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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딸보다 손녀 목소리가 더 좋은가보네?
2012-10-29 01:26:20최종 업데이트 : 2012-10-29 01:26:20 작성자 : 시민기자   송경희
일요일 아침 일찍 아이가 내게 다가오더니 할머니께 전화를 하자고 조른다. 할머니란 아이의 외할머니인 내 친정엄마셨다.
"외할머니께 전화는 왜?"
"에이, 할머니 오늘 생신이잖아. 어제 엄마가 전화 했잖아"

아. 아이가 내가 어제 엄마와 전화 통화 하는 내용을 들었던 모양이다. 엄마 생신인데 가 보지는 못하고, 통장에 돈 조금 넣어드린후 고기라도 사 잡수시라고 했던 통화내용. 
아이는 그래서 할머니의 생신 당일이니 축하드린다고 전화를 하겠다며 이른 아침부터 눈을 비비고 나를 찾은 것이다.

어린 녀석이지만 마음이 참 고와서 고마웠다.
아이의 성화에 못이겨 이른 아침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벨이 신나게 울린 끝에 어머니가 받으셨다.
"어제 전화 하고선 뭣하러 또 했냐. 전화비 아깝게"
약간 떨리시는 목소리였다. 당신의 생신 축하 드리려고 전화 한거 뻔히 아시면서도 전화비 아깝게 왜 했냐는 인사는 빠트리지 않는 노인네. 

"여보세요? 할머니 생신 축하드려요.  많이 많이 사랑해요."
늦게 시집간 딸내미가 늦게 낳은 자식. 그 손녀딸이 어느덧 초등학교 3학이 되어 당신께 생신축하 인사를 드리자 어머니는 기쁘셨던 모양이다. 뭔가 한참을 통화를 하신 끝에 나를 바꾸라셨다.
"에구. 엄마는 지금 보니까 딸내미보다 손녀 목소리가 더 좋은가보네. 날더러는 뭣하러 전화 하냐고 해 놓구선 손녀딸 하고는 5분이나 통화한걸 보니"
나의 뻔한 농담에 엄마는 손녀딸이 늙은 할망구 생일까지 기억하고 많이 자랐구나 싶어서 기분이 좋았다며 목소리를 가늘게 떨고 계셨다.

친정엄마는 어릴적에 우리를 키우시면서 가난한 농촌 살림에도 단 한번도 우리들 남매 자식들의 생일을 잊지 않으셨다. 
항상 보리쌀이 섞인 밥을 먹다가도 우리 생일날만 되면 보리 한톨 섞이지 않은 하얀 쌀밥을 지어 주셨고, 맛있는 미역국에 떡까지 해서 한상 가득 차려서 방으로 들여 오셨다.
우리 남매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생일날만 먹어보는 별미인 흰 쌀밥과 미역국을 눈깜짝 할 사이 그릇을 비워냈다. 

하지만 놀라운 일은 우리에게는 하얀 쌀밥을 지어주신 엄마는 정작 보리밥을 드시고 계셨다. 그때 우리는 철이 없어서 우리 밥이 쌀밥이고, 엄마 밥은 보리밥이라는 것 자체에 대해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오로지 우리는 쌀밥만 먹고 싶었고, 그게 생일날은 확실히 쌀밥이 나온다는 사실에 형제들의 생일날만 손꼽아 기다릴 정도였다.

우리가 흰 쌀밥과 미역국을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후루룩 먹어 치우면 엄마는 빙그레 웃으시며 말씀하신다
"맛있냐?"
"예. 히히히"
"배부르냐?"
"예. 꺼~억. 히히히"

우린 당신의 그 온화한 미소 속에서 배를 불리며 행복해 했다. 
예전에 내 기억으로는 엄마는 생신을 거의 챙기지 않으셨던것 같다. 반면에 아버지 생신은 나름 생색나게 하셨다. 
우리들은 아버지 생신날 아침에 엄마의 분부를 받잡고 이른 아침에 뿔뿔이 흩어져 각자 맡은 동네 어르신들께 찾아가 "오늘 아버지 생신이니 진지 잡수러 오시래유" 하면서 마을 어르신들을 초대했다. 그날 아침에는 엄마가 정성스레 준비하신 음식과 막걸리로 자그마한 시골형 파티가 벌어지곤 했다. 

엄마는 그렇게 평생 헌신만 하셨다. 당신의 생신은 거들떠도 안보면서 아버지 생신과 자식들 생일만 챙기셨다.
그렇게 자식들을 키워 내신 당신이 이제 손녀딸의 생신 축하 전화를 받기는 하지만... 어릴적 그 행복을 느끼기만 했지, 정작 당신의 생신때는 내려 가 보지도 못하는 불효막심한 딸년은 마음이 편치 못하다. 그래서 밤 늦게 혼자 기원한다.
 "엄마!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오늘밤 내 꿈에 와 주세요. 엄마 좋아하시는 달디 단 배 깎아 드릴께요." 

엄마는 딸보다 손녀 목소리가 더 좋은가보네?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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