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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락 맞을 확률에 기대봤던 하루
2012-10-19 23:12:51최종 업데이트 : 2012-10-19 23:12:51 작성자 : 시민기자   남민배
추석전쯤 일이었다. 퇴근길에 보니 유난히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한 업소가 보인다. 출퇴근길에 매일 보는 건물이고, 매일 보는 업소인데다가, 금요일날만 되면 어김없이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것을 보는데도 그동안은 무심코 지나쳤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생각 때문에.

그런데 그날은 왠지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 집에 한번 들어가 보고 싶었다. 그 업소는 로또 판매점이었다. 사람들이 로또를 사려고 몰려든 것이다. 
그동안 머리에 털 나고 로또라는게 어떻게 생겨먹었는지조차 모르던 나는 결국 작심하고 로또를 구입했다. 나도 주워 들은 풍월은 있어서 이 로또라는게 당첨 확률은 거의 벼락맞을 확률에 버금간다고 하니 그야말로 미친척 한번 해보자는 심산이었다.

그러나 이게 정말 미친척으로라는 생각을 할건 아닌듯 싶었다. 나야 로또에 관해서는 뜨네기 손님이지만, 그 업소에 들러서 너무나 진지하게 적게는 서너장, 많게는 몇십장씩 사는 사람들이 있으니 이걸 미친척이라고 하면 그분들의 로또에 대한 열망에 찬물을 끼얹는 꼴인듯 해서 미친척 이라는 말은 쓰면 인될것 같다.
오른손으로 검은색 싸인펜을 들고 너무나 진지하게 번호를 찍는 사람들. 이건 마치 인생에 가장 중요한 수학능력 시험을 치루는 고3학생 저리가라였다. 그 표정이 얼마나 진지하고 숙연하던지.

벼락 맞을 확률에 기대봤던 하루_1
벼락 맞을 확률에 기대봤던 하루_1

어쨌거나 나도 주인더러 로또 한 장 달라고 해서 보니 숫자 1에서 45까지 제 마음에 드는 숫자를 맘대로 선택해서 기입할 수 있는 공간이 5개씩이나 연속으로 붙어 있는 평범한 종이딱지였다.
대한민국을 대박 열풍으로 뒤집어 놓은 요물이 이렇게 생겼구나! 신기했다. 당첨될 확율이 거의 제로에 가까움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래도 이걸 들여다 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배가 불렀다. 
'아하, 사람들이 바로 요 맛에 매주 이 종이딱지를 사 들고 콧노래를 부르는거구나.' 

아이들 생일에서 한자리씩 따고 아내와 나의 결혼 기념일에서 하나 따고, 우리집 전화번호에서 기분 좋은 숫자를 골라 기입했더니 모두가 채워졌다. 그래도 이것도 일종의 도박(?)인지라 그 숫자를 기입해 넣는 순간 떨리고 긴장이 됐다. 묘한 쾌감과 스릴까지.

집에 돌아가 내가 로또를 샀다고 하자 아내와 아이들이 낄낄 웃었다. 첫째는 '우리 아빠도 로또 대열에 동참하셨다'는 신기함 때문일테고 둘째는 그래도 1억분의 1의 확률이지만 '대박'의 꿈을 꿀수 있기 때문이었을거다.
완성된 로또를 보니 기분이 달아오르는 모양이었다. 가족들 모두 어서 빨리 토요일이 왔으면 좋겠다는 말이 합창처럼 터져 나왔다. 마치 당연히 당첨될것 같은 분위기. 정말 그 기분만은 당첨 그 자체였다.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이게 1등 100억이 당첨되면 정말 행복할까? 그 돈으로 80평짜리 아파트 가고, 더 비싼 옷을 입고, 더 기름진 음식을 먹으며 살겠지. 누구든 그럴거야. 그럼 그게 무지 행복해지는건가?"
아내는 나의 질문에 피식 웃을 뿐 선뜻 대답을 안하고 시선을 돌렸다. 의외였다. 좋아라 펄펄 뛸줄 알았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존에서 사냥으로 먹고 살며 집이라고는 나무를 꺾어 만든 움막이 전부인 원주민에게 집 지을때 쓰라고 문명세계에서 전기톱을 선물해 준다면 그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 전기를 넣어주고 닌텐도 게임기를 준다면?
우리에겐 가족끼리 알콩달콩 모여 서로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그런 공간이면 충분하다.  집이 필요 이상으로 넓으면, 넓어진 그만큼 가족 간의 정도 멀어지고 썰렁할 것이다. 좋은 옷 입으면 일시적으로 자랑은 할 수 있겠지만 그걸로 내면의 빈곤을 가리진 못한다. 먹는것도 건강을 지키는 정도면 되지 않을까. 가끔 맛있는것 정도면 되고.

아이들에게 말했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가 어딘지 아니? 바로 방글라데시야. 가난이 찢어질 정도의 나라지. 반면 부자나라인 덴마크는 무엇이 세계 제일인지 알아? 바로 자살률이야. 이걸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그날 저녁 내내 우리는 로또를 화제삼아 웃음꽃을 피웠다. 로또에 당첨될 걱정(?)없이 오히려 그걸 교재 삼아 자식들에게 교훈을 주고 덩달아 가족간에 웃으며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었으니 이것만으로도 본전은 충분히 뽑은 셈이었다.

나는 로또가격 단돈 1만원으로 식구들에게 요행과 사행심의 폐해를 가르쳤다. 생생한 현장교육(?)이었다. 
그리고 그주 토요일 로또 당첨자 발표 날. 예상대로였다. 꽝.
그러나 나는 로또 낙첨의 결과를 놓고 또 한번 아이들에게 요행과 노림수 보다 정직하고 열심히 사는게 얼마나 중요한지 한번 더 가르치고 웃으며 대화를 나눌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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