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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동피랑-수원 지동, 무엇이 다를까?
수원화성과 더불어 지동 벽화마을도 알리는데 힘써야
2012-10-15 15:18:29최종 업데이트 : 2012-10-15 15:18:29 작성자 : 시민기자   김해자

지난12일 지방자치단체 인터넷 뉴스매체 중에서 으뜸을 자랑하는 e수원뉴스의 시민기자 30여명이 슬로시티 전주를 거쳐 미항·예향의 도시 통영으로 워크숍을 다녀왔다. 두 곳 모두 옛정취와 시대의 흐름을 아우르는 도시로 우리나라에선 내로라하는 독창적인 문화와 예술을 품고 있다. 

길다고 생각하면 길고, 짧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짧기만 했던 2박3일의 일정, 하나라도 더 얻어가고 싶은 욕심에 거침없이 보폭을 옮겨야 했다. 
타박타박 걸으며 '느리게' 도심을 탐하고자하는 의지와는 반대로 콩콩 달음박질의 연속이었다. 더불어 이 시대의 화두 'SNS 활용법'과 '알기 쉬운 촬영기법 및 구도 잡기'등 시민기자 전문교육까지 일석다조의 시간을 보낸 후 14일 수원으로 돌아왔다. 

2012년 시민기자 워크숍은

새로움과의 만남은 늘 가슴을 뛰게 한다. 
함께한 시민기자 동지(同志)들은 전문교육에 만족해하면서도 동시에 색이 다른 두 도시를 걸으며 수원에는 없는, 아니 수원에서 필요한 뭔가를 건져내기 위해 애쓰는 모습들이 역력했다. 

시민기자 개개인의 창의성과 혁신적인 마인드 고취를 위해 마련된 2012년도 시민기자 워크숍, 곳곳에서 어제와 오늘을 보며 미래의 수원을 그려봤다. 
한국인의 삶이 배인 한옥의 아름다움으로 전주의 랜드마크가 된 '한옥마을'과 '경기전', '전동성당'등 문화재를 통해 근·현대의 살아있는 역사를 체득하고, 남해안의 끝자락에 자리한 통영에서 항구도시 특유의 문화를 접하면서. 

2박3일 동안 각양각색으로 눈과 귀를 붙잡았던 두 도시, 그중에서 특별히 각인된 곳이 있다. 2007년 시작되어 올해로 만 5년째 벽화그림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동피랑 마을'이다. 

통영 동피랑-수원 지동, 무엇이 다를까?_1
동피랑마을 전망대에서 바라본 다도해

지난해부터 연신 들락거리며 연(緣)을 맺고 정(情)을 쌓은 수원의 지동마을 벽화골목, 그곳에 옴팡 빠져있던 차에 동피랑 마을을 만났으니 물때를 제대로 만난 고기가 되었다고 할까. 직사광선 태양열에 땀이 줄줄 흘러내렸지만 지동마을보다 더 나은지, 혹은 별로인지 나름의 평가를 마음속 백지에 열심히 담아두었다.

동양의 나폴리라는 '통영'

통영은 삼도수군통제사가 지휘하는 영, 통제영이 있었던 곳이라 '통영'이다. 1593년 임진왜란 당시 왜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경상, 전라, 충청의 수군을 통제할 수 있는 '삼도수군통제사'가 있었다. 처음에는 한산도에 두었다가 임란이 끝난 이후에 지금의 통영으로 옮겼다. 초대 통제사가 이순신 장군이다. 

800여개의 섬이 있는 남해안 다도해! '다도해'란 말에서 알 수 있듯 섬과 바다가 맞닿은 천혜의 비경과 통제영의 역사 속에 이순신장군 구국의 혼이 담긴 통영! 
통제사가 있었던 곳이었으니 옛날엔 크게 번성했을 터이다. 옛 역사의 중심지이자 청정해역 코발트 블루 빛으로 동양의 나폴리라 불리던 이곳은 이제 남해안 관광벨트화사업에 따라 세계적인 여행지로 발돋움 중이다.

통영에 색을 입힌 '동피랑 마을'

청마 유치환 시인은 푸른바다를 향해 휘날리는 '깃발'을 보고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이라고 했고, 백석 시인은 '바람맛도 짭짭한 물맛도 짭짭한'곳이라며 기행시를 남겼다. 
두 시 모두 '통영'의 이미지를 담았다. 이처럼 선창가 풍경을 시로 남길 만큼 시인들이 좋아한 통영에도 굴곡진 역사를 담고 있는 마을이 있다.

피난민들의 판자촌으로서 가난이 묻어나는 언덕배기 마을 동피랑이다. 통영의 대표적인 어시장인 중앙시장 뒤편 가파른 언덕에 오밀조밀 처마가 맞붙어있는 마을이다. 
옛 통영성의 3포루 중에서 동쪽 포루가 있던 곳으로 바다로 향한 경관이 탁월하기도 하다. 벽화마을의 탄생 전에는 가난으로 얼룩진 좁디좁은 계단 길에 숨쉬기도 힘든 동네였지만 2007년 푸른통영21 등 시민단체들이 모여 마을의 벽에 색을 입히면서 드디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지동마을 벽화 길과는 무엇이 다를까

2008년 사생대회를 통해 선발된 전국 미대생들이 주축이 되어 동피랑 마을 벽에 개성 넘치는 그림들이 아로새겨졌다. 
젊은 피로 뭉친 그들은 쇼설네트워크를 통해 마을의 소식을 전파했다. 입소문은 금새 방송국으로, 인터넷으로 일파만파 전파를 타면서 관광객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났다. 어느덧 전국에서 찾아오는 벽화마을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이곳은 2년마다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는다. 
2010년 국내 19팀과 외국 작가들(4팀)이 가세하면서 가속도가 붙었다. 그리고 2012년, 올해는 전문작가들의 참여는 없지만 지역의 정체성을 담은 통영의 등대들이 사실적인 묘사로 벽화의 중심에 섰다. 그리고 마을의 집 5채까지 시(市)에서 사들여 작가들의 예술창작공간까지 마련되면서 지역주민들의 동참을 유도하고 있다. 1팀당 일정액의 지원 아래서.

통영 동피랑-수원 지동, 무엇이 다를까?_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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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동피랑-수원 지동, 무엇이 다를까?_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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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동마을 벽화사업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2년차다. 
이곳 역시 문화재보호구역이란 명목아래 한없이 낙후된 동네였다. 그곳에 좋은마을만들기 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기다렸다는 듯 마을주민들을 비롯해 어린이 집, 수원시 여러 미술학원, 미술을 전공한 대학생들, 삼성자원봉사단체 등 무료봉사를 자청하며 벽화사업에 달려들었다. 
어느 팀은 주민들에게 행여나 피해를 드릴까 걱정하며 물과 음료는 필수, 도시락까지 챙겨와 참여하기도 했다. 

한낮에 몇 사람만이 간간이 보이는 조용한 골목길에 매일같이 떼거리로 몰려드는 사람소리에 싸늘했던 골목길은 늘 왁자지껄하다. 음침했던 마을이 화사한 변화를 맞은 것이다. 
올 9월엔 한 교회가 아무런 조건 없이 높은 종탑을 개방하면서 수원도심 곳곳의 풍광을 조망할 수 있게 됐다. 지동마을 주민뿐만 아니라 수원시민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선사해 준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동피랑 마을과는 달리 모두가 무료자원봉사로 진행 중이다. 

관광객이 들끓는 동피랑 마을을 바라보며

통영이란 도시를 찾은 관광객들은 필수코스로 동피랑 마을을 찾는 듯 했다. 언덕배기 마을 입구에 도착한 순간 정말 깜짝 놀랐다. 저쪽 반대편에서 구름처럼 떼를 지어 내려오는 사람들과 만나면서 괜한 소문이 아니었음을 알았다. 

"어디서 오셨어요?"
"서울에서 왔어요. 친구랑 오늘 통영에 도착했는데.....와보니 정말 감동이네요."
골목길을 따라 전망대에 올라갔을 때 다도해를 바라보며 탄성을 지르는 두 여인을 발견하곤 바로 다가가 물었다.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김모씨는 친구와 인터넷에서 먼저 확인한 후 통영에 오자마자 이곳으로 달려왔는데 '정말 좋다'고 말했다.

통영 동피랑-수원 지동, 무엇이 다를까?_3
통영 동피랑-수원 지동, 무엇이 다를까?_3

솔직히 지동마을 골목길 벽화사업은 아직 2년차라 동피랑 마을처럼 관광객이 몰리는 편은 아니다. 때문에 사람들의 복작거림이 부러웠다. 
벽화그림들은 지동마을과 대동소이했는데, 다른 점이 있다면 좁은 계단을 오를 때마다 예쁜 작은 상점들이 관광객의 숨을 돌리게 했고, 어떤 집 옥상은 전망대로 개방해 관광객의 발길을 붙들었다. 
동포루가 있었던 전망대에 다다르면 다도해가 시원스레 보이는 자연지세가 한 몫 한다는 생각이 들지만, 많은 이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의 댓가'가 아닌가 생각했다.

그에 못지않은 지동마을 벽화 길은 노을빛전망대와 함께 하나같이 독특한 골목길이 있다. 
게다가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까지 인접해 있으니 그것보다 더 좋은 문화자산이 있을까 싶다. 
문제는 마케팅이다. 이제는 소수의 시민단체 혹은 수원시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시민 모두가 공공의 문화자원으로 생각하고 널리 알리는데 주력해야 한다. 
지역 이기주의를 벗어나 공유해야 한다. 우리 e수원뉴스 시민기자들의 몫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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