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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한기 때면 석탄 캐러 다니신 나의 아버지
2012-10-31 03:00:20최종 업데이트 : 2012-10-31 03:00:20 작성자 : 시민기자   김윤남
지금도 도시의 골목길은 물론이고, 논촌이나 지방 변두리에서는 많이 쓰는 연탄.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 연탄이 별나라 이야기일수 있으나 과거에 연탄의 원재료인 석탄은 검은 진주로 불렸다 한다. 도시의 모든 가가호호를 따뜻하게 데워주는 소중한 연료였고, 학교 난로를 벌겋게 데워 학생들의 언 발을 녹여주는 고마운 존재였다. 
물론 지금도 도시가스가 들어가지 않는 지방과 농촌의 난방, 그리고 농촌 비닐하우스에서 자라는 소중한 농작물을 키워주는 역할을 한다. 

농한기 때면 석탄 캐러 다니신 나의 아버지_1
농한기 때면 석탄 캐러 다니신 나의 아버지_1

강원도 사북탄광.
아버지는 농삿꾼이셨지만 이미 7살때부터 지게를 지셨다는 아버지는 젊을때는 사북탄광에서 탄가루를 마셨다고 한다. 
농사만 지어서는 아들 딸들을 전부다 학교에 보내기 어렵다고 생각해서 탄광에 다니신 것이다. 거기서 번 돈은 전부다 자식들 공부 가르치는데 들어간 것이다.

아버지가 봄부터 여름, 가을까지 신명을 바쳐 농사를 지으시고, 늦가을부터 초봄까지 농한기에는 검은 먼지를 뒤집어 쓴채 탄광에서 돈을 벌어 오셨다. 그렇게 학교를 가르킨 결과 오빠와 남동생들은 당신의 기대에 맞게 훌륭한 사회인이 됐다. 

7순이 넘으신 아버지는 지금도 탄광 갱내에서 함께 생사고락을 같이 한 동료 채탄 광부들을 떠올리시며 가끔씩 그때를 회상하신다. 그러면서 당신의 희생 덕분에 아들딸들이 장성한것을 기쁘게, 그리고 자랑으로 여기신다. 
지금도 부모님이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계신 친정에 가면 굴뚝 한켠에는 70년대 아버지가 갱내에서 쓰다가 탄광에서 마지막으로 나오실 때 기념으로 가져오셨다는 채탄 곡괭이가 2자루 있다. 아버지는 그것을 마치 신주단지 모시듯 하신다. 

지난 추석때 시골 집에 가족들이 모두 모였다. 
사랑채 툇마루에 걸터 앉으신 아버지가 그 곡괭이를 가르키며  "저것이 우리 애덜 키운 보물이여. 그때는 가을농사 끝나면 바로 탄광으로 갔지... 거기서 겨울 나고 봄에 와서 다시 농사짓고.... 허.... 그리고 가을 지나면 또 가고..."
"안 힘드셨어요? 옛날에 탄광에서는 죽기도 많이 죽었다는데"
"허, 그게 사람 목심은(목숨) 하늘이 알지. 나야 하늘이 그렇게는 못혀. 키울 애덜이 한둘이 아닝께... 그렇게 10년은 했능갑다...."
".... 그렇게 힘들게 농사지으시고 자식들 잘 키우신 덕분에 자식들 다 잘났잖아요. 모두 대학 다닐때 우골탑 이라는 농담도 많이 들었어요. 호호호"

"도시에서 애덜 키우기 힘들지?  물가가 엄청 비싸다고 하는디..."
"뭘요. 다 그렇게 사는데요."
아버지는 다시 마알간 하늘을 보신다.  아버지의 깊은 숨에는 말씀으로 다 못할 고생과, 추억, 그리고 농촌에서 뼛속 깊이 스민 평생 농민의 애환, 뭐 그런것들이 진하게 배어나오는듯 했다.

그리고 당신의 얼굴 한쪽에선 가난한 살림 탓에 딸내미 시집 갈 때 제대로 챙겨 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이 가득하신채, 그 어딘지 모를 죄스러움을 털어버리지 못한채 한숨 가득히 무언가를 쏟아 내신다.
하지만 당신의 희생으로 당신의 모든 자식들이 훌륭하게 장성한 것만으로도 아버지, 당신은 우리 가정의 가장 소중한 아버지세요....라고 늘 외쳐드리고 싶다.  
"아버지, 당신은 누구보다 자랑스런 이땅의 아버지시고, 저는 늘 감사한 마음으로 사는 딸이예요.  건강하시고 오래 사세요." 이렇게. 
그래서 해마다 가을걷이가 거의 끝나 가는 이 만추에는, 어릴적 보았던 당신이 멀리 강원도로 떠나던 뒷모습이 기억나 눈시울이 적셔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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