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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문화제 야조(夜操)가 변했다
2012-10-07 13:34:35최종 업데이트 : 2012-10-07 13:34:35 작성자 : 시민기자   김해자

야조의 탄생

수원화성 축성공사가 한창 무르 익을 무렵 1795년 윤2월 9일, 정조대왕은 아버지 사도세자를 모신 현릉원 참배를 위해 화성행차에 나섰다. 이른바 '8일간의 화성행차(윤2월 9일~윤2월 16일)'가 그것이다.
이 행사에 참여한 사람의 명단은 물론 행사에 들어간 비용, 물품 재료의 종류와 양 등 하루하루의 일과를 행차보고서(원행을묘정리의궤)에 모두 기록하여 후대에 남겼다.
단원 김홍도가 그려 오늘날까지 전하는 '반차도(班次圖)'에 의하면 한양 창덕궁을 출발해 수원화성에 도착하기까지 1천7백여 명이 등장했다니 당대의 위세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정조의 화성행차 8일 중 넷째 날 윤2월 12일, 화성에서의 둘째 날이었던 아침에 아버지 묘소인 현릉원을 참배하고 오후와 야간에 화성에서 두 차례 군사훈련(성조城操,야조夜操)을 거행했다. 
두 행사 역시 '서장대 성조도'와 '연거도(演炬圖)' 등 기록문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화성성역의궤'에 남아 전해진다. 수원화성 축성의 목적 중 하나가 왕권강화를 위한 군사요충지였던 만큼 당시 화성에 주둔하고 있던 장용영 외영 군사는 약 5천명이었다. 그런 만큼 군사훈련 실시는 당연히 필요한 부분이었다.

화성문화제 야조(夜操)가 변했다_2
화성문화제 야조(夜操)가 변했다_2

횃불을 든 군사들이 성을 에워싸고 성안의 집집마다 등이 켜져 있는 모습은 '연거도(演炬圖)'로 전해진다.
연거도의 보편적 이야기와 재미를 곁들인 이야기가 1년 중 한번 '수원화성문화제'기간 중에 펼쳐진다. 남녀노소 누구나 관람이 가능한 이야기로 탄생된 것이다.
올해도 역시 '제49회 수원화성문화제'가 열리고 있는 지난 6일 관객 앞에 섰다. 완전 새로운 모습으로, 예년과는 확 달라진 연출로. 

작년보다 커진 무대

화성문화제 야조(夜操)가 변했다_4
화성문화제 야조(夜操)가 변했다_4

정말 깜짝 놀랐다. 팔달문에서 지인들과 걸어서 도착한 연무대 활터엔 이미 인파로 복작복작!
작년까지만 해도 창룡문 왼편 잔디밭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바로 코앞에서 시연되는 마상무예와 마상재를 손에 땀이 흐를 정도로 긴장감속에 관람했었는데... 올해는 무대가 확 커졌다. 연무대와 창룡문 사이를 경계로 '접근금지' 시켜버린 것. 
알고 보니 수원화성이란 하드웨어 공간을 충분히 살리기 위해,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수원화성문화제의 대표적인 공연으로 발돋움하기위해 대폭 공연을 확대했기 때문이었다.

초반 20여분은 익히 그동안 행해졌던 수원의 대표적인 무형문화제 '무예24기'공연이 펼쳐졌다. 장용영 군사들의 스펙타클한 공연들이 선을 보이는데... 어찌나 공연장이 멀고도 먼지 무사들의 땀 내음과 함께 거친 숨소리 속에서 느껴지는 실존감이 영 다가오지 않았다. 
사진도 내가 가지고 있는 이른바 '똑딱이' 디지털카메라로는 그들의 장엄한 모습을 찍기에는 역부족. 

화성문화제 야조(夜操)가 변했다_3
화성문화제 야조(夜操)가 변했다_3

작년엔 내내 가까이서 보며 무사들과 말의 숨소리를 들으며 박수갈채를 보내고 어찌나 소리를 질렀는지 목이 잠길 정도였는데. 조금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가족형 축제에서 사회형 축제로 확대

창룡문과 성곽은 그 자체로 오브제(objet)다. 창룡문이 스크린이 되어 관객들을 향한 이야기가 펼쳐졌다.
군복을 입고 있는 정조가 등장하고 잠시 평화로웠던 시대를 연출한다. 시간이 흐른 후, 전쟁의 단초가 제기되면서 이내 창룡문 앞은 거대한 '군무 살풀이'가 장엄하게 행해진다. 

"장용영 야간군사 훈련을 명하노라!" 장용영 군사들의 호위 속에서 정조의 명이 떨어진다.
연거! 점거! 부거!...연등! 장수의 명령이 떨어질 때마다 규율에 따른 명에 답하는 일체의 행위들이 이어진다. 말을 탄 기병들 또한 강물의 수세가 빨라지듯 일사불란한 행동들로 박수를 받는다.
장렬히 적군과 싸우던 장용영 군사들은 점점 우위를 장악하고 마침내 승리를 거둔다. 거대한 승리의 함성소리에 야조는 끝을 맺는다.

연회, 야조와의 연관성

"짐은 장용영 군사들의 살아있는 예를 보았노라! 백성을 귀하게 여기고 변혁의 불꽃이 되어 국가와 민족을 지켜내기 위해 온몸을 헌신하기를... 자랑스러운 그대들에게 무사의 징표를 하사하며 그대들의 용맹을 치하하고자 하노라! 군사들을 위한 연회를 베풀라!"
정조의 최측근이었던 장용영 군사들을 위한 연회가 시작됐다. 정조의 위상을 받들기 위함이었을까? 비주얼한 의상과 음향, 레이저 조명 그리고 군무(群舞)등 그동안 서울에서만 만나본 듯한 퓨전국악이 선보였다.

모두가 화려함의 극치였다. 특수효과 등 볼거리는 화려한데 그간 익히 보아왔던 야조(夜操)와는 어떤 고리로 연결되는지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약간 갸우뚱(?)하게 만든 점이 못내 아쉬웠다.
멀리서 보는 관람객들을 위해 설치해 놓은 스크린에도 이해를 돕는 설명은 없었다. 내가 좀 아둔한지 분량이 줄어든 '야조'와 행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군무(群舞)'와 무슨 관계인지 궁금증이 일었다. 

내년을 기약하며

영상쇼나 품격 있는 환영무, 타악 대합주 등 기존에 접해보지 못했던 대형작품의 화려함은 충분히 볼거리로서 최고였다. 수원화성을 이용한 스크린 장치도 으뜸이었다.
단지, 수원의 보물 '무예24기를 좀 더 살린 무대가 되었으면 좋겠다'란 생각이다. 약간 아쉬움이 남는 무대랄까. 

모두가 축제의 질을 높이기 위한 과도기려니 생각하며 내년을 성질 급하게 기다린다.
그렇지만 관람형 위주의 축제로 정착되어간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다. 보통 축제를 보기위해 찾아갔다가 너무 많은 사진인들 때문에 제대로 행사를 볼 수 가 없었는데, 이번엔 '관람자 우선' 축제가 되었다.
아무튼 새롭게 변신한 야조 공연을 위해 애쓴 스텝과 배우들 그 외 모든 분들께 수고하셨다는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화성문화제 야조(夜操)가 변했다_1
화성문화제 야조(夜操)가 변했다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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