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비정한 군중심리, 방관자 효과
당신이 외면한 그 자리에 당신의 가족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2012-10-04 17:21:34최종 업데이트 : 2012-10-04 17:21:34 작성자 : 시민기자   한주희

저녁을 먹고 기분좋게 운동을 하러 나섰다. 체육관까지는 버스로 3~4정거장 정도 되는데 걸어서 다닌다. 건강을 위해 일부러도 걸어다니는데 귀에 이어폰을 꽂고 걸으면 20분은 금방지나간다.
그리 늦은 시간은 아니지만 워낙 세상이 흉흉하다 보니 큰 도로 옆 인도로 걸어다닌다. 대규모 아파트단지 앞을 지날 때에 사건의 발단이 시작되었다. 

한 택시가 서더니 조수석에서 아저씨 한 분이 비틀거리며 내렸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지나치려 하는데 그 아저씨의 몸이 휘청거리더니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순식간에 아저씨가 6차선 산업도로 가장자리에 위태롭게 누워있는 상황의 유일한 목격자가 된 것이었다. 
물론 나 말고도 인도를 지나는 사람들도 있었고 정류장과 멀리 않은 곳이어서 다른 사람들이 그 광경을 목격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둘러 퇴근길에 집을 향하느라 혹은 음악을 듣느라 주변 상황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 듯 무관심하게 지나쳤다.

그리고 아저씨가 쓰러지는 그 순간 현장에 가장 가까이 있었던 사람은 나였기 때문에 그 상황을 정확히 판단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었다. 더군다나 아저씨는 6차선 산업도로 가장자리의 노랑 경계선에 아슬아슬하게 몸의 반을 걸치고 쓰러져 계셨다. 
나머지 반은 차가 쌩쌩달리는 도로에 무방비하게 노출된 상태였다. 

유일한 현장 목격자라는 책임감으로 그 자리를 떠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내가 아니면 그 아저씨가 유명을 달리할 수도 있는 상황에 처해 계셨기 때문이다.
가로수 사이사이에 있는 1미터 정도 되는 작은 담벼락처럼 가꾸어진 작은 관목들이 있다. 이 나무들 때문에 아저씨가 쓰러져 계신 것이 인도로 지나다니는 사람들 눈에는 잘 보이지 않을 수 있었다. 

비정한 군중심리, 방관자 효과_1
아저씨가 쓰러져있던 나무담벼락 뒤 도로가장자리

차가 가까이 올 때마다 심장의 크기가 반감되는 것 같았다. 빨리 아저씨를 위험한 상황으로부터 구해야 했다. 그러나 술을 취한 아저씨를 부축해 인도로 옮기는 일을 감당하기에는 내 체격과 힘이 너무 모자랐다.
일단 주변에 도움을 청하기 위해 지나가는 사람들을 살폈다. 175cm정도 체격의 술 취한 아저씨를 부축하려면 체격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지나가는 행인이 많은 길에서는 '방관자 효과'로 인해 사람들이 나서지 않는다. 그래서 방관자 효과를 역으로 이용해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방법을 사용했다. 무작정 도와달라고 소리치지 말고 특정인에게 도움을 청해야 한다. 그 사람이 주춤거리며 움직이면 다른 사람들도 용기를 내어 가담하게 된다고 무수히 많은 프로그램과 심리학책에서 봤다. 

다행히도 금방 건장한 체격의 남자를 발견했다.
"저기요, 도로에 아저씨가 쓰러져 계시는데 좀 도와주세요. 빨리 인도로 옮겨야 할 것 같은데.."
"..."
돌아오는 대답은 무.관.심

쓰윽 한 번 쳐다보더니 약간 망설이는 듯 하더니 그냥 지나쳐갔다. 가면서도 걱정은 되는 건지 아니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으나 갈 길이 바쁘다는 메세지를 보내는 건지 뒤를 돌아 쳐다보면서 걸어갔다.
방관자 효과를 역이용하는 방법도 무용지물이었다. 역시 글로 배운 이론을 현실에 적용시키는데는 무리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이 경우만 예외인 것일까.

차림새를 보아하니 운동을 하러 가는 거 같아 보였던 그 청년에게 근육을 빵빵하게 키울시간에 내면에 양심과 책임감을 빵빵히 키우기를 바라는 마음이 닿기를...
우선 아저씨가 정신을 잃지 않도록 깨우는 일이 급선무였다.
나무들로 이루어진 담벼락 너머로 "아저씨, 정신차리세요. 위험해요. 인도로 올라오세요.."라고 소리를 치며 주변에 도와 줄 사람을 찾았다. 

멀쩡하게 생긴 젊은 여자가 길에 쓰러진 아저씨를 돕겠다고 소리치고 있으면 와서 도와주면 좋으련만 사람들은 무슨 일인가 하고 멀찍이 쓰윽 쳐다만 보고 제 갈길 가는데 바빴다.
그 중 몇 사람들에게 '술에 취해 쓰러져 있는 거 같은데, 오지랖 넓게 신경쓰지 말고 아가씨도 갈 길 가.'라는 듯한 시선을 받았다면 지나친 자의적 해석일까.

건강한 체격이 아까운 청년이 매정히 사라진 후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고 산책을 가는 한 가족을 발견했다. 아이들도 옆에 있으니 모른척 지나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사정을 설명하자 아이들의 아빠가 도와주려 몸의 방향을 트는 순간 부인이 끼어들어 '그냥 가자'는 신호로 팔을 잡아당겼다. 아이들의 아빠는 겸연쩍게 가족과 갈 길을 걸어갔다.

도대체 왜들 그러는 걸까. 다른 사람들의 일에 끼어들어 봉변 당한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들처럼. 나서지는 않아도 멀찌감치 떨어져 구경하는 것은 몸에 밴 사람들처럼.
착잡했다. 그 아저씨를 부축해서 안전하게 인도로 옮기지 못하고 그저 아저씨를 깨우고 있을 수밖에 없는 나 자신과 그걸 보고도 입닫고 귀닫고 오로지 눈만 뜨고 쳐다 보는 생명력없는 회색빛깔의 구경꾼들의 모습이 착잡했다.

그러던 중 대학생으로 보이는 견실한 청년이 담벼락같은 나무들을 넘어 그 아저씨에게 다가갔다. 그 청년은 긴 나무 담벼락이 끝나는 횡단보도까지 50~60m정도 거리를 그 아저씨를 부축해서 인도에 안전하게 모셔다 드렸다. 마치 백마탄 왕자같았다. 백마탄 왕자가 이보다 더 멋있을까 싶다. 앞으로 나는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을 외면하지 않고 용기있게 나서는 사람을 이상형으로 삼으려 한다.   
하마터면 그 아저씨와 아무 죄없는 운전자들이 큰 사고에 휘말릴 뻔한 일이 그 백마탄 왕자덕분에 잘 해겼되었다. 술에 취해 쓰러져 있는 아저씨가 내 아버지도 아닌데 마음 속 깉이 고마움이 목까지 차올라 고맙다는 말을 안 할 수 없었다.

눈 앞에 위험에 처한 사람을 보고도 외면하는 방관자효과의 심리는 무엇일까. 가장 큰 심리는 '나 아니어도 누군가가 나서겠지.'라는 책임전가형이다. 과거에 나도 이런 부류에 속해 방관자로 살아간 적이 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뜩 '내가 외면한 저 사람에게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생긴다면 나 또한 책임이 있는 것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면서 행동이 바뀌게 되었다.
만약 집에 돌아서 "술에 취해 도로에 쓰러져 있던 50대 남성이 끝내 지나가던 차량에 치여 사망했습니다."라는 뉴스를 본다고 가정해보자. 그것도 내가 아까 지나온 길에서 벌어진 사건, 내가 외면하고 방관했던 현장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살아갈 사람이 몇이나 될까. ' 그냥 돌아서는 게 아니었는데..내가 외면하지만 않았어도 죽지 않았을텐데..'라는 자책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책임전가형 이외에도 '내가 나서는 걸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하는 주변시선의식형이 있다. 그리고 자신의 행위가 도움은 커녕 오히려 위험을 초래해 법적인 책임을 지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하는 우려도 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지 않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합리화될 수 없다. 물론 인간의 선의를 이용한 범죄가 일어나는 말도 안되는 요지경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누군가를 돕는다=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라는 인식이 사회에 퍼져있다. 

할머니들 돕는 학생을 인신매매단이 납치하는데 동조하는 '봉고차 괴담'의 할머니의 존재로 인해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할머니를 경계와 의심의 눈길로 바라보라고 교육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누굴 나무랄 수 있겠냐만은 여럿이 쑥덕쑥덕 될 시간과 주변 사람들의 존재로 나의 신변이 확보된 상황이라면 어쨌든 위기에 처한 사람은 구해놓고 봐야 하는 것 아닐까.

물론 나 또한 더욱 적극적인 자세를 취했어야 한다. 도움을 청해도 뿌리치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늘어져 그 아저씨를 안전하게 차도에서 구출했어야 한다. 그게 여의치 않았다면 나 또한 차도로 들어가 그 아저씨 옆에서 누군가 도와줄 때까지 차량이 피해갈 수 있도록 신호의 역할을 했어야 한다.
흔히 쉽게 하는 말이 있다.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 그 위험한 상황에 처한 사람이 내 가족일 수도 있다. 그러니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외면하지 말자'

 

추천 0
프린트버튼캡쳐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icon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