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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외계어 얼마나 아시나요
2012-10-29 11:23:05최종 업데이트 : 2012-10-29 11:23:05 작성자 : 시민기자   최음천
"에이, 그거 듣보잡이잖아. 넌 좀 쓸만한것좀 골라라"
"무슨 말이야. 어제 OO는 그거 보고 정줄놓였단 말야"
"그래? 걔 패션감각이 그정도란 말이지? 흠좀무..."

토요일날 버스를 탔다. 밖에선 비가 오는 가운데 차 안으로는 우산을 든 사람들이 제법 많이 서 있었다. 뒤쪽으로 들어가 그래도 좀 여유가 있는 공간으로 가서 자리를 잡고 서니 바로 앞에는 여고생 둘이 앉아서 스마트폰으로 열심히 정보통신 사회의 문명의 이기를 즐기고 있었다.
한 여학생은 게임인지 쿠팡인지를 하느라 혼줄을 빼고 있었고, 한 여학생은 카톡으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버스 좌석의 등받이 윗부분을 잡은채 이 학생의 카톡을 본의 아니게 컨닝을 하게 됐다. 처음에는 쓰윽 지나치며 그냥 이 학생들이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졌구나 생각하면서 눈길을 거뒀는데 우연히 카톡을 하는 학생의 폰 화면에 뜬 단어 하나가 눈에 걸렸다.

듣보잡. 언젠가 유명한 칼럼니스트가 다른 칼럼니스트를 비판하면서 듣보잡 글쟁이라는 말을 써서 한동안 노란거리가 됐던 단어였다.
나도 그동안 큰 관심을 갖지 않았던 단어인데 그때 정말 이 단어의 진짜 쓸모를 알게 되었다.

그 듣보잡이라는 단어를 보고 눈길이 다시 학생의 카톡 대화창으로 옮겨져 결국에는 아주 짧은 순간 남의 대화창이라는 사생활을 훔쳐 본 꼴이 된 것이다.
학생들의 카톡 대화창 문자 입력 속도는 가히 총알이었다. 우리네 나이 든 사람들은 한문장 넣는데 자판과의 간격이 좁아 오타가 부지기수로 나기 때문에 일일이 지우고 수정해 가면서 하느라 굼벵이 속도지만 아이들은 오타 하나도 없이 기막힌 속도로 문자를 한다. 

아이들 외계어 얼마나 아시나요_1
아이들 외계어 얼마나 아시나요_1

나도 순간적으로 번개같은 실력으로 아이의 카톡을 훔쳐 본건데 그 내용이 위에서 적은 세가지 대화였다.
아이들 세계, 그중에서도 아이들이 쓰는 외계어 같은 줄임말에 대해 잘 모르시는 분들은 이 듣보잡, 정줄놓, 흠좀무라는 단어에 대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말이냐고 할것이다. 나도 사실은 우연히 알게 된 듣보잡 말고는 나머지 두 개는 무슨 말인지 몰라서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에게 물어서 알아낸 것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집에 돌아온 남편에게 물었더니 남편도 모르는 말이라 했다. 하긴 남편은 나보다 더 구식인지라...
듣보잡은 소위 "듣도 보지도 못한 생소한 잡것"이라는 뜻이다. 한마디로 아주 하찮은 것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정줄놓는 "정신줄을 놓다"이고 흠좀무는 "흠 그게 사실이라면 좀 무섭군"이란다.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줄임말 퍼레이드다. 

그 말뜻을 알고난 뒤 여고생들이 나눈 대화의 내용을 조합해 보니 대충 이랬다.
어떤 아이가 옷을 하나 골랐고, 그걸 본 아이가 듣도 보지도 못한 거라며 우습게 생각하자 이 친구는 다른 친구가 정신줄을 놓을 정도로 훌륭한거라 했는데 너는 왜그러냐며 패션감각을 문제삼았고, 결국에는 패션감각을 문제삼았던 아이는 다른 아이의 생각에 대해 "좀 의외지만 그 생각에 무서운 느낌을 받았다"며 마무리 짓는 내용이었다.

아이들끼리 쓰는 말이고, 나와는 직접적인 불편함이나 피해가 없기에 굳이 성인인 내가  이러쿵저러쿵 말할 필요는 없을수도 있으나 이정도의 외계어라면 한번쯤 다같이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넘사벽이라는 단어를 보고 그게 뭔지 몰라 다른 사람에게 물었던적도 있다. 

넘사벽은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의 줄임말이라 한다. 줄이기 전의 본딧말을 알더라도 의미와 용례를 보기 전까지는 언제, 어떻게 써야 할지 알기 힘들다. 이는 주로 둘을 비교할 때 더 잘난 쪽의 잘남을 극도로 과장하기 위한 표현이고 어마어마한 차이를 나타내기 위해 쓰는 말인듯 하다. 
예를 들면 지난 올림픽에서 양학선 선수의 세계적인 고난이도 기술을 일컬어 그 능력을 극대화시켜 표현하는 수단인 셈이다. 

너무나 충격적인 일이라 크게 놀랐다는 것을 <멘탈 붕귀>라 하여 그 말을 줄인 <멘붕>이라는 말, 혹은 누가 어떤 일로 아주 안좋은 상태의 나락으로 빠져들었을때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줄여 쓰는 <지못미> 같은 말은 요즘 아예 연예쪽 방송에서는 일상사로 쓰고 있다. 개그맨들도 마구 쓰고 자막에도 흔히 등장한다. 언제부터 누가 멘붕이라는 말을 이렇게 공공 방송에서 마구 써도 된다고 허락한건 아닐텐데 방송에서 그렇게 쓰면 이제는 아무나 다 써도 된다는건가?


위에서 아이들끼리 오간 대화속의 단어도 정말 방송에서 쓰면 그게 언젠가는 우리의 일상 용어가 될까 싶어 걱정이 된다.
우리 세대야 걱정만 하다가 말수 있지만, 지금 자라나는 아이들 세대때는 정말이지 그런 말들의 홍수로 인해 언어적 고유성이 너무 크게 훼손되고, 우리 한글이 자칫 줄임말이 넘쳐나 원래 문장의 맛깔스러움과 순수성이 상처받지나 않을런지 우려스럽다. 이런 고민은 아이들 키우는 어른들이 다같이 공감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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