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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저 잘 되라고 한말인데
2012-10-10 12:22:53최종 업데이트 : 2012-10-10 12:22:53 작성자 : 시민기자   이영희

아이와 또 한바탕 전쟁을 치뤘다. 지난 주말이었다. 아침에 10시쯤 일어나더니 눈을 비빈채 그대로 컴퓨터를 켜는 아이. 그리고 이내 전날밤에 하던 게임을 다시 시작한다. 속이 터진다.
밤 늦도록 게임만 하다가 자는 것도 화가 났지만 참았다. 그런데 아침에 10시까지 자다가 기껏 일어나서 눈마저 떠지지 않는 상태에서 한다는 일이 컴퓨터 켜고 또다시 게임이라니.

세수 하고, 아침 시간 정신 맑게 해서 이것저것 생각해 보고, 휴일 하루 어찌 보낼건지 대충 정리라도 해 보는게 옳지 않을까.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든, 혹은 밀린 공부 하든, 아니면 나가서 씩씩하게 뛰어 놀든...  그런데 이녀석은.
그나마 컴퓨터를 못 켜게 하면 이제는 스마트폰을 붙잡고 연신 손놀림이니 이거 참 속이 끓고 참을수가 없다. 
 
결국 아이를 붙잡아 놓고 30분 정도 혼내고 타이르고 윽박지르고 또 혼내고 얼르고 달래도 보았다. 
그리고 다음날.
아이 방 청소를 하다가 방바닥에서 우연히 발견한 종이쪽지를 보고 기절할뻔 했다.
"친구들이 부럽다. 걔네 엄마는 잔소리 안한다는데. 나는 자주 듣는다. 싫다. 에이 그냥 칵 ○○○○○!"

스프링 노트에 끄적였다가 쭉 찢어 쓰레기통에 버린 종이 한 장. 볼펜으로 열심히 지운 낙서였지만 그 속에 흘러간 글씨를 꼼꼼히 읽어보니 "에이 그냥  칵 ○○○○○! "이라는 대목에서 숨이 멎는듯 했다.
"혹시 '죽어버릴까' 이런 말이 아니었을까"하는 글 같아서 들고 있던 진공청소기 손잡이를 방바닥에 떨구고 말았다. 모두 제녀석 잘되라고 한두마디 한 건데 그게 잔소리로 들렸다구? 서운하기도 하고 야속하기도 했다. 

엄마는 저 잘 되라고 한말인데_1
엄마는 저 잘 되라고 한말인데_1

아이는 지난번 중간고사 때에도 시험을 얼마 안 남겨놓았는데도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PC를 켜고 게임에 몰두했다. 짧으면 한시간이지만 길면 두세시간 꼼짝 않고 PC앞에서 죽치고 있던 아이. 
그때도 그냥 참고 말았다.  평소 같으면야 "너 시험이 낼모렌데 게임이냐?"고 닦달을 하고도 남았겠지만 부글부글 끓는 속을 억누르며 참은 것이다. 

말이 입힌 상처는 칼이 입힌 상처보다 깊다는 속담이 있다. 몸의 상처야 치료하면 그만이지만 마음의 상처는 엎질러진 물 같아서 두고두고 아물지 않은채 가슴 깊은 곳에서 평생의 생채기로 남을수 있음을 일컫는 말이다. 그래서 항상 아이들에게 말조심, 행동 조심을 하는데도 아이들이 받아들이기엔 엄마 아빠가 공부 노래만 부르는 사람으로 보였나 보다.

며칠전 TV 대학강좌에서 모 대학교 교수님이 하는 강의를 들었다. 청소년기 자녀들은 부모와의 관계에서 영향을 많이 받는데 자녀들이 불행하길 바라는 부모는 결코 없지만, 불행하게 만드는 부모는 적지 않다는 말이 귀에 쏙 박혔다.
그중에서도 특히 엄마가 피해야 할 잔소리의 4단계가 있었다. 1단계는 말에 '또' 등의 강조어를 넣어 말하는 것. "또~ 늦었냐" "또 하루 종일~ 컴퓨터하냐" "또 맨날~ 지각하냐" 등을 말하는 것이다. 2단계는 "네가 사람이냐 굼뱅이냐" 등의 말로 아이에게 인격적인 상처를 주는 경우이다. 3단계는 아이의 미래에 대한 저주를 퍼붓는 것. "변호사, 의사? 택도 없는 소리, 네가 그래서 변호사가 되겠냐"는 잔소리이다.

마지막 4단계는 심각하다. 아이를 넘어서 주변 인물의 흉을 보는 것이다. "어쩜 김씨 아니랄까봐" "그런 거는 너희 할아버지 할머니 닮지 않아도 된다"는 등의 말로 주변인물의 인격에까지 상처를 주는 것이다.

물론 이런 말은 결코 사용해서는 안되지만 나도 혹시 무의식적으로 홧김에 그런 말을 했던건 아닌지 생각해 보았다.
그동안 아이에게 했던 말들이 내딴에는'사랑의 가르침'이었지만 아이가 받아들이기엔 '마음의 상처를 주는 잔소리'로만 켜켜이 쌓이진 않았는지 모르겠다.
또"너는 게임만 하면 누가 밥먹여 주니?"라고 했던 몇번의 잔소리들이 좌악 재생돼 머릿속을 휘젓고 지나갔다. 

화도 나고 속도 상했지만 그날 저녁때는 아이에게 과일을 갖다주며 표정을 살폈더니 이 녀석 하는 말 "엄마, 요즘 좋은 일 있어? 엄마가 웃으니까 기분이 좋아. 헤헤"
그래, 그게 내가 아이를 믿는 효과라고 생각하니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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