34:43최종 업데이트 : 2012-10-19 13:34:43 작성자 : 시민기자   김성희

점심시간에 식당에 앉아 밥을 먹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 등산을 다녀오는 듯한 아주머니들의 대화가 좀 크게 들렸다.
우리 같은 서민들이야 조금이라도 벌어서 가정 꾸리려고 직장에 다니느라 정신 없이 바쁘지만, 보통 평일 날, 등산복 입고 한가하게 산을 다니실 정도의 여유가 있으신 중년 주부들인듯 하여 그런 분들은 이렇게 만나면 무슨 대화를 할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그 주부들의 대화에 귀를 쫑긋 하고 엿듣게 됐다. 
그분들 말씀중에 가슴에 콕 와 닿는게 있었다.
"여자는 나이를 먹을 수록 3가지가 있어야 한다니까. 딸, 친구, 돈 말야"
한 아줌마가 한 그 이야기가 재미 있었다. 집안에서 필요 없는 거 하나만 밖에 내다 놓으라면 바로 남편이고, 이사 갈때 떼놓고 갈까 봐 이삿짐 위에 앉아 있든지 강아지라도 안고 있어야 데려 간다나. 우스개 소리로 넘겨 버리기엔 뭔가 뼈가 있는 말이었다.

듣기에 따라서는 남편들을 너무 비하하는 말인듯 해서 나도 속으로 그냥 웃고 말았는데, 중요한건 남편들에 대한 그런 말이 아니었다. 아마도 남편들이 먼저 세상을 뜨신 후의 경우인듯 했다.
서로의 인생에 서로가 있고, 내가 기억하지 못한 부분들에 대해 이야기 듣는 것도 좋고, 친구가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들을 내가 기억해주는 것도 좋고, 각자의 감정을 공유하고, 함께 재잘거리는 그런 느낌의 친구들이 있어서 삶이 더 빛나는 느낌 아닐까. 그래서 일단 그 3가지 중에 친구 부분은 그렇게 정리를 할수 있을듯 했다.
그러면 나머지 돈과 딸은? 당연히 너무나 필요한 부분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식당에서 나왔다.

날짜를 생각해 보니 어느덧 10월 말로 치닫고 있었다.
며칠전 라디오에서 벌써 흘러 나온 이용의'10월의 마지막 밤을...'이라고 읊조리는 "잊혀진 계절" 을 들으며 이제 곧 10월도 다 가겠구나 생각을 했다.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 나를 울려요"
울지 않으면 안될거 같은 기분이 들게 했다. 이 노래를 끝으로 겨울이 올 것이다. 아직 준비도 못했는데, 가을은 그렇게 너무나 빨리 속절없이 가고 있다. 

나이 든 여성에게 필요한 것_1
나이 든 여성에게 필요한 것_1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유난히도 걷기 싫어하는 내가 버스를 한구간 먼저 내렸다. 왠지 걸어주어야만 할 거 같아서.
이대로 집으로 들어가기엔 한없이 아쉬움을 주었고, 뭔가 생각이란걸 해야할거 같았다.
그러나, 마음과는 달리 머릿속은 너무나 막막하기만 했다. 40대 중년 주부의 머릿속은 이렇게 아무런 생각조차 저장할 수 없는 공간이 되어 버린건가?

'돈과 친구와 딸.' 중에 돈과 딸.
돈이야 많으면 좋겠지만 적당히 쓸 만큼만 있으면 되는 일이다. 적당히 라는 말이 좀 모호하기는 하나 자녀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하지 않고 생활해 나갈 수 있고 아플 때 마음 편히 치료를 받을 수 있을 정도가 적당한 수준이 되지 않을까.

딸 부분에서 나는 지금 자라는 내 딸보다, 친정 엄마의 딸로써 내 엄마를 먼저 생각해 본다.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 우리의 어머니들은 자신을 치장하거나 친구를 만나고 사귈만한 시간도 여유도 갖지 못하였다. 남편과 자식의 주변만 맴돌며 살다보니 함께 늙어갈 친구가 없는 것이다.
30~40대에는 아이들의 교육문제며 잡다한 가족 친지들과의 관계에 얽혀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부족하기 마련이다. 또한 살며 어려운 일이 닥쳐도 친구들과는 묘한 자존심에 얽혀 고민을 털어 놓게 되질 않는다. 50대 나이쯤 되고 보면 그제서 살림을 꾸려가는 일에서 한숨을 돌리게 되고 잃어버리고 살아 온 자신의 이름을 되새겨 보게 된다.

하나씩 아이들을 짝지어 분가 시키고 나면 가슴에 밀려드는 허한 바람을 혼자서 이겨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딸! 딸과 어머니와의 관계는 애증의 관계라 했던가. 무조건 순종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어머니를 보며 절대로 어머니처럼 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한두 번씩은 해봤으리라. 출가를 하고 나면 어머니는 마냥 그리운 존재가 된다. 오직 가족을 위해 꾹꾹 참고 사랑하며 살아오신 인고의 세월에 감탄하게 된다. 

그리고는 어느새 어머니와 닮아 있는 내 모습을 보게 된다. 때론 어머니께 모진 소리를 하고 나서는 뒤돌아서기 무섭게 후회의 눈물을 쏟고 그런 딸이 마음 아파할까봐 무한정 품고 달래주는 어머니와 딸의 사이. 그래서 딸은 무조건 어머니의 편이 될 수밖에 없나보다. 
아직 제대로 딸 노릇을 하지 못한 나는 송구스럽기만 하다. 늘 바쁘다는 핑계로 어머니를 향한 안쓰러운 마음만 가지고 살아왔다. 

집에 도착해서 번호키를 누르자 아이들과 남편이 반긴다.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하고 온양 반갑게 뛰어나온 가족들. 우리는 약속이나 한것처럼 번갈아 안아주었다. 우리 남편은 아직 고독해 하는 느낌을 엿볼 수가 없다. 당연하다 해야 할지, 감사하다 해야 할지...
유머처럼 사용되는 나이 든 여성의 준비 조건인'돈과 친구와 딸'이 정말 필수일지 아닐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경제적인 여유는 늘상 만나고 싶은 친구를 아무런 부담없이 만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고, 또한 그 원동력을 바탕으로 자주 만나면 친구 역시 내 주변에 있을 것이고, 딸내미는 언제나 살갑게 옆에 있어주는 또 다른 친구 역할을 해줄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니 이 3가지 모두 필수가 맞는가 싶다. 중년 여성분들, 미리미리 준비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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