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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로부터 크게 배우다
아이들 학원만 뺑뺑이 돌려 되는게 아닌데...
2012-10-04 16:14:41최종 업데이트 : 2012-10-04 16:14:41 작성자 : 시민기자   좌혜경

흔히들 하는 말 '아이들의 학습 능력은 할아버지의 경제력과 아빠의 무관심'.
이 말인즉 위에서 언급한 아빠와 할아버지 사이에 끼이지 않은 엄마의 역할이 무척 중요하다는 뜻인데 그 엄마의 역할을 나는 제대로 하고 있는건지...

 

딸아이로부터 크게 배우다_1
딸아이로부터 크게 배우다_1

원래 아이 키우는 대한민국 엄마들이 다 그렇다고 하는데 하물며 '워킹맘'인 나는 늘 가시방석이다. 아이를 낳은 뒤 복귀한 직장에서는 "엄마가 되고 나더니 일이 별로야"라는 핀잔을 듣지 않으려고, 후배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려고 곱절의 노력을 해야 하니 어느 구석인들 맘이 겠는가.

3명의 아이들이 한참 자라던 어린아기 때인 10여년전을 되짚어 보자.
집에서는 애 봐주는 시어머니와, 다시 바톤 터치를 해주신 친정어머니 기분을 살펴야 했다. 그래도 잘살아보려고 하는 일이니 그 정도는 참을 수 있었다. 

문제는 '엄마'가 됐다는 데 있었다. 아이는 할머니만 찾고, 어느덧 있으나 마나 한 엄마로 전락한다. 직장 여성이 출산을 하고 난 뒤인 30대에 추락한다는 '여삼추'란 말을 뼈저리게 실감하는 것이다. 
그렇게 고행(?)의 연속인 10여년의 세월을 꿋꿋이 버텨 나름대로 직장에서 인정받고 가정도 웬만큼 꾸린 맞벌이 주부가 되었다. 하지만 아이가 제 앞가림 할만큼 키워 놓고 보니 이젠 학교와 공부를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는 문제가 나를 괴롭힌다. 

자녀 교육에 헌신하는 맹모(孟母)상이 적어도 직장맘에게는 굴레라는걸 깨닫게 되는 순간  회사에 매여 있느라 아이를 돌보지 못한다는 죄책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퇴근이 아무리 늦어도 초등학교 아이의 가정 통신문 만큼은 꼼꼼히 챙긴다. 학교에서 보낸 알림장을 처음 봤을 때는 거의 암호 수준이었다. '독서록'이 무슨 뜻인지 몰라 여러 친구들에게 수소문 해봐야 했으니까.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이던 겨울 방학식 날 다른 아이들은 책을 읽은 만큼 상을 받았지만 우리 아이는 하나도 못 받았다.  내가 말로만 듣던 '엄따(엄마 왕따)'라는 걸 깨달았다. 첫 학기를 망친 아들에게 미안해 밤새 울었다.
그렇게 어찌어찌 세월이 흘러 이젠 큰 딸 아이가 중학교에 갔다.
그러니까 얼마전 일이다. 딸 아이의 중간고사 결과를 대충 들어보니(성적표는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 내심 큰 기대를 하면서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아이에게 시험 친 후 가채점한 점수를 들어 보니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이번에도 성적이 중간을 약간 웃도는 그대로다.

딸 아이가 야속해졌다. 이번만은 평균 90점대는 고사하고 80점대 상위권은 해줄줄 알았다. 그러나 결과는 간신히 80점대 턱걸이였다. 이럴줄 알았으면 지난 여름방학에 '돈도 좀 들여  큰맘 먹고 선행교육이라는것도 좀 시켜 볼걸' 하는 후회마저 들었다.
딸 아이와 가시 돋힌 대화가 시작됐다. 공부 못한다는 타박이 이어졌다. 옛날에 엄마는 안그랬다는 둥, 공부에는 집중력이 있어야 한다는 둥, 너처럼 산만하고 엉뚱한데 신경 쏟으면 무슨 공부가 되겠냐는 중...
머릿속에서 맴돌던 말들을 죄다 아이에게 쏟아 부었다.

학교에서 교지 편집기자도 함께 하며 친하게 지내는 친구 이름을 대며 "그래 그 친구는 공부를 잘하는데 넌 자존심도 상하지 않아!"라며 몰아 세웠다. 내내 묵묵히 다그침을 듣고 있던 딸 아이가 불쑥 한마디 한다. 
"엄마는 친구가 공부 잘하면 자존심이 상해?"
불쑥 튀어 나온 딸 아이의 말 대꾸에 말문이 막혔다. 내 욕심에 아이를 엉뚱하게 몰아 세웠다는 후회가 들었다. 엄마 아빠가 모두 출근해서 없는 가운데서도 아이가 모나지 않고, 옆길로 새지 않고, 제 동생 둘을 엄마처럼 돌봐주며 건강하게 잘 커준 중학생 아이. 

그렇게 생각해 보면 사실 공부는 아무것도 아닌것을... 아이들에게 학원만 뺑뺑이 돌려 공부만 시킨다고 되는게 아닌것을...
모녀의 대화는 나의 KO패로 끝났다. 아니, 내가 딸 아이로부터 크게 배운 것이다. 이제 앞으로 딸 아이에게 공부 타박을 않기로 했다. 우리 딸 아이가 공부 잘하는 친구를 시기하지 않는 마음을 가졌다면 공부는 좀 못해도 괜찮을 것 같다.

삶은 같이 사는 것이지 다른 사람과 다툼에서 이기려 사는 게 아니지 않은가. 다른 사람을 누르며 밟고 올라서는게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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