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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체험학습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전쟁 기념관'에서 평화통일을 꿈꾸다
2012-10-31 08:23:21최종 업데이트 : 2012-10-31 08:23:21 작성자 : 시민기자   이소영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으면서 달라지는 것들이 있다. 키도 크고 용모도 변하고 취향도 변하고 그 분야는 아주 다양한데, 나 같은 경우는 기본적인 성향 이라든지 외모는 크게 변한 것은 없는데 '관심사'가 변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점점 더 내가 좋아하는 분야가 확장되면서도 명확해졌다고 표현할 수 있겠다. 

내가 달라진 것 중 대표적인 하나를 꼽자면 '체험 학습'(책에서나 수업 시간에 배운 지식을 실제 현장에서 직접 경험해 보는 공부 방법이다.) 들이 좋아진 것이다. 어릴 적에 갔던 체험 학습들은 누군가의 지시나 강요에 의해서 내 의지에 의해 갔던 것이 아니라 싫었던 것일지도 모르겠으나, 태생적으로 별로 안 좋아했던 것은 분명하다. 
하다못해 가족끼리 국립중앙박물관에 들렀다가 한강 유람선 체험을 갔던 어린 시절 사진 속 나를 보면 입은 삐쭉 나와서 당장이라도 집에 가지 않으면, 폭발 직전의 표정을 하고 있다. 

그랬던 내가 커서야 체험 학습이 좋아진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고 발품 팔아 이 곳 저 곳 돌아다니다보니,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이 더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변한 것 같다. 
그러다보니 남자친구와의 데이트도 당연 카페에 하루 종일 앉아서 대화를 나누는 정적인 것보다는 돌아다니며 서로 느낀 감정을 공유하는 동적인 것을 선호한다. 

이번 주말에는 '전쟁 기념관'에 다녀왔다. 몇 년 전에 갔던 '서대문 형무소'와 똑같은 곳인지 알았는데 알고 보니 무식한 지식이었다. 1994년에 만든 전쟁 기념관은 용산의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었고,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 12번 출구로 나와서 5분 정도 걸으니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리는 들어가는 길목에서 남자끼리 서로 부둥키며 안고 있는 조형물을 볼 수 있었다. 저게 무엇인지 아냐는 남자친구의 질문에 나는 무조건반사적으로 모른다고 답했고, 설명을 들은 끝에 형제가 남북한으로 나누어 서로 총부리를 겨눈 가슴 아픈 모습을 담은 '형제의 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태극기 휘날리며'의 장동건과 원빈이 생각났다. 
'나 중학교 때. 사회 선생님, 국사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는 거 맞나.'

 

점점 체험학습이 좋아지기 시작했다_1
전쟁기념관 '형제의 상'

전쟁의 역사는 외국이나 우리나라나 상관없이 인류가 시작될 때부터 함께했다고 할 수 있다. 1층 전시실에서는 선사 시대부터 삼국 시대까지 전쟁에 쓰인 여러 도구를 볼 수 있었다. 

오천 년 우리 역사에서 절대 지울 수 없는 역사가 있다. 이건 모르면 진짜 간첩이다. 이름 하여 민족상잔의 비극이라 불리는 6.25전쟁. 6.25전쟁실 앞에는 전쟁이 시작된 상황들을 시간순서대로 정리해 볼 수 있었는데 이번에도 남자친구는 설명해주면서 내 머리 속 사라진 기억들을 퍼즐 맞추듯이 도와주는데 한 몫 했다. 

일제 강점기 모습을 볼 때도 엄숙해 지지 않던 나는 6.25 전시실에서 들어서니 저절로 숙연해 질 수 밖에 없었다. 그동안 내가 느꼈던 전쟁은 그날도 그랬지만 '포화 속으로', '고지전', '클래식', '태극기 휘날리며'와 같은 전쟁 영화를 통해서 아니면 할아버지나 할머니를 통해 듣는 것이 전부였다. 내 마음을 찡하게 울린 것은 어머니에게 전쟁 중 보낸 편지였다. 괴뢰군을 10명도 넘게 죽였다는 고백, 그리고 냉수 한 다발을 벌컥벌컥 마시고 싶다는 소원, 어머니를 꼭 보고 싶다는 그 간절한 마음은 과연 이루어졌을까. 

6.25전쟁실을 둘러본 뒤에는 요즘 우리 군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전쟁이 끝난 뒤 얼마나 발전했는지도 알 수 있고, 우리를 도운 연합군처럼 세계 평화를 위해 다른 나라로 간 국군의 모습도 살펴볼 수 있었다.

전쟁기념관을 쭉 돌아보고 밖으로 나왔다. 비가 여전히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전쟁은 휴전이라는 이름하에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이긴 사람도 진 사람도 모두 황폐해 지는 것이 전쟁이다. 6.25전쟁처럼 같은 민족끼리 싸운 전쟁은 더욱 그러하다. 

대학 시절 안보 서평 공모전에 참가한 적이 있다. 아마 그때 확인 했을 것이다. 내 안에 잠들어있던 애국심은. 이후 나는 국방부 장관에게 집요하게 파고들어 수원비행장 이전 추진의 방침을 이끌어냈던 어느 국회의원 사무실에도 직접 찾아갔었다.  

전쟁기념관에 들어가면서는 별 생각을 다했다. '전쟁이 무슨 기념이야. 추모관도 아니고. 어떻게 전쟁을 기념이라고 말할 수 있어.', '이런 장소에서 어떻게 무슨 패션쇼를 해?' (전쟁기념관 전시실 1층에는 서울 패션 위크가 열리고 있다.) 

'딴지걸기 대마왕'이었던 나는 나올 때는 단지 한 마음뿐이었다. 나부터 올바른 안보관을 지니며 전쟁을 치룬 국군들, 더불어 현재 우리 군인들에게도 감사한 마음을 지니며 살자. 그리고 바로 앞에 우뚝하게 묵묵히 자리 잡고 있는 '국방부'를 바라보며 믿고 지지해주자. 이번 현장 학습 체험도 대만족이었다. 역시 공부는 책상 앞에서 백날 천 날 앉아서 하는 것보다 직접 실제 현장에서 경험해 보는 것이 최고다. 

점점 체험학습이 좋아지기 시작했다_2
나로호 발사를 응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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