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어머니의 옥매트와 제주도 여행
2012-10-31 11:38:30최종 업데이트 : 2012-10-31 11:38:30 작성자 : 시민기자   임정화

시어머니께서 요즘 무척 바빠지셨다. 동네 경로당 할머니회 총무를 맡으셨기 때문이다. 그덕분에 전화도 자주 하신다.
"할망구덜 돈을 조금씩 걷는데 고걸 어디에 넣어야 이자가 많이 붙냐?"
"얼마씩 걷으시는데요?"
"많지는 않여. 한달에 2만원"

큭큭큭... 혼자 웃고 말았다. 동네 경로당 할머니래봤자 많아야 10분 안팎이실테고 한달에 2만원이래야 다 합해도 20만원인데 그중에 여기저기 쓰고 남으면 10만원 남짓. 그걸 어디에 넣어야 이자 많이 주는지 그 은행을 알려달라고 하시는 말씀에 젊은것들 생각에 그냥 풀썩 웃음이 나오고야 만 것이다. 
그래도 성의껏 대답을 해 드렸다. 그것이 넣었다 뺐다 하는걸로 두면 이자가 거의 안붙는 꼴이니 증권회사의 CMA통장이라는데에 넣어두면 이자도 붙고 돈도 맘대로 빼서 쓸수 있으니 혹시 담번에 가서 만들어 드리겠다고.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
"에구, 노친네들이 머 그렇게 요구사항이 많냐. 온천 가자, 스파 가자 하더니 요새는 아예 제주도에 여행을 다 가자고 하네"라시며 은근슬쩍 며느리의 눈치를 타진하신다.
"아! 네... 할머님들이 많이 심심하시겠죠, 어디 여행 다녀오세요"
"응. 그려. 그게 돈이 좀 들기는 하겠지만..." 어머님의 목소리에는 여행에 대한 기대감이 가득 차 있는듯 했다.

작년부터 황토 흙침대 바람이 불었다. 우리 젊은것들이야 뭐 그냥 방이 훈훈하면 그만이고, 요즘은 에너지 절약 하기 위해 내복을 입더라도 좀 난방을 덜 올리고 사는 세상이지만 노인들은 사정이 약간 다르시다.
아무래도 방이 추우면 면역력이 약해 감기 같은거라도 심하게 걸리실수 있고 다른 질병 위험도 있는데다가 흙침대라는게 특별한(?) 마법같은 기능이 있는 듯한 느낌이 팍 오니 그거 하나 장만하고 싶어 하는 분위기였다. 

어머니의 옥매트와 제주도 여행_1
어머니의 옥매트와 제주도 여행_1

노인들끼리 매일 모이시다 보니 흙침대네, 바이오네, 미네랄이네, 키토산이네, 비타민이네 하는 등등의 뭔가 좀 좋아 보이는 먹는것, 보는 것, 입는것 이런 부분들에 많이들 신경을 쓰시다 보니 급기야 흙침대에까지 필이 꽂히신게다.
그 흙침대라는것 위에서 잠을 주무시면 만병 통치, 무병 장수 하실거라는 기대라도 하시니, 사실 따지고 보면 그런 마음 자체가 건강에도 좋을거라는 생각은 들었다.
동네 어느 할머니,어느 할머니들이 죄다 흙침대를 사셨다며....
그래서인지 어머님 몰래 근처에 나가 보고 인터넷을 뒤져 봤더니 흙침대가 많이 나와 있었다. 오래 살고 싶은 어르신들을 겨냥한 마켓팅인듯 했다.

하여튼 팔뚝 굵은 우리 아줌마들이야 그런거 신경도 안쓰면서 그냥 먹고 뛰면 된다고 여겨왔건만 동네 할머니들끼리 만나면 은근히 그런 자랑하는 분들이 자꾸만 늘어가니 어머님도 슬슬 신경이 쓰이시는 듯 했다. 
그것이 만만찮은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한분 두분 흙침대 샀네 하는 숫자가 늘어나다 보니 경로당에서 너도나도 흙침대 경쟁이 붙었다.

아무래도 어머님의 원만한(?) 사회생활을 위해 무슨 일이 있어도 흙침대를 하나 사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맨바닥에 담요 깔고 주무셨던 어머니셨기에 이제 그 연세에 흙침대 하나쯤 깔고 주무시고 싶어하시는데 며느리가 그정도 하나 못해드려야 되겠느냐 싶었다.
그러나 매번 흙침대 매장 앞을 지나는데 그때마다 장난 아닌 엄청난 가격표에 치를 떨고 번번이 물러났었다.
그러던 어느날, "큰 맘 먹고 사드려" 남편이 한마디 툭 던진다. "정말?""응! 정말"의외로 남편의 속시원한 지원사격에 자신감을 얻었다. 

나의 짠순이 작전은 시작됐다. 시장 볼때마다 조금씩 아끼고, 택시 탈거 기를 쓰고 버스탔다. 남편 와이셔츠 중저가로 고르고, 아이들 학원비는 다른 집에 절대 비밀로 한다며 2, 3만원씩 깎았다.  열심히 돈을 쪼개 모으기를 석 달.
드디어 흙침대 하나 사는데 필요한 돈을 모아 직접 그걸 사 들고 찾아 뵈었더니 어머님 입이 귀에 걸리셨다.
왜 진작 사드리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가 들 정도로 기뻐하셨다. 흙침대 위에서 잠을 주무시는것 그 자체만으로 벌써 어머님의 수명은 10년은 연장되신 느낌이었다.

시간이 흘러 이젠 만추의 가을이 됐다. 그동안 여름 내내 날씨가 더워 아무데도 못 가고 그나마 에어콘 나오는 경로당에 푹 박혀 사셨으니 엉덩이에 좀이 쑤셔 어디라도 다녀오고 싶으셨던 것이다. 
"담주에 희진이네 할망구가 제주도 간다는디...그집 아덜이 요번에 승진했다고 한번 내려온다고 했다나... 요새 노인덜은 제주도 할인 많이 해준다고 하더라"
어머니의 머릿속에는 이미 제주도 여행 일정이 잡혀 있었다. 이 말씀의 '행간'을 읽는 순간 어머님의 진정한 바램을 확실히 알수 있었다.

"어머니, 그럼 돈 보내드릴테니까 다녀 오세요. 거기 요즘 어르신들 많이 다녀오시던데"
".... 늬덜 힘든디"라시며 말꼬리를 흐리시는 어머니. 그러나 나는 안다. 당신의 마음을. 
날씨가 더 추워지기 전에 이맘때쯤이 제주도 여행하기에 딱 좋기에 다음주쯤에 보내드리기로 했다. 이제 더 연로하시면 어디 가고 싶어도 못가실 것이다. 더 자주 보내드리지 못해 죄송한 마음만 앞서기도 하고...

 

연관 뉴스


추천 0
프린트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icon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